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속에서 싹 튼 자아의 삶너울거리듯 헤엄치는 이미지는 자유에의 갈망 의미

[문화 속 음식이야기] 소설 <홍어> 홍어회
기다림 속에서 싹 튼 자아의 삶
너울거리듯 헤엄치는 이미지는 자유에의 갈망 의미


삭힌 홍어회를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코끝을 찌르는 독한 냄새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한두 번 맛을 들이면 특유의 풍미에 매료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 자극은 즐거운 고통이 된다.

너무 거창한 비유일 수도 있겠으나 사람이 자유를 꿈꾸게 되는 순간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억압되어 있었던 내면의 욕구를 마주하는 일은 마치 자극성 강한 홍어회를 먹는 것처럼 어색하고 괴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고 나면 인간은 스스로 자유를 찾아 떠난다. 김주영의 소설 <홍어>는 홍어 맛에 길들여가듯 자신의 내면에 눈뜨게 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바람둥이 아버지는 ‘홍어’

세영은 산골 마을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13세의 소년이다. ‘홍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는 읍내의 주막 춘일옥 안주인과 눈이 맞아 도망친 후 5년째 소식이 없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닮은 홍어를 문설주에 걸어놓고 때때로 가오리연을 만들며 힘겨운 기다림을 견뎌내고 있다.

폭설이 내리던 어느 날, 이들 모자에게는 갑작스러운 불청객이 찾아온다. 한 거지 소녀가 그들의 집 지붕 밑에서 눈을 피하고 있었던 것. 어머니는 매질을 하여 소녀를 쫓아내려 했으나 꼼짝하지 않자 ‘삼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거두어 딸처럼 보살핀다.

영악하고 당찬 삼례는 어머니의 삯바느질 주문을 받는 등 집안 일을 거들게 된다. 자유분방한 삼례의 모습은 어느새 세영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그녀는 몽유병과 도벽 등 기이한 행동을 일삼더니 결국은 마을 자전거포의 청년과 함께 집을 나가 버린다.

1년 후, 삼례는 춘일옥의 색시가 되어 읍내에 다시 나타난다. 세영은 몰래 삼례를 찾아가 만나면서 조금씩 이성에 눈뜨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삼례에게 돈뭉치를 쥐어주며 떠날 것을 종용한다.

삼례가 떠난 후 집에는 아버지의 소생인 갓난 호영이가 들어오고, 곧 이어 세영의 외삼촌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돌아올 수 있도록 춘일옥 주인을 설득하는 외삼촌. 며칠 후, 드디어 아버지가 돌아온다. 한데 그토록 기다리던 아버지와 하룻밤을 보낸 후, 어머니는 세영이 숨겨 두었던 삼례의 주소를 가지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

‘홍어’는 생식기가 두 개 달려 있기에 흔히 바람둥이에 비유된다. 특히 너울거리며 날아가는 듯한 홍어의 이미지는 속절없이 떠돌아다니는 아버지이기도 하며, 거침없이 자유로운 삼례를 상징하기도 한다. 삼례의 존재는 어린 세영의 사춘기와 함께하며, 억압된 삶을 살고 있던 어머니에게 자유에의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내면의 자유에 직면하게 된 세영과 어머니는 처음에는 두려움과 당혹감을 느끼다가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가출해 버린다는 결말은 인내와 기다림의 삶을 버리고 자아를 찾아가려는 반란으로 볼 수 있다.

▽ 약알칼리성 식품으로 담에 효능

소설의 배경이 겨울인 것처럼 홍어도 눈 내리는 겨울철에 제 맛이 난다. 전라도 지방에서 홍어는 잔칫상에 빠져서는 안될 생선으로 꼽힌다. 특히 흑산도 근해에서 잡히는 흑산홍어는 살이 차지고 감칠맛이 있다고 하여 최상급으로 취급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태양어(邰陽魚), 하어(荷魚), 해음어(海淫魚) 등으로 나와 있으며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장이 깨끗해지고 술독을 해독한다고 언급되어 있다. 실제로 홍어는 알칼리성 식품으로서 담을 삭히는 효능이 있다고 전해지며 기관지 천식, 소화기능, 혈액순환, 신경통, 관절염 등에도 좋다.

작품 속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경상도 지역에서는 홍어를 삭혀 먹지 않고 그대로 찜을 하거나, 작은 홍어를 조려 반찬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우리에게 친근한 것은 삭힌 홍어일 것이다. 깨끗하게 손질한 홍어를 크게 썰어 항아리에 넣고 공기가 통하지 않게 한다. 이것을 2~3일간 실온에 방치하거나 퇴비 속에 1~2일 묻어두면 적당히 발효되며 요소가 분해되어 암모니아를 듬뿍 만든다. 혀끝을 쏘는 듯한 화끈하고 짜릿한 풍미는 이때 생겨난다. 때때로 홍어를 먹다가 입천장이 벗겨지곤 하는 것은 암모니아의 자극 때문이다.

이것을 기름 소금에 찍어 막걸리 안주로 먹는 것을 홍탁이라 한다. 그리고 묵은 배추김치와 삶은 돼지고기를 곁들이면 그 유명한 홍어 삼합(三合)이 된다. 삭힌 홍어회는 입안에 넣는 순간 암모니아 냄貂?목구멍과 코에 가득 찬다. 눈물이 핑 돌면서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코끝이 아린 것을 참아가며 조심조심 씹는다. 이때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면 찌르는 듯한 자극이 진정되면서 막걸리의 부드러움과 홍어 특유의 향기가 여운처럼 남는다. 역한 것 같지만 오감을 흔들어 깨우는 맛, 그것이 홍어의 참 매력이다.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2-04 16:24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