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서 고독과 함게 사는 법사랑으로 버텨낸 절해고도에서의 삶, 코코넛은 훌륭한 양식

[문화 속 음식이야기] 영화 <캐스트 어웨이> 코코넛
무인도에서 고독과 함게 사는 법
사랑으로 버텨낸 절해고도에서의 삶, 코코넛은 훌륭한 양식


평생을 자기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 죽어 어느 섬에 홀로 남겨졌다. 그 곳은 먹을 것도 풍부하고 조용하여 살기 좋은 섬이었다. 그는 처음 얼마 동안은 행복하게 지냈지만 곧 사람이 그리워 미칠 지경이 되었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에게 “제발 사람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시오”라고 애원했으나 거절 당한다. 그가 있던 장소는 바로 이기적인 사람들을 벌주는 지옥이었던 것이다.

이 동화가 시사하는 바처럼 ‘고독’이란 인간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 중에 하나이다. 그 고독은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존재하기도 하지만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대한 도시 속에도 있다. 무인도를 배경으로 한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고독이라는 것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페더럴 익스프레스(FedEx)’의 직원인 척 놀랜드(톰 행크스 분) 전 세계를 무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자 친구인 캘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에게 다시 출장 명령이 떨어지고 그들은 연말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그런데 척이 타고 가던 페덱스 전용기가 남태평양 상공에서 추락하고, 그는 외딴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다.

돌아갈 길이 막막해진 척은 비행기 잔해 속에서 찾아낸 소포들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다. 그는 간신히 물과 음식, 거주지를 해결해 가지만 무서울 정도의 고독과 캘리에 대한 그리움만은 어쩔 수가 없다.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그는 소포 속에서 발견한 배구공에 얼굴을 그려 넣고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 친구로 삼는다. 도시 속에서 정신 없이 살아온 척은 무인도에서 처음으로 지나온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는데….

- 4년만의 귀향, 그리고 캘리의 결혼

캘리를 향한 사랑으로 4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온 척. 어느 날 파도에 떠내려온 알미늄 판자를 이용해 배를 만들고, 모진 풍랑을 이겨내며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캘리는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후였다. 삶의 깊은 허무를 경험한 척은 그가 배달하지 못한 소포를 주인에게 전해주기 위해 떠난다.

이 영화는 <로빈슨 크루소>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무인도 생활의 흥미나 아슬아슬한 모험보다는 주로 척의 심리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그래도 짧게나마 그가 무인도에서 물고기 잡는 법, 불 피우는 법 등을 터득해 나가는 모습이 숨은 재미를 준다. 목이 마른 척은 단단한 코코넛 열매를 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힘겹게 깨뜨린 코코넛 열매에서 나온 달콤한 물은 생명수와도 같았을 것이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을 자연의 고마움에 대해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흔히 ‘야자’라고도 불리는 코코넛은 원래 말레이시아 지방 원산의 식물이다. 녹색의 겉껍질을 벗기고 나면 커다란 씨가 나오는데 그 안에 들어 있는 배젖이 우리가 알고 있는 코코넛 즙이다. 갈색 섬유질의 속껍질을 쪼개면 그 속에 단단하게 붙어 있는 과육과 투명한 물이 나온다. 이 과육은 덜 익었을 때에는 반투명한 색깔에 젤리와 같은 촉감으로 그대로 먹기도 하고 음료수에 넣어 씹히는 맛을 더하기도 한다. 열매가 완전히 익으면 이 과육은 하얗고 단단해지는데 이것을 깎아서 말린 것을 코프라(copra)라고 하여 과자 재료로 쓴다. 케이크나 과자를 먹을 때 견과류처럼 고소한 맛을 내면서 아삭아삭한 느낌이 있는 것이 바로 코프라이다.

- 동남아 요리에 빠지지 않는 재료

코코넛의 속살을 기계에 넣어 참기름 짜듯이 짜내면 우유 빛의 코코넛 밀크가 나온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코코넛 밀크는 값이 싸면서도 여러 가지 요리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재료이다. 특히 태국의 ?c양꿍 같은 국물 요리에는 코코넛 밀크가 매운 맛을 중화시켜 주며, 독특한 풍미를 더해준다.

<타잔>처럼 열대 지방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코코넛을 따, 그 자리에서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사실 그렇게 먹으면 ‘하나도’ 안 시원하다. 실온에 놓아둔 코코넛 물은 미지근한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 코코넛에는 특유의 약간 비릿하면서 느끼한 맛이 있어 처음 맛보는 사람은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동남아 지역에 가면 시장에서 흔히 코코넛을 맛볼 수 있는데 단단한 열매를 쪼개서 그 안에 설탕도 넣고 얼음을 타서 시원하게 해준다. 코코넛을 좀 더 쉽게 먹기 위해서는 열매 위쪽에 삼각형 모양으로 나 있는 세 개의 둥근 홈을 찾는다. 그 중 가장 무른 홈에 과도로 구멍을 뚫?빨대를 꽂으면 안에 있는 물을 쉽게 마실 수 있다.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고 싶을 때 한가롭게 즐기기 좋은 과일이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4-15 13:49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