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추억을 비벼 먹는다세상과 격리된 삶을 사는 두 사람의 '최고의 요리'청나라 상인에 의해 인천서 '한국식 중국요리'로 첫선

[문화 속 음식이야기] 영화 <오아시스> 자장면
사랑과 추억을 비벼 먹는다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사는 두 사람의 '최고의 요리'
청나라 상인에 의해 인천서 '한국식 중국요리'로 첫선


사람들은 대부분 값이 비싸고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소위 말하는 ‘싸구려’ 음식에 마음이 더 끌리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잘 나가는 직업에 화려한 외모를 가진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초라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관객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영화 <오아시스>는 이렇게 소박하고, 어둡고, 조금은 비틀려 있는 두 사람의 사랑을 담고 있다.

뺑소니 사고로 감옥에 가게 되었던 종두(설경구)는 한겨울, 감옥에 잡혀 들어갔을 때의 옷차림 그대로 출소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두부를 들고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는 연락이 끊겼던 가족들을 간신히 찾아내지만 가족들은 노골적으로 그를 귀찮아한다.

종두는 어느 날 별 생각 없이 자신이 낸 사고의 피해자의 집을 찾는다. 그곳에서 그는 아무도 없는 낡은 아파트에 혼자 남겨진 여자와 마주치게 된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공주(문소리)는 마치 인형처럼 텅 빈 눈길로 그를 바라보는데…. 종두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다시 그 집에 찾아가고, 저항할 힘이 없는 공주를 추행하려 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종두는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 출소자와 장애인의 사랑

혼자 있어야 하는 삶이 두려웠던 공주와 사회 부적응자인 종두는 이렇게 사랑을 시작한다. 이들이 사랑을 하는 모습은 어설프지만 귀엽다. 종두는 직접 공주의 머리를 감겨주고 옷도 입혀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휠체어를 들고 힘겹게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두 사람은 종두의 형이 운영하는 카센터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인 자장면을 먹는다. 종두는 면발을 돌돌 감아 공주의 입에 넣어주고, 입가에 묻은 자장을 닦아준다. 그들 나름의 근사한 데이트를 마친 후, 종두는 공주를 안고 고가도로에서 신나게 소리를 지른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세상의 편견에 의해 파국을 맞는다. 그들 사이에서는 빛나지만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사랑…. 종두는 다시 감옥에 가게 되고 공주는 혼자 남는다. 그러나 햇살이 비치는 환한 방에서 공주는 홀로 종두의 편지를 읽으며 행복을 느낀다.

영화 속에서 종두와 공주의 사랑은 주로 상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두 사람은 사랑 안에서는 더 이상 장애인도 사회 부적응자도 아니다. 공주는 애인 앞에서 멋지게 노래를 불러줄 수 있는 보통의 여자이다. 그들의 사랑 앞에서는 죽어 있던 그림도 생명을 얻고 함께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평범한 음식인 자장면도 두 사람에게는 어느 진수성찬 못지 않다.

실제로 자장면은 60~70년대까지만 해도 데이트 코스에서 최고의 음식으로 꼽혔다. 값싸고, 간편하면서도 독특한 맛으로 젊은 세대를 사로잡은 것이다. ‘한국식 중국요리’ 인 자장면은 인천을 그 고향으로 하고 있다. 1883년 개항한 인천에 청나라 상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이들을 대상으로 한 중국 음식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국 상인들은 부두 노동자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찾던 중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먹는 자장면을 생각해낸다. 정식으로 자장면이란 이름으로 음식을 팔기 시작한 곳은 1905년 개업한 ‘공화춘’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중국의 자장면은 산동성의 전통음식이라고 한다. 산동성은 밀가루에 콩을 섞어 만든 면장과 톄미엔장 등의 장류가 발달했다. 이는 약간 붉은색을 띠고 있어 우리나라의 춘장과는 차이가 있다. 최초로 자장면을 먹었던 중국인들은 춘장을 많이 넣지 않아 자장면 색은 거의 흰색에 가까웠다고 한다.

- 하루 200억원치 팔리는 인기메뉴

화교들은 이 음식에 야채와 고기를 넣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자장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장면은 검고 단맛이 나야 한다는 인식으로 캬라멜을 첨가하게 된다. 이렇게 한국식으로 탈바꿈한 자장면은 여러 가지 형태로 다양하게 발달해 왔다. 감자와 양파를 듬뿍 넣은 옛날자장에서부터 건더기가 큼직큼직한 간자장, 해산물을 넣은 삼선자장 등이다. 그밖에 유니자장, 사천자장, 유슬자장 등이 중국집의 인기 메뉴로 자리잡고 있다.

전국에서 하루 동안 소비되는 자장면은 평균 720만 그릇이라고 한다. 즉, 200억원에 가까운 돈이 자장면을 사먹는 데 쓰이는 것이다. 지금은 피자나 치킨 같은 다른 외식업체에 많이 밀려났고 과거와 달리 고급 대접도 받지 못하지만 여전히 자장면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배달음식의 대명사로 불리는 자장면이지만 정작 자장면을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중국집에 직접 가서 먹는 것이 좋다. 자장면은 만든 지 3분 이후에는 불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장면 한 그릇의 칼로리는 600kcal를 넘으니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면 삼가야 할 식품에 속한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5-20 15:15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