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은은함, 타락한 권력을 비웃다씻김의 속 뜻 지닌 출소자의 음식, 값 싸고 영양도 만점

[문화 속 음식이야기] 박완서 산문집 속 두부
순백의 은은함, 타락한 권력을 비웃다
씻김의 속 뜻 지닌 출소자의 음식, 값 싸고 영양도 만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이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연일 뉴스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죄를 짓고서도 반성의 기미가 없는 그에게 국민들은 분노한다. 그런 그의 후안무치를 이미 짐작이라도 한 것일까? 소설가 박완서씨는 산문집 <두부>를 통해 위정자의 가식적인 모습을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글월로 비판하고 있다.

<두부>는 어느덧 70대에 이른 박완서씨가 약 5년의 공백을 깨고 내놓은 산문집이다. 총 23편의 산문들은 작가가 1995년부터 2002년 6월까지 써 온 글이다. 이 산문집은 크게 네 개의 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1부 ‘노년의 자유’는 작가 자신의 가족사 이야기로 시작해 정주영 회장의 방북, 월드컵 때의 흥겨움 등 노년이 되어 바라본 세상사를 담고 있다. 제 2부 ‘아치울 통신’에서는 자택이 있는 아차산 자락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단상을 그렸고, 제 3부 ‘이야기의 고향’에서는 자신의 고향인 개성과 개성 사람 이야기를 특유의 문체로 맛깔나게 소개한다. 제 4부 ‘사로잡힌 영혼’에서는 김윤식 교수와 화가 박수근 등 지인들의 추억에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는 글 속에서 늙음을 “삶의 원경(遠境)으로 물러 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이 시사하듯 이 책에서는 나이듬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담담한 성찰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마지막 글 ‘모두 모두 새가 되었네’가운데 “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 순간적으로라도 지구의 중력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황홀한 자유, 비상의 쾌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구절은 가슴이 찡해지는 듯한 감동을 준다.

- 무미속 쓴 맛, 부끄러운 권력에 일침

이 중에서 역시 눈길을 끄는 글은 표제작인 ‘두부’이다. 지난 98년의 대통령 취임식 중계를 보며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감상을 하나씩 드러낸다. 그 중에서도 유독 달라지지 않은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재임기간에나 백담사로 쫓겨날 때나 재판을 받을 때에도 ‘오야붕’ 다운 으스댐을 잃지 않았다고 작가는 꼬집는다.

연희동 사람들은 플래카드를 내걸고 마치 영웅이라도 맞이하듯이 출소하는 전직 대통령을 반긴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보였어야 할 모습은 “한 모의 두부를 향해 고개 숙인” 모습이었다. 죄의 대가를 치르고 나와 하얀 두부 파편을 입술에 묻힘으로써 극도의 자기 모멸을 경험하고, 그를 통해 본래의 자신을 찾는 것이 중요한 통과 의례이기 때문이다. 위정자라고 해서 그 통과의례를 피해가서는 안 된다.

* 두부 만들기:
-재료: 콩 500g(2모 기준), 간수 12g, 물

* 만드는 법:
1. 콩을 깨끗이 씻어 물에 8~10시간 가량 불린 다음 믹서나 맷돌로 간다.
2. 1의 콩물을 자루에 넣고 짜낸다. 이때 물의 양이 마른 콩에 비해 8배가 되도록 한다.
3. 거품을 제거하고 약한 불에 올려 끓은 지 1~2분만에 불을 끈다.
4. 80℃정도의 온도로 콩물을 식힌 다음 이때 물에 녹인 간수를 조금씩 천천히 넣고 젓는다.
5. 두부틀에 보자기를 깔고 순두부를 넣은 후 천으로 싸서 뚜껑을 덮은 후 무거운 것으로 누른다.
6. 20~25분 후 두부가 완성되면 칼로 잘라 순두부 끓인 물에 넣었다가 냉장고에 보관한다.

이어 박완서씨는 출소 후에 두부를 먹이는 관습에 대해 “두부가 다시 콩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의미”라고 풀이한다. 또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치세에 많은 젊은이들이 감옥에 가야 했던 것을 회고하며 옥살이를 명예스러워 하는 시대는 삐뚤어진 시대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삐뚤어진 시대에 대한 노작가의 충고 한마디는 따끔하다. 무미의 두부 속에는 이처럼 쓴맛이 감추어져 있다고.

실제로 출소자에게 두부를 먹이는 것은 감옥에서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 사람에게 단백질 보충을 시켜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만큼 두부는 값이 싸면서도 양질의 단백질을 보유하고 있다. 그 때문에 채식을 하는 승려들에게 예로부터 애용되었다. 오늘날 서양의 채식주의자들도 낯선 음식이었던 두부를 고기 대신 즐겨 먹는다. 두부는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인 중국 한나라 시대, 회남왕 유안이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문헌상으로는 고려 말 이색의 ‘목은집’에 처음 등장한다.

두부는 맛이 담백하여 생으로 먹는 것 뿐 아니라 찌개, 부침, 조림 등 요리에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값싸고, 서민적인 정취를 풍기면서도 뛰어난 영양가를 갖춘 두부는 그 자체가 정직함과 겸손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출소 후에 두부를 먹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을 붙이자면, 부드럽고 은은한 두부처럼 욕심 없는 삶을 살라는 의미가 아닐까?

금방 만든 신선한 두부의 맛을 보려면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집에서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이때 콩은 서리태를 이용하고, 들기름을 약간 첨가하면 더욱 고소하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4-22 16:20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