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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04~05 가을 겨울 서울컬렉션 위크
빛과 색의 잔치, 그리고 막 뒤의 숨가뿐 3분 전쟁
35명의 디자이너, 28번의 패션쇼, 패션계 최대 축제
40초 워킹 뒤 촌각 다투는 옷 갈아입기, 20분간의 산고와 그 뒤의 '환희'


어두운 장내는 이미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실내의 작은 변화가 인파를 숨죽이게 만든다. 쇼의 시작이다. 질끈 눈이 감기는 200여개의 조명이 밝혀지고 빛 속에서 살아있는 ‘작품’이 걸어 나온다. 우아하고 섹시하게, 20분이 채 안되는 라이브 무대, 패션 쇼는 종합예술이다. 신선한 충격과 새로움으로 가득한, 패션의 환상이 현실이 되는 컬렉션. 그 밝은 조명 뒤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 한국 패션의 현재와 미래 한 눈에

4월2일부터 5일간 ‘04~05 가을겨울 서울컬렉션위크’가 열렸다. 35명의 패션디자이너가 총 28번의 패션쇼를 연 이번 컬렉션은 한국 패션계의 큰 축제였다. 이진윤씨처럼 처음 패션 쇼를 갖은 신인에서부터 지해, 문영희 등 해외에서 더 유명한 해외파까지, 한국 패션의 현재와 미래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컬렉션은 왜, 어떻게 열리는 것일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은 패션 디자이너와 모델, 스타들이다. 단지 화려함으로 치장된 것이 패션 쇼라고 지레짐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대체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몇 십억원의 비용이 들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수 있다. 하나의 주제 아래 연작으로 제작된 한 벌의 의상에는 디자이너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디자이너 문영희씨는 이번 컬렉션의 의상 컨셉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바로 “의상이 아니라 작품”이라고 정정한다. 그렇다. 단순히 옷이라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금전을 드릴 필요가 없다.

1년에 두 번 열리는 컬렉션의 1회의 규모는? 행사를 주관한 한국패션협회는 1회당 1,250여명, 총 3만5,000여명 방문했을 것이라 추정했다. 컬렉션 도우미로 일한 세종대 패션디자인학과 3학년 윤춘호군은 “무보수에 종일 서 있는 것은 고생이지만 평소 동경하던 디자이너의 작품을 가까이서 만나는 보람이 크다”고 말한다. 윤군과 같은 도우미 100여명 외에도 참가 디자이너 및 스태프 580여명, 무대, 음향, 조명, 연출, 헤어 메이크업 스태프 등 쇼 진행요원 420여명, 모델 620여명 등 패션 쇼 진행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는 사람만 총 1,700여명에 이른다. 여기에 국내외 기자단 600여명, 조직위원회 측 초청 인원 700여명도 컬렉션을 빛냈다.

컬렉션 제작비는 우선 서울시, 산자부 지원금이 모두 4억9,000만원이 투입됐다. 디자이너 개인이 지출하는 비용은 적게는 1,00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1억원이 넘었다는 후문. 그 외에 실제 컬렉션 총 제작비 집계는 불가능하다. 컬렉션 제작 비용은 행사장 운영 및 홍보마케팅 진행에 따라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즉 컬렉션 진행과 관련된 하드웨어, 무대, 음향, 조명 등을 어떻게 구성하느냐, 홍보 마케팅을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인력과 제작비가 투입된 컬렉션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자.

패션 쇼 무대라 하면 보통 일자로 하얀 천이 덮인 높은 단을 생각하겠지만 각 디자이너의 개성에 따라 색다른 모습으로 단장된다. 론커스텀 정욱준씨는 ㄷ자 형태로, 미쓰지 컬렉션 지춘희씨의 무대는 지그재그로, 하우앤왓 박병규씨는 나뭇가지와 낙엽, 흙으로 늦가을 분위기를 연출했다. 무대를 천이 아닌 유리(이영희)나 자개바닥(강기옥 어반룩)으로 치장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진윤, 수한, 한승수씨 등은 높은 무대를 세우기보다 넓은 지면을 그대로 이용해 웅장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변형 무대에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무대 설치에만 1,000여만원이 들 정도. 그러나 옷은 입는 사람이 중요하듯 작품에는 환경이 중요하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 "의상이 아니라 작품"

궁금한 무대 뒷모습은 어떨까. 무대 뒷모습은 아무나 볼 수 없다. 완벽한 무대를 위해 철저히 비밀리에 붙여지기 때문. 그러나 붉은 색 ‘B’자가 찍힌 백스테이지 출입 허가증을 목에 건 취재진들과 패션 쇼 관계자들에게 무대 뒤는 주요 활동무대다.

A, B관에서 한 회 건너 한번의 컬렉션이 열린다. 앞 쇼가 끝나면 바로 한 타임 건너 쇼가 준비된다. 많은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행사이다 보니 시간 엄수는 필수다. 1시간 30분 정도의 간격으로 진행되는 쇼는 무대 장치, 리허설, 내부 정리 등을 따지면 빠듯한 시간. 스태프들은 다림질에 바느질에 눈코 뜰 새가 없다. 의상을 점검하고 가방, 신발, 모자, 액세서리 등 소품을 챙긴다. 곧 이어 헤어메이크업을 완료한 모델들이 무대 뒤로 속속 모여든다. 모델들은 ‘옷 갈아입기’도 도움을 받는 호사를 누린다. 약 40초 정도 워킹을 끝내고 다음 의상을 갈아입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분 내외이기 때문이다. 리허설은 배경 음악과 조명, 모델들의 워킹을 맞춘다. 단순히 걸어 나갔다가 들어오는 무대가 아닌 ‘연기’가 필요한 무대라면 연출자의 마이크 톤은 더욱 높아진다.

