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덜해도 명품 버금가는 품질과 개성의 소비재 구매

[패션] 작은 사치 큰 호사, 新명품족
이름값 덜해도 명품 버금가는 품질과 개성의 소비재 구매

브라운 전동칫솔을 사용하고 타임 슈트를 입는다. 코치 가죽 손목 시계를 차고 알랭미끌리 안경을 쓴다. MCM 하드케이스 가방을 들고 출근 전 바닐라향 시럽을 첨가한 스타벅스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당신. 당신은 신명품족이다. 물건 하나를 사도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고, 기왕이면 명품매장을 둘러보지만 금전적인 부담이 따른다면? 구매 가능한 명품 브랜드의 소품으로 작은 사치를 누리거나 세컨드 명품 브랜드를 찾아 다니고, 아니면 이름 값은 덜해도 명품과 같은 품질과 개성을 지닌 소비재를 선택한다. 신인류의 신개념 소비 풍조, 신명품주의.

▽ 새롭고 개성있는 준명품에 관심

비슷한 품질의 넥타이라도 한국산이면 5달러, ‘Made in Italy’가 붙은 럭셔리 브랜드의 넥타이는 100달러. 똑같은 넥타이라도 20배를 더 받을 수 있는 힘이 명품 브랜드에게 있다. 명품 브랜드는 자신들의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을 만들어 그들만의 신비로움을 지켜 나간다. 그 첫째 조건이 높은 가격. 몇 천만 원대 슈트나 시계, 가방, 억대의 보석들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한정 생산, 판매로 그 가치를 유지하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확실한 신분제도가 없는 현대사회에서 누가 더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남들과 다른 신분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고가 품을 구입하고 몸에 지니는 과시적 소비는 어쩌면 당연한 사회현상인지도 모른다.

일례로 백화점의 한 핸드백 코너에 20만 원짜리 핸드백에 200만원으로 가격표가 잘못 붙여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사람들은 200만원의 가격을 200만원의 가치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명품에 대한 소비자의 인지는 후광효과(Halo Effect)에서 시작된다. 쉽게 가질 수 없는 비싼 제품은 그 물건을 사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후광을 만들어 주고 만족감을 준다. 처음 만난 사람의 옷차림과 고급 액세서리로 그 사람의 신분과 능력을 평가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구미국가들보다 사회 계층이 불안정하기에 고급 브랜드 구매와 착용을 통해 상류층에 소속되는 소속감이 더 크다고 한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투자은행 메릴린치는 2005년까지 고소득층이 50% 가량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자료를 발표했다. 실제로 1,700만원 가량 하는 에르메스의 버킨 핸드백의 예약자 명단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명품 업체들이 이처럼 초고가 라인을 강화해 자신들만의 성을 쌓아가고 있는 동안 중산층의 젊은 소비자들은 보다 새롭고 개성있는 준 명품, 새롭게 떠오르는 명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신명품주의 이끈다

오늘날 세계적인 경제불황은 소비자들에게 ‘경제’에 관한 자각심을 일깨워 줬다. 또한 ‘가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됐다. ‘가치(Value)’에 집중한 소비자들은 현명한 소비를 하며 계획적으로 상품을 구매한다. 상품구매장소 또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인터넷, 벼룩시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발견했을 때도 서슴지 않고 구매한다. 자신이 원하는 상품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급품을 갖고 싶다는 성취 욕구와 현실적인 경제력이 맞물리면서 등장한 새로운 소비 트렌드는 바로 ‘작은 사치’. 가장 대표적인 ‘작은 사치’는 명품 브랜드의 소품 구매다. 고급품이라는 이유로 다른 제품보다 값이 비싸더라도 ‘그 정도면 나도 살 수 있다’는 수준의 제품이 작은 사치의 대상이다. 루이비통에서 5만5,000 원짜리 헤어끈이 불티나게 팔린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작은 사치’에서 시작된 신세대들의 신명품주의는 초고가 명품 브랜드의 세컨드 브랜드 탐방에 이어 자신들만의 개성을 돋보이게 해줄 새로운 명품 브랜드를 찾아 나서게 된다. 얼리어댑터, 트렌드세터, 패션리더로 분류되는 신명품족은 뚜렷한 주관과 개인의 자긍심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특히 상품 구매에 있어 무엇보다 ‘감성’은 필수 요건이다. 오페라와 대형뮤지컬을 감상하고 스타벅스의 커피를 즐기며 타임, MCM, 디젤, 노스페이스, 오클리 등의 브랜드를 선호한다. 전통적인 명품 외에 새롭게 부상한 신명품군의 제품들이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2004년 이런 상품이 히트한다’라는 보고서는 PDP, LCD TV와 고급 가전 등 프리미엄 제품 가격?내려가면서 실제 구매가 상당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또 고가 제품으로 인식되던 SUV(Sport Utility Vehicle)제품도 일부 국내자동차에서 콤팩트형 SUV를 내놓으면서 신명품주의 소비 트렌드의 주요 공략 대상이 될 것으로 적고 있다.

