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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있는 풍경] 추억의 송정카페


가끔 부산을 갈 일이 있으면 시간을 내서 송정 바닷가를 들르곤 했다. 해운대나 광안리는 너무 번잡스럽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내 감성에 딱 맞는 곳을 찾아냈는데 그 곳이 바로 송정이다.

오랫동안 송정은 바닷가 어촌마을이나 다름없었다. 입구에는 '추억을 위한 시'라는 ㄴ70년대 풍의 다방이 아직도 남아 있고, 한동안 부산 커피계 전설이었던 '가비방' 도 퇴색된 간판만 어느 건물 한 벽에 덩그라니 붙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송정을 찾게 했던 곳은 바닷가쪽으로 나가 백사장 중간쯤에 위치한 '로드 카페'라는 곳이었다. 송정 해수욕장 여름 파출소를 개조해 만든 이 카페는 소유주가 파출소인지라 피서철인 한 여름엔 문을 닫고 다시 가을부터 초 여름가지만 문을 열곤 했다.

로드 카페는 세련되거나 호화로운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통 유리와 그 위에 내려진 불라인드가 전부이고 한쪽에 허름한 커피 바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곳은 순수한 감성을 지닌 사람들이 추억과 낭만을 공유하던 곳이었다. 블라인드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의 추억을 담은 낙서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고 늘 클래식과 재즈, 그리고 짙은 커피 향기가 공기처럼 떠다녔다.

주인은 손님들에게 그리 친절한 인사를 할 줄 모르지만 따뜻한 눈빛으로 꾸부정한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러나 주문받은 커피는 제법 괜찮은 핸드 드립 방식을 이용해 정성껏 타주곤 했었다. 언젠가는 그 카페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은 적 있다며 자랑하길래 "이제 돈 많이 벌겠네"라는 농담을 던지자 쑥스러운 미소를 짓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송정은 많이 번화해졌고 얼마전에 로드 카페마저 없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창으로 열린 바다를 보면서 하염없이 상념에 잠기다가 바다쪽의 쪽문을 나서 커피잔을 든 채 백사장을 거닐곤 했던 그 카페는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게 됐다. 흐르는 시간은 잡을 수 없지만 추억이 담긴 공간이 그렇게 하나 둘씩 사라져 가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승환 커피칼럼니스트 barista@dreamwiz.com


입력시간 : 2004-02-0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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