리허설 중 만난 톱모델 박둘선에게 워킹 중 무슨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냥 걸어요!” 한마디를 남기고 총총히 빛 속으로 뛰어 든다. 30분 정도의 짧은 연습시간을 위해 모두가 집중해야 한다. 리허설 중에는 “옷 사이즈가 안 맞아요!”, “신발을 신고 옷을 갈아입을 수가 없어요!” 같은 돌발 상황도 대처해야 한다.

바닥이 울릴 정도의 볼륨과 비트로 쇼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배경음악은 워킹하기 좋은 비트 위주의 일레트로닉 사운드가 주를 이룬다. “디자이너에 따라, 작품 수에 따라 배경 음악도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4~5곡 정도가 사용된다.” DCM 연출부 고경숙씨의 말이다.

컬렉션 패션쇼의 다른 점은? 모델센터 연출부 김성식씨는 “기본적으로 20~25m 길이의 무대가 컬렉션장에 맞게 28m로 길어졌다. 시간은 평균 15~17분, 두 팀 이상의 조인트 쇼는 20분 정도로 짧은 편”이라고 답했다.

두개의 컬렉션장 중간은 헤어메이크업의 장소다. 컬렉션 헤어분야 총 지휘를 맡은 헤어디자이너 오민씨. 올해로 21년째 컬렉션 헤어를 담당하고 있는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모델은 하루에 100여명. “모델 한 명당 손질 시간은 1분이 채 안된다. 현장에서 제작하기 힘든 헤어는 가발을 이용한다”고 귀띔한다.

- 모델에게 저녁식사는 금물

패션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꽃은 바로 모델이다. 9년 전 앳된 얼굴로 데뷔했던 모델 장윤주는 “운동요? 자주 하지 못한다”면서 “모델들은 게으른 편이다. 패션 쇼에 화보, CF촬영 모두 불규칙하게 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톱모델 김은심은 컬렉션을 어떻게 준비할까? “움직임이 많은 모델은 식사를 거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컬렉션 기간 중에 저녁식사는 절대 금물”이라고 말한다. 이번 컬렉션 지해, 하우앤왓의 무대에 선 그녀는 14년차 현직 모델이다. “내 사전에 은퇴란 없다. 단 한명의 디자이너가 찾더라도 무대에 설 것”이라 말한다. 그녀는 아직도 무대위의 여신이다.

대규모 컬렉션에는 모델도 수입된다. 슬로바키아 출신 17세 카타리나는 임현희의 니트 의상을 입고 연신 ‘뷰티풀!’을 외쳤다. 비피 바이 임현희 컬렉션에는 선 14명의 모델이 모두 외국인이다. 임씨는 “해외 바이어들을 주로 상대하다 보니 의상도 그에 맞게 외국인 체형을 고려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카멜라, 클라우디아, 케이트, 비올라 등 동유럽과 남아메리카 태생의 인형 같은 외모와 8등신 몸매의 모델들은 경험은 적지만 신체적인 조건덕분에 컬렉션 모델로 선택된다. 남자모델들의 경우는 꽃미남 일본인 모델들이 객석을 사로잡았다.

보고 즐기는 패션 쇼는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기도 한다. 수한 한승수씨의 무대 전후에는 ‘Moving’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힘이 넘치는 재즈댄스가 선보였고, 론커스텀 정욱준 컬렉션에는 양주메이커 헤네시의 위스키가 웨이트리스 차림의 모델들에 의해 관객석에 전달됐다.

- 패션쇼의 또다른 즐거움 '스타들 만나기'

패션 쇼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바로 스타들의 등장이다. 이번 컬렉션에는 배우 최수종-하희라 부부, 김혜수, 윤석화, 김희애, 신애라, 김민희, 김민, 손태영, 권상우, 연정훈, 아나운서 최은경, 박나림, 김범수 등이 자리했다. 강희숙과 미쓰지 컬렉션에 모습을 드러낸 배우 이영애는 한번은 니트 카디건과 실크스커트 차림으로, 또 한번은 비즈 장식 재킷 차림으로 스포트라이트 세례를 받았다.

몇몇 스타들은 화면에서 못다 표현한 끼를 무대 위에서 발산했다. 대장금의 명조연인 견미리는 뻬띠앙뜨 컬렉션에 모델로 섰고, 끼가 다분한 아나운서 출신 엔터테이너 임성민은 기센 컬렉션에, 배우 김남주는 지해 컬렉션에서 직업 모델 못지 않은 워킹을 선보였다. 로맨틱 여성복 라뚤의 무대에는 단 한명의 남자모델로 이동건이 등장해 여성 팬들의 환호를 얻었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씨는 “패션에 대한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 사진작가 김중만 씨는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기 위해” 컬렉션을 찾는다고 한다. 들뜬 기분으로 컬렉션을 찾는 이들과 달리 디자이너들은 “한번의 컬렉션이 끝나자 마자 다음 컬렉션을 준비한다. 다시 6개월의 고된 창작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단 20분의 무대를 위해 공들이는 시간으로는 과하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무대를 내려와 허탈감을 느낀다. 처음 큰 무대에 선 신인 디자이너 이진윤씨는 무대 뒤에서 감격인지 허탈감인지 모를 눈물을 쏟았다. 그들의 눈물처럼, 땀처럼 소중한 ‘작품’과 ‘작업’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시간, 20분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


입력시간 : 2004-04-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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