▽ 부상하는 신 명품 브랜드

지난해 상반기 미국경제가 전반적으로 약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신명품’ 브랜드가 호황을 누렸다. 최근 보스턴 컨설팅 그룹(Boston Consulting Group; BCG)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신 명품 회사들은 17.8%의 매출신장을 기록했다. 핸드백과 액세서리 브랜드 ‘코치(Coach)’는 지난해 2분기 매출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53%나 급증했다. 그 동안 미국의 전체 개인 소비는 5%이하의 신장을 보였을 뿐이었다. BCG가 뽑은 15개의 신 명품 기업의 제품은 비교 대상 브랜드에 비해 2배까지 가격차가 나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면 파네라(Panera)의 파니니(이태리식 샌드위치)는 6달러. 3달러인 델리 샌드위치의 두 배 가격이다. 파네라는 고급스런 매장과 신선한 샌드위치로 햄버거를 먹는 소비자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8월, 패션 리더들에게 기록될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유학생들의 입소문으로 그 명성을 들어왔던 디자이너 진 브랜드 ‘디젤’ 이 갤러리아 백화점에 매장을 오픈 한 것. 이밖에 국내 브랜드 진과 해외수입 럭셔리 브랜드 사이의 시장을 겨냥한 프리미엄급 진 시장을 겨냥한 ‘지스타’ 등이 동시에 입점해 화제를 모았었다. 이들은 국내 브랜드의 진보다 10만원 정도 가격 차이가 나지만, 다양한 디자인과 개성있는 이미지로 젊은 신명품족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국의 신명품주의를 대표하는 브랜드로는 여성복 ‘타임(TIME)’을 들 수 있다. 타임은 명품 브랜드를 벤치마킹하면서 가격은 15% 정도 낮다. 여기에 고가라인인 블랙라벨을 선보이며 명품 브랜드 고객의 발길을 붙들었다. 타임은 3년이 지난 제품은 모두 소각하는 등 브랜드 이미지 관리를 철저히 함으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켜 나가고 있다. 한국형 신명품주의를 이끈 액세서리 브랜드 ‘엠씨엠(MCM)’ 역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패키지, 광고 등을 통해 직수입 명품 브랜드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국내 진출 10년째인 패션잡화브랜드 ‘루이까또즈’도 명품은 아니면서도 이탈리아 직수입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는 브랜드.

지난해 봄 LG패션이 런칭한 핸드백 브랜드 ‘제덴’은 ‘모던 인텔리전트’를 컨셉으로 이탈리아 현지에서 기획, OEM방식(주문자 생산방식)으로 생산해 명품 브랜드로 차별화 시켰다. 브랜드 이미지는 명품이고 전체 중심 가격대는 핸드백 기준 30만원 선에 설정해 대중성을 추구했다. 로만손의 주얼리 브랜드 ‘제이 에스티나’ 역시 ‘마릴리사 젠 컬렉션’ 등의 ‘작품’을 앞세워 디자이너 브랜드를 표방하면서도 실용적인 가격대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스포츠 트렌드의 부각으로 스포츠 브랜드의 고급화도 신명품주의를 이끌었다. 올봄 런칭하는 민트트레이딩의 ‘푸마 블랙스테이션’은 오더량 한정으로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 특히 신경을 쓰고있다. 푸마 블랙스테이션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립스탁 등이 참여한 디자이너 슈즈라인까지 선보이며 마니아층을 유혹한다. 또 정통 스포츠 브랜드는 아니지만 캐포츠 바람을 탄 럭셔리 이미지의 캐릭터 스포티브 브랜드 ‘이엑스알(EXR)’은 지난해 850억원의 매출로 패션업계가 장기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시기에 무려 8배 성장을 기록하며 신명품족들의 환영을 받은 브랜드로 이름을 남겼다.

▽ 고급스러움과 실용성 겸비한, 매스티지

이 같은 신명품주의 경향을 일각에서는 매스티지(Masstige)라는 용어로 풀이하고 있다. 매스티지는 ‘대중(mass)’을 뜻하는 단어와 ‘명품(prestige product)’을 뜻하는 단어를 조합한 신조어. 미국의 경제잡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처음 소개한 매스티지는 ‘소득 수준이 높아진 중산층들이 비교적 값이 저렴하면서도 감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제품을 원하는 경향’을 뜻한다.

삼성패션연구소의 2004년 시장전망 보고서에도 ‘높은 감성을 지닌 개인 부각’이라는 주제로 대중적인 명품의 수요증가를 추측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새로운 소비 트렌드, 작은 사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자신의 경제력으로 구매 가능한 수준의 고급품을 구입해서 심리적 만족을 느끼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작은 사치의 유형으로 소비자가 기존 최고급 브랜드 중 소품을 구하거나 가격대가 낮은 카테고리 중 고급 제품을, 가격대가 높은 품목 중 고급화 상품과 새롭고 희귀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신소비 문화의 예로 들어 신명품주의의 등극을 확인시켰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2-04 16:12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