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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엿보기] 남자친구의 애마를 질투하다


생전 처음 ‘내 차’라는 걸 가져보고, 또 운치 있는 드라이브의 기분을 만끽하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가 새 차를 몰고 왔다. 아담한 경차만 몰던 내게 그의 잘 빠진 차는 매우 흥미진진해 보였다. 난 아주 단순한 호기심에서, 운전석에 자랑스럽게 앉아있던 그에게 말했다.

“잠깐 내려와봐. 나 한 달 전에 운전면허 딴 거 알지? 오늘은 내가 몰아볼께.”

그러자 그는 약 3초간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일단 순순히 운전대를 내게 양도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고행길이었다! 서툴지만 나름대로 재능이 있었던 나는 1분 이내에 내 차처럼 적응할 수 있었다. 정작 문제는 차가 아니라 옆자리의 그였다. 내가 운전대에 앉는 순간부터 내리는 그때까지, 그는 깐깐한 시어머니처럼 죽어라 잔소리를 해댔다.

“아니지, 이럴 땐 이렇게 해야지. 매끄럽게, 아니 아니, 그렇지. 그래. 여기선 말야….”

새 차로 드라이브하는 즐거움은커녕 피곤함만 가중되었다. 그날 이후 난 남자들이 자기 차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지를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조심하기는커녕 다른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도 종종 비슷한 수법으로 그들을 ‘시험에 들게’ 하곤 했다. 얼마나 아끼는지 뻔히 아는 그의 차를 시침 떼고 몰아 보겠다고 한다든지, 다른 생각에 골몰한 듯 터프하게 차문을 쾅 닫고 나간다든지, 새로 마련한 카오디오 세트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든지(거꾸로 차 주인인 그보다 더 지대한 관심을 표시하며 이리저리 버튼을 눌러 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들의 간을 쫄아붙게 만들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마 지금쯤 잔혹 엽기 시트콤을 시청하는 기분일지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여자들은 대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물론 나처럼 짓궂은 장난기를 노골적 혹은 열정적으로 뻗치지는 못하겠지만, 그가 자신보다 차를 더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며 종종 손톱을 물어뜯기도 한다. 심한 경우 새 차에 흠집을 낸 연인에게 평정심을 잃고 폭언을 퍼부어댄 그 남자 때문에, ‘거의 완벽해뵈던’ 커플이 하루아침에 와장창 깨지는 사례도 있다. 그럴 때 그녀가 느낄 비참함이란 이루말할 수 없다.

‘아아니, 내가 이 차보다 못하단 말이야? 고작 이만큼 대우 받고 있었던 거야?’

그렇잖아도 사소한 걸로 오만 가지 대상들과 비교 분석에 빠지며 자존심 곡선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녀에게, 분명 이건 너무 잔인한 처사다. 비록 당신은 ‘아주, 아주, 아주 무심코’ 저지른 일이라 해명하겠지만 말이다. 소중한 차에 어디 무슨 일이라도 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그 작은 제스처, 퉁명한 손길, 놀란 눈동자 등을 통해 그녀는 당신의 마음을 해독하려 한다.

요즘은 근사한 여자 오너드라이버들도 늘고 있어 상황이 변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그녀들도 당신 만큼 자기 차에 민감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남자 친구에 대한 이 가혹한 ‘드라이브 테스트’는 그만 두지 않을 생각이다. 왜냐고? 아무리 백 배 양보하고 이해해줘도 ‘그까짓 차 때문에’ 그의 태도가 확 달라진다면, 그 남자는 분명 속 좁고 센스 없는 남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당황하거나 놀랐더라도 그 감정을 여자 친구에게 어떻게 매너 있고 재치 있게 표현하느냐?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중요하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마음스타일리스트 morpeus@freechal.com


입력시간 : 2004-04-0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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