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뒤집는 기상천외한 '짬뽕패션'에 담긴 통쾌함

[패션] 코미디 영화속 패션코드 "니들이 유치패션을 알아?"
상식을 뒤집는 기상천외한 '짬뽕패션'에 담긴 통쾌함

핑크색 오픈 칼라 셔츠, 물방울 무늬 스카프, 미키마우스 캐릭터, 절대 패셔너블하지 않은 추리닝. 스크린을 장악한 한국 코미디영화의 패션 코드. 코미디영화의 유치코드를 콕집어 보는 재미로 억지 웃음을 용서해 볼까? “제발 웃어줘!”를 외치는 한국 코미디 영화의 유치찬란 패션 코드 집어내기.

△ 시공을 초월한 상상력의 집대성

지난해 한국영화 박스 오피스 10위 안에 든 영화 중 6편이 코미디물이었다. 올 초 개봉했거나 개봉 준비중인 영화도 <그녀를 모르면 간첩> <내사랑 싸가지> <그놈은 멋있었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목포는 항구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 <어깨동무> <고독이 몸부림칠 때> <마지막 늑대> <맹부삼천지교> <바람의 전설> 등 코미디물 일색이다.

한국영화의 득세는 반가운 일이나 사실 비난받아 마땅한 신인 감독을 내세운 반짝 코믹 극을 다량으로 생산해 내는 현상은 결코 반갑지만은 않다. 관객이 원한다고? 영화라는 장르를 더욱 가볍고 우습게 치부하지는 않을까?

요즘 코미디영화들은 코미디 하나의 장르만을 고수하지 않고 로맨틱과 액션, 드라마적 요소를 모두 뒤섞는다. 그래서인가 영화 의상 역시 시공을 초월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며 내달린다. 현대물이어도 한복차림이 삽입되고, 동화나 컴퓨터 게임기의 캐릭터를 패러디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코미디 영화의 의상은 과장된 키치 패션의 진수라 하겠다.

‘키치(Kitsch)’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70년대 독일. 당시에는 “물건을 속여 팔거나 강매한다”는 뜻이었다. 19세기 말에는 유럽 전역이 이미 급속한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파급 속도도 빨라 중산층도 예술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미술품을 사들이려는 욕구도 강해졌다. 키치는 바로 이러한 중산층의 문화욕구를 만족시키는 그럴 듯하게 그려낸 그림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하던 개념이다. 저속한 미술품에서 일반적인 예술, 대중 패션 등을 의미하는 폭넓은 용어로 사용되다가 현대에 이르면서 대중적인 예술 장르로 개념이 확대되었다. 키치는 현대 대중문화, 소비문화 시대의 흐름을 대변한다. 키치 현상은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대중성을 지니기 때문에 영화라는 종합예술과 만나 ‘짬뽕’ 문화코드를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키치 패션 하면 먼저 유치하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한국 코미디 영화가 아직 걸음마 수준의 어수룩하고 미약함을 대변하는 단어가 아닐까. 코미디 영화? 웃자고 만든 영화니깐 그냥 웃고 넘어 가자. 유치 개그의 유치 패션이나 감상하면서.

△ 코미디 영화 속 키치 패션의 코드?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성공 이후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가 트렌디 드라마처럼 이어지고 있다. 개봉 대기 중인 <내사랑 싸가지> <그놈은 멋있었다>처럼 인터넷 소설은 신세대를 주인공으로 하기 때문에 10대들이 즐겨 입는 캐주얼 코드가 단연 앞선다. 남성 캐릭터들은 감성캐주얼과 원포인트 펜던트 목걸이를 한 세미 정장 차림이다. 여성 캐릭터의 경우 여성 영캐주얼의 귀여운 이미지를 딴다. 색조도 파스텔 톤으로 통일하고 액세서리는 매우 소박하게, 전형적인 중산층 소녀다운 복장이다.

△ 망가지는 여성캐릭터, 개성으로 승부한다

여성 캐릭터의 망가짐 역시 대세다. 코미디 영화의 두 간판 여배우, 김정은과 김선아. 김정은은 <가문의 영광>에 이어 무식한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낸다. <불어라 봄바람>에서는 아줌마 파마에 망사 스타킹, 초미니 스커트, 물방울무늬 헤어밴드와 스카프까지, 다방 여종업원의 전형적인 복장으로 통일한다. 김선아는 <몽정기>에 이어 <해피에로 크리스마스>에서 ‘에로’한 몸매를 과시한다. 볼링장 도우미 차림의 유니폼까지 에로틱하니 말이다.

