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무식하게 패션 논하기


얼마 전 일간지에서 건축비평가 겸 택시운전사인 이용재씨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신간 안내 TV프로에서 식은 땀을 흘린 기억을 적으면서 진행자가 묻는 말에 건축에 대한 정의도 잘 모르겠다, 책 제목에 대한 의미도 별 뜻 없다고 해서 대형 사고를 칠 뻔 했답니다. 막상 카메라 앞에 앉아서도 대본은 생각 안 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안 되는, 스스로 NG를 외치는 상황을 연발했고 그냥 친한 건축가이고 술 얻어 마신 빚을 갚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하는 그를 어찌 방송 담당자들이 반겼겠습니까. 솔직할 수 없는 방송의 실상을 대면한 그는 ‘무식하게 방송하면 안 되나, 그래야 중학생인 내 딸이 알아들을 텐데’라고 하더군요.

같은 경험이 있습니다. 드물게 패션칼럼니스트로 소문이 났는지 가끔 방송국 인터뷰 요청을 받는데요, 성의 있는 답변서까지 작성해 나간 인터뷰 자리는 매번 그들이 원하는 답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게 되더군요. 왜 봄부터 반팔을 입죠? 그거냐 봄 날씨가 여름처럼 더우니까요. 다른 이유는 없나요? 백화점 세일이 앞당겨져서 여름 상품이 빨리 나온 것도 이유죠. 그거 말고요, 유행과 연관해서 말해 주세요. 음, 남과 다른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인가요? 전문가시잖아요, 더 자신 있게 말씀해 주세요. 어쩌고저쩌고, 이렇게 말하면 되나요? 네네 잘하셨어요.

그런데 그 부분은 이렇게 말해 주시고요, 큐 들어갑니다. 휴, 무식한 방송까지는 아니더라도 앵무새 노릇은 면했으면 합니다.

나름대로 전문가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으로서 일반인들이 ‘패션’에 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혹시 전혀 생소한 단어를 나열하면서 독자들을 괴롭게 하지는 않는지 항상 고민입니다.

옷을 그저 벗은 몸을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거나 사치로 여기는 분들에게 ‘패션’을 논하는, 혼자서 배부른 소리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5-13 22:15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