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구한 숭고한 알몸질주남편인 영주의 가혹한 세금징수에 맞선 파격의 시위

[역사 속 여성이야기] 레이디 고다이버
농민을 구한 숭고한 알몸질주
남편인 영주의 가혹한 세금징수에 맞선 파격의 시위


세상이 온통 누드 열풍이다. 자고 일어나면 여기서도 벗고 저기서도 벗고 있다. 처음엔 누가누가 벗는다더라 솔깃하기도 하였지만 이젠 제발 좀 그만 벗으라는 짜증을 넘어 누가 벗든지 말든지 무관심으로 옮아가고 있다. 여성의 몸이 이렇게 헐값에 이무런 의미없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역사 속에서 여성이 옷을 벗는 데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성의 몸은 예술 작품에서는 언제나 찬미의 대상이었으며, 여성이 세상을 향해 옷을 벗는 순간은 죽음 아니면 어떤 숭고한 의미 때문이었다.

△ 나체로 말을 달려 마을로 나간 영주의 부인

11세기 영국 잉글랜드 중부지역에 위치한 코벤트리. 시끌벅적해야 할 마을의 광장은 개미 한 마리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정적에 휩싸였다. 춥지 않은 날씨인데도 마을의 창문은 모두 닫혀 있고 커튼은 무겁게 내려져 있었다. 누구 하나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마을 같았다. 그때 마을의 중심가를 향해 말 한 필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말 위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여인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타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녀의 몸 위로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이며 흩어졌다. 그녀가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달려 마을을 한바퀴 다 돌 동안 누구 하나 그녀의 몸을 보기위해 창을 열지 않았다. 벌거벗은 나체로 말을 달려온 그녀는 이름난 창녀도 아니었고 타고난 바람둥이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 마을을 다스리는 영주의 부인 레이디 고다이버였다.

△ 11세기 영국의 상황

코벤트리의 영주 부인 레이디 고다이버가 벌거벗고 말을 탄 11세기 영국은 복잡한 정치, 경제적 변화를 맞고 있었다. 영국은 6세기 이후 유럽대륙에서 건너온 앵글로색슨의 나라였다. 그러던 것이 8세기와 10세기에 북유럽 바이킹 족인 데인인들의 침략을 받아 11세기 초반은 데인족의 왕인 크누트1세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데인인들의 영국 통치는 영국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농민계층의 몰락을 야기시켰다. 이전에는 자유 농민으로 영주의 땅을 빌려 소작만하던 농민들의 신분이 데인인들의 가혹한 세금징수에 의해 노예상태인 농노의 신분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농민들은 자고 나면 오르는 세금의 무게에 허덕이며 신분적으로는 영주에게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속박되었다.

런던과 비교적 가까운 지역의 번성한 마을 코벤트리도 영국 전체 상황과 그다지 다른 길을 가지는 않고 있었다. 코벤트리의 영주 레오프릭은 날이면 날마다 농민에게 징수하는 세금을 올려 대고 있었다. 그가 침략자 데인인이라는 말도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가 데인인들의 가혹한 세금 징수에 발맞추어 세금을 늘려 나간 점은 그가 데인인이든 아니든 농민들에게는 침략자로 보였을 것이다.

△ 코벤트리의 영주 부인 레이디 고다이버

코벤트리의 가혹하고 잔인한 영주, 레오프릭에게는 그와는 정반대 성격의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레이디 고다이버이다. 그녀는 6세기 이후 영국에 들어온 기독교를 신실하게 믿으며, 신 앞에 겸허한 마음을 가진 정직하고 숭고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남편 레오프릭이 데인인이라고 일컬어 지곤 하는데 비해 고다이버는 당시 데인인들에게 핍박받던 토착민인 앵글로색슨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되고 있다.

고다이버는 나날이 몰락해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고 남편의 과중한 세금정책을 비판한다. 신실한 믿음을 가졌던 고다이버는 가난한 농민들이 남편의 세금 때문에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세금을 줄여 영주와 농민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라고 남편에게 충고한다. 그러나 레오프릭은 고다이버의 말을 귓전으로 흘려 보냈다. 그녀의 숭고한 마음을 비웃기도 하였다.

레오프릭은 고다이버의 읍소가 그칠 줄 모르자 그녀에게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고다이버의 농민에 대한 사랑이 진실이라면 그 진실을 몸으로 직접 보이라는 것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나가 마을을 한바퀴 돈다면 그녀가 그토록 호소하는 세금감면을 고려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고다이버는 갈등에 빠진다. 그러나 남편의 폭정를 막고 죽어가는 농민들을 구할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그 길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다이버는 남편의 제안?수락한다. 이 일이 코벤트리의 농민들 사이에 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제 어느 때 레이디 고다이버의 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농민들은 영주의 부인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그녀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농민 스스로도 큰 결정을 내리게 된다. 레이디 고다이버가 벌거벗고 마을을 도는 동안 마을 사람 누구도 그녀의 몸을 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마침내 레이디 고다이버가 벌거벗고 마을로 내려온 날. 코벤트리 전체는 무거운 정적 속에서 은혜로운 영주부인의 나체시위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고다이버과 관련한 여러 가지 것들

그러나 도저히 호기심을 참을 수 없는 사람도 한 명 쯤은 있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영주 부인의 알몸이라는 매혹적인 말에 이끌린 코벤트리의 양복 재단사 톰은 마을사람들과의 합의를 잊어버리고 그만 커튼을 슬쩍 들추어 레이디 고다이버의 나신을 보려 하였다. 그 순간 톰은 눈이 멀고 만다. 숭고한 고다이버의 뜻을 성적인 호기심으로 더럽히려 한 것에 대한 신의 벌이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톰에 대한 이야기는 훔쳐보기의 대명사로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말로 전해지고 있다.

레이디 고다이버의 이야기는 이후 학자와 역사가들에게 많은 논쟁거리가 되었다. 숭고한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녀가 행한 알몸 시위가 너무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관행이나 상식, 힘의 역학에 불응하고 대담한 역의 논리로 뚫고 나가는 정치’를 고다이버의 대담한 행동에 빗대어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다이버의 파격적인 알몸은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뜻깊은 일이었다. 요즘의 많은 미인들의 알몸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 잠시 생각해 볼 일이다.

김정미 방송ㆍ시나리오 작가


입력시간 : 2004-02-11 17:11


김정미 방송ㆍ시나리오 작가 limpid7@ms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