그녀들에 이어 김하늘과 이나영, 하지원, 정다빈이 망가지는 신세대 여배우로 입성했다. 곱살하고 가냘파 보이는 김하늘의 ‘확 깨는’ 연기란! 그에 비해 교복차림으로 날뛰는 하지원은 <내사랑 싸가지>로 팬들에게서 ‘다모’았던 인기를 ‘싸가지’고 가버릴까 걱정된다. 차라리 공포영화 <가위> <폰>의 캐릭터가 잘 어울리는 거 아니었나? 옥탑방으로 확 떠버린 스타일짱 김래원에 비해 정다빈의 촌스런 스타일링은 여전하다. 이들은 깜찍한 인형 같은 김정은이나 에로틱 스타일의 김선아에 비해 아직까지 자신만의 로맨틱 코미디다운 스타일을 완성해 내지는 못한 듯 하다. 차라리 <영어완전정복>에서 장혁을 사심 들게 만들려던 장난기 섞인 키치 패션 이나영이 스타일 고수다. 잘 차려 입는다는 것이 유치찬란함을 빛나게 할 때도 있으니까.

△ 유니폼은 코메디 전용?

경찰복, 학생복 등 영화에 등장하는 유니폼 차림의 인물들은 어수룩하고 순진해서 언제든 당하는 입장이다. 제도권의 권력에 반항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형태야 말로 코미디의 강제성 아닌가. <내사랑 싸가지>에서 후반부에 과외선생으로 등장하는 김재원은 두꺼운 뿔테 안경에 아이비리그 출신의 이미지를 본따 V네크라인 화이트 테니스 스웨터를 입고, 공부는 잘하지만 멋 모르는 공부벌레로 변신한다. 이것도 학구 파의 유니폼.

△ 추리닝패션?

영화에 등장하는 추리닝은 그야말로 촌스러움의 극치다.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우스운 경찰로 분한 박철은 영화 내내 핑크색 추리닝을 입고 어줍잖은 개그를 펼친다. <그녀를 모르면 간첩>의 김정화는 그 예쁜 얼굴과 몸매를 휘날리는 액션 신에서 체육복 같은 자주색 추리닝과 노란 우비를 코디 했다.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목포는 항구다>의 조재현이 입은 연두색 추리닝은 또 어떤가. 배 모양이 어지럽게 프린트된 하와이언 셔츠와 추리닝 차림이라니. 다방 여종업들과 딱 어울리는 차림 아닌가.

△ 꽃무늬, 하와이언 오픈 칼라 셔츠 건달표 패션!

<목포는 항구다> <어깨동무> 등 ‘형님’ 영화의 대를 잇는 두 코믹극에서는 스포츠 칼라셔츠 차림의 조직들이 등장한다. 오픈셔츠인 이 스타일은 칼라가 젖혀져 있고 타이를 매지 않아 리조트웨어 차림에 어울리는 디자인인데 어쩌다 대한민국 건달 패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을꼬. <오! 브라더스>에 출연한 12살 늙은 아우 이범수의 변신은 올백 헤어스타일과 광택 나는 핑크색 오픈칼라 셔츠. 완벽한 해결사로 접수된다.

△ 영원한 유치 캐릭터, 미키마우스

아이들에게 동심을 유발하는 미키마우스는 코미디물에서는 동심처럼 귀엽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정준호, 하필이면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골라 입었수. 아무리 편찮으시다 하여도 전혀 12살로 볼 수 없는 <오! 브라더스>의 이범수도 순진무구 캐릭터를 과장하기 위해 미키마우스 캐릭터 잠옷을 입고 키스신을 열연(?)한다.

△ 상상력을 동원하라!

<영어완전정복>에서 “나는 조선의...9급 공무원이다”를 읊조리는 이나영은 궁중복 차림에서도 커다란 뿔테안경을 쓰고 ‘어벙’ 캐릭터를 강조한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여주인공 김하늘은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무대실력을 다시 펼친다. 이번에는 빨간색 공단 드레스와 깃털 장식, 장갑을 끼고 완벽한 오버녀로 변신! <내사랑 싸가지>의 첫 장면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패러디 한다. 게다가 다모의 “아프냐”신까지. 상상력에 망가지는 미녀들, 웃지 않을 수 없다.

△ 망가져도 멋져!

<오! 브라더스>의 이정재는 제 아무리 건달 패션으로 이미지 다운하려해도 그저 멋진 핸섬가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목포는 항구다>에서 목포 사투리를 ‘징하게’내 뱉는 차인표의 라이방(여기서는 ‘레이벤’이라는 단어는 안 어울린다) 선글라스, 너무 멋지지 않은가! 신마다 차려 입고 나온 듯한 건달 표 셔츠는 또 얼마나 근사한지.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의 용감무쌍 여경 전지현은 여전히 찰랑찰랑 ‘엘라스틴’헤어스타일로 뭇남성들을 설레게 만든다.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운동화를 질질 끌고 뛰어다니던 사랑스런 그녀는 경찰복 차림조차 매력적이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2-11 16:58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