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풍요의 노예


옷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방앗간 참새’ 정신으로 여성복 SPA(제조 소매업)형 브랜드매장에 들렸습니다. SPA형 브랜드는 생산에서부터 판매 유통까지 한 기업이 도맡기 때문에 20~30% 다운된 가격이 가장 큰 메리트지요. 보통 티셔츠가 3~4만원 정도로 싼값도 값이지만, 1주일에 한번씩, 때에 따라 매일같이 새로운 상품을 내걸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매장에 들리기 위해 약속 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말이죠.

빠듯한 쇼핑시간에도 불구하고 옷걸이와 진열장을 꼼꼼히 훑어보았습니다. 이전부터 구입하고 싶었던 디자인의 스포츠 티셔츠 발견! 그런데 이런, 연노랑, 연두, 파랑, 분홍, 연파랑 등 5가지 색상이 나란히 걸려 있군요. 전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대보고 비교해 보기를 몇 분. 결국 조언자 없이 홀로 매장에 입성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빈손으로 돌아 나왔습니다.

유행 경향이 한 벌의 개념을 떠나 캐주얼한 멀티코디의 개념으로 변화되고 있기에 옷가게들은 상품이 넘쳐납니다. 더구나 SPA형 브랜드들은 기존 브랜드에 비해 2~3배 많은 상품을 비치하고 있어 고르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줍니다. 그러나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가지고 있는 옷들과의 조화며, 내 체형, 피부색까지 짧은 순간이지만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자신의 취향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는 한 단 하나의 선택은 언제나 고민이 따르는 법이지요.

풍요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나름대로의 원칙이 필요할 듯 합니다. 계절이 바뀌기 전 새 옷과 구두를 사기 전에 자신의 옷장과 신발장을 먼저 정리해 보면 어떨까요?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다시 구입하게 되는 실수를 줄이고 ‘옷이며 가방이며 이렇게 많았던가?’하며 충동구매의 유혹에서도 해방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분홍색이랑 연두색, 두개만 사올 걸 그랬나?’하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3-04 20:53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