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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여성이야기] 에멀린 굴덴 팽크허스트
피의 투쟁으로 얻은 소중한 '참정권'
'여성참정권운동'으로 남성만을 위한 반쪽정치를 변화시키다




선거의 계절이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번 총선에는 이전보다 국민들의 관심이 더 많이 쏟아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또한 현재의 전망일 뿐, 한달 뒤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들은 자신의 참정권을 너무 쉽게 행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관심 속에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성인 남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 참정권의 역사는, 그러나 채 150여 년이 되지 않는다. 평등한 참정권을 얻기 위해 인류는 지난 세기동안 무수한 피와 투쟁의 역사를 치뤄냈다. 그 중에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한 투쟁은 그 어떤 참정권 투쟁보다 길고 지루했으며 또한 과격했다.

1912년 3월 영국 런던의 피카딜리가를 비롯한 주요한 거리에 위치한 건물의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모조리 박살이 났다. 영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200여명의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벌인 일이었다. 이 여성들은 모두 WSPU(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ㆍ 여성사회정치연합)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거리의 유리를 깨며 주장한 것은 여성의 정치 참여를 위한 권리 획득이었다. 그들의 운동은 10여년 째 계속되었지만 영국정부로부터는 아무런 회답이 없었다. 울분에 찬 여성들은 점점 더 과격하고 파괴적이 되어 갔다. 이 정치 단체의 대표로 시위를 주도한 사람은 에멀린 굴덴 팽크허스트(1858-1928)였다.


- 빅토리아시대 영국의 정치상황과 에멀린 팽크허스트





빅토리아 시대, 의회민주주의의 효시이며 꽃이라고 불린 영국정부의 민주주의는 남성들, 그것도 돈 있는 남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일정한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낼 수 있는 재산가 남성들에게만 참정권이 주어져 있었다. 이후 영국정부는 몇 차례 법개정을 통해 참정권을 확대해갔지만 그때마다 여성의 참정권은 번번히 무시되곤 했다. 1860년대부터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여성의 참정권을 꾸준히 의회에 상정하였지만 매번 부결되었다. 참지 못한 여성들은 이제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아무 것도 이루어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영국정부의 합법이란 것은 여성의 시민으로써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은 WSPU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바로 과격하며 비합법적이었지만 그 효과와 영향이 극대화되는 격렬한 시위였다. WSPU의 지도자인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리차드 팽크허스트와 결혼하면서 여성 참정권 운동에 눈을 뜨게 된다. 리차드는 존 스튜어트 밀의 친구였으며, 그 또한 여성 참정권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남편과 함께 독립노동당에 들어가 여성의 정치참여를 위한 운동에 투신한다. 그리고 남편 리차드가 1898년 사망한 후에는 스스로 맨체스터 교육위원회 위원이 되어 정치 활동을 이어나간다.

- 팽크허스트가의 모녀

남편 리차드의 유업과 에멀린 스스로의 권리 의식은 딸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세 딸 크리스타벨, 실비아, 아델라는 어머니 에멀린을 도와 여성참정권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WSPU 조직은 바로 이 팽크허스트 모녀가 만들어낸 노력의 산물이었다. WSPU는 1903년 결성되어 영국여성 참정권운동을 주도하여 갔다.

팽크허스트가의 모녀는 폭력 시위부터 단식까지 여성참정권 획득을 위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팽크허스트가의 여인들은 감옥을 밥 먹듯 들락거려야 했으며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경우 1913년 한해에 무려 12차례 단식 투쟁을 행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WSPU 소속 여성들의 시위는 점차 과격해졌다. 그러던 중 1913년 WSPU의 소속의 에밀리 데이비슨이란 여인이 조지 5세의 경마장에 뛰어들어 1인 시위를 벌이다 말이 치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참정권자들의 분노는 폭발한다. 그들의 시위는 극단화 되고 곳곳에서 남성들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던 건물들이 파괴되고 불타기 시작했다. 영국의 경찰서는 여성시위자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 1차대전이 여성참정권운동에 미친 영향



양단으로 치닫던 영국정부와 여성참정권자들의 화해는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이루어졌다. 1차대전 발발로 세계 전쟁에 참여하게 된 영국정부에 대해 에멀린과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는 지嗤?표명한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여성참정권운동을 자제하면서 전쟁으로 부족한 일손을 여성의 전시노동 참여로 보충할 수 있도록 운동을 변화해나간다. 한편 둘째딸 실비아와 셋째딸 아델라는 어머니 에멀린과 큰언니 크리스타벨과는 다른 길로 여성운동의 길을 모색한다. 어머니와 큰언니가 선택한 길은 부루조아 여성들의 참정권 획득 운동이었다고 판단하고 당시까지도 참정권을 획득하지 못했던 노동자들과 여성 전체를 위한 운동에 눈을 돌린 것이다. 실비아와 아델라는 제국주의 전쟁에 참여한 영국정부에 반전 기치를 내걸고 노동자 계층과 함께 새로운 여성운동을 펼쳐나갔다.

- 긴 투쟁끝에 획득한 여성참정권

1918년 영국정부는 마침내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허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주어진 선거권으로 불완전한 것이었다. 남성과 똑같이 21세부터 선거권을 가지게 되는 완전 평등 참정권은 1928년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살아 생전에 남녀평등 참정권이 이루어져 자신의 평생에 걸친 운동이 결실을 맺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에멀린 사후 그녀의 동상이 영국 국회 의사당 뜰에 세워진다. 일생을 걸친 여성 참정권획득을 위한 그녀의 노력이 마침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여성의 참정권은 1893년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인정되었고 그 뒤를 이어 1920년에 미국, 1928년에 영국, 1944년에 프랑스에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948년의 일이다. 올바른 여성참정권의 역사는 아직 100년을 넘지 못했다.



김정미 방송ㆍ시나리오 작가 limpid7@msn.com


입력시간 : 2004-03-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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