스시에 담긴 혼과 맛의 예술

[문화 속 음식이야기] 만화 '미스터 초밥왕'
스시에 담긴 혼과 맛의 예술

우리나라에는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그 1차적 원인으로는 국내 만화 시장의 척박한 환경을 들 수 있겠지만 먹는 음식을 두고 ‘까탈부리기’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문화 탓도 있을 것이다.

일본 만화 ‘맛의 달인’에 나오는 것처럼 미각이 개인의 자존심이 되고, 자국의 음식문화를 민족혼처럼 수호하는 듯한 모습은 아직까지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낯설다. 그렇기 때문에 <미스터 초밥왕(데라사와 다이스케 지음)>이 지난해 신라호텔의 직원교육 교재로 채택된 것은 하나의 화제였다.

일본에서 건너온 요리만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 중에서도 <미스터 초밥왕>은 90년대 이후 일어난 한국의 초밥 붐에 한몫을 했다. 이 만화가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초밥 요리사의 길을 걷는 주인공의 ‘성공신화’가 한국인의 정서에 크게 어필했기 때문일 것이다.


초밥의 모든 것

<미스터 초밥왕>은 오타루의 조그만 초밥집 아들 ‘쇼타’가 동경으로 올라와 유명 초밥집인 ‘봉초밥’에 취직하면서 시작된다. 대형 초밥 체인점인 ‘사사초밥’에 밀려 가게가 어려워지자 평범한 중학생이었던 쇼타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나서고, 초밥 명인인 봉초밥 사장 ‘정오랑’에 눈에 들어 동경으로 가게 된다.

허드렛일과 밥짓기부터 시작해서 혹독한 수련을 쌓아 나간 쇼타는 선배인 ‘사치안인’을 제치고 신인 초밥요리사 대회에 출전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만나며 마침내 전국대회 우승을 거머쥐고 일본 최고의 초밥 요리사로 등극한다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1, 2부를 합쳐 40권이 넘는 이 만화에서는 그야말로 초밥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초밥들을 접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초밥이라는 단 한가지 소재로 이처럼 방대한 내용을 소화해낸 작가의 역량이 감탄스럽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만화에 등장하는 초밥들이 꾸며낸 것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실제 조리법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마지막 17권에 등장하는 ‘한국식 초밥’은 신라호텔 일식부 안효주 주방장의 작품이라고 한다.

1, 2 권에서는 쇼타가 초밥의 기본을 하나 하나 배워가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3권에서부터는 기본 설정 자체가 바뀐다. 가령, 처음에는 없던 내용―아버지가 초밥집 주인이었고 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셨다는―이 불쑥 튀어나온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평범한 견습생이었던 쇼타가 갑자기 천재소년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스터 초밥왕>은 3권에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


요리 무협지?

작품 전체의 분위기도 180도 달라져서 요리만화라기보다는 ‘무협지’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 쇼타가 초밥의 비법을 한 가지씩 깨우치는 과정이나 끊임없이 계속되는 대결 구도는 마치 수행을 하면서 적을 하나씩 물리치는 무사를 연상시킨다. 다만 주인공의 손에는 검 대신 사시미 칼이 들려져 있고 사람 대신 생선을 벤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사사초밥(혹은 마지막까지 경쟁하게 되는 사치안인)대 쇼타라는 구도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이끌어가고, 마지막에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적을 용서하고 친구가 된다는 내용은 일종의 사무라이적인 윤리관을 드러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만화를 더욱 무협지처럼 만드는 것은 초밥 맛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많은 ‘오버액션’ 이다. “촉촉한 뱃살의 감칠맛과 입안에 퍼지는 농후한 기름기” 정도의 말로는 아무래도 부족했던지 후반부에서는 심사위원들이 눈이 돌아가거나 유리컵을 깨버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환상적인 맛을 ‘온몸을 가지고’ 표현한다.

특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본능적으로 박수를 친다거나, 평소에는 처져 있던 눈썹이 올라간다는 설정 등은 그 내용의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물론 이 같은 대결 구도와 황당함이 <미스터 초밥왕>의 전부는 아니다. 작가 역시 그러한 점이 마음에 걸렸던지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이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이라고 여러 번 강조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 만화는 상당히 남성적이고 가부장적이다. 쇼타를 비롯한 다른 여러 등장 인물들은 ‘아버지와 같은’ 분야의 명인이 되기를 꿈꾼다. 이는 일본인 특유의 가부장적 직업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외에도 20세기에 ‘정략결혼’을 한다는 설정이 여러 번 나오고 사사초밥의 사장 아들이 “너의 여동생을 첩으로 삼겠다”고 하는 장면 등은 만화라고 웃어넘기기엔 당혹스럽다.

<미스터 초밥왕> 이외에도 대결 구도를 주입한 요리 만화들은 많다. 요리 만화 속의 수많은 대결 장면들은 ‘우열을 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성 독자들을 겨냥한 것이 아닐까 싶다. 팽팽하게 긴장이 감도는 분위기가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스토리에 재미를 더해 주는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상대적일 수 밖에 없는 입맛을 가지고 승부를 가린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우스운 일이다. 또한 현란한 승부에 가려 요리에 있어 정성과 배려가 중요하다는 외침은 공허하게 들린다.


당신도 초밥요리사

어쨌든 <미스터 초밥왕>을 읽는 독자들에게 만화 속에 등장하는 초밥들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과 같다. 희귀한 재료들은 둘째치고라도 엄청난 고가일 테니 말이다. 만화를 보면서 군침을 흘렸다가, 가벼운 주머니에 서글퍼졌다면 대안이 있다. 가까운 회집이나 식품매장에서 회를 떠다 초밥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다. 만화처럼 ‘제대로 만드려는’ 욕심을 버린다면 초밥 만들기는 의외로 쉽다.

또한 이 방법은 회전초밥이나 체인점보다 싱싱한 생선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위생상의 문제에 주의하고 회는 반드시 신선한 것을 써야 한다.


* 니기리(생선)초밥 만들기


―재료(2인분 기준): 냉동 참치회 60g, 광어회, 훈제연어 각 40g, 새우 2마리, 밥 2공기, 식초4큰술, 소금1큰술, 설탕3큰술, 고추냉이


―만드는 법:

1. 식초, 소금 설탕을 잘 섞어 단촛물을 만든다. 2. 고슬고슬하게 갓 지은 밥을 그릇에 담고 1을 뿌려 나무주걱으로 저어 식힌다. 3. 참치는 10%가량의 소금물에 5분 정도 담갔다가 살짝 녹으면 깨끗한 면보자기로 물기를 뺀 후 결 반대 방향으로 포를 뜬다. 4. 광어와 훈제 연어는 포를 뜬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5. 새우는 끓는 소금물에 데쳤다가 껍질을 벗기고 배를 반으로 가른다. 5. 2의 초밥을 1인분씩 떼어내 살짝 뭉쳤다가 고추냉이 약간을 바르고 생선을 얹는다. 밥을 가볍게 눌러 모양을 낸다.

*tip: 회 뜨는 일이 자신없다면 구입할 때 따로 부탁한다. 그리고 손으로 만든 초밥보다 만들기 쉬운 상자초밥이나 김말이 초밥부터 도전해 보는 것도 요령이다.


입력시간 : 2003-10-0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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