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아들의 상큼한 도발일상의 권태 날려버린 반항의 패션 역사, 하위문화의 힘 표출미니스커트에서 모즈룩·히피룩·펑크룩까지, 기존 가치관에 대한 도전

[패션] 안티패션
이단아들의 상큼한 도발
일상의 권태 날려버린 반항의 패션 역사, 하위문화의 힘 표출
미니스커트에서 모즈룩·히피룩·펑크룩까지, 기존 가치관에 대한 도전


형광색의 커다란 구슬을 단 목걸이와 귀걸이, 유치한 분홍 에나멜 구두, 땅에 끌리는 바지, 밑단을 아무렇게나 찢은 청바지와 청치마, 너무 작거나 큰 옷가지들, ‘패션’으로 부르기엔 어딘가 모자란, 마치 패션에 반기를 들고 조롱하며 유치찬한 놀이를 즐기기라도 하는 듯한 패션이단아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반(反)미학이 주는 안티패션(Anti-Fashion)의 세상 속으로.

- 노출의 고정관념을 깬 신선한 반항

교복세대에게는 추억이 있다. 똑같아 보이는 교복을 어떻게든 개성 있게 입으려고 치마 허리춤을 접어 올리고, 바지 밑단을 디스코 바지처럼 통 좁게 미싱질한 경험. 절대 보기 좋은 패션이 아닌데도 젊은이들은 고집스럽게 괴상한 패션에 심취할 때가 있다. 기존의 의복 질서를 깨트리는 패션을 ‘안티패션’으로 부르자.

봄, 땅을 녹이는 봄볕이 구름을 헤치고 나오자마자 여성들은 분홍 코의 에나멜 구두를 보고 단번에 사랑에 빠져 버렸다. 모든 결과에는 시작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만, 느닷없는 ‘분홍’의 거리점령은 패션 종사자들을 당황케 했다. 예측 불가능한 패션의 세계가 출산한 사생아의 탄생. 이를 두고 어두운 현실을 잊고자 하는 만인의 ‘꿈’이고 ‘희망’이라고 둘러대며 일기예보만큼이나 변덕스러운 ‘패션의 반항’을 또 한번 체험하게 했다.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 듯 마주치는 타인에게서 영향을 받는 유행의 세력 확장을 두고 이론가들은 ‘상향전파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흑인, 젊은이, 노동자들과 같이 하위문화 집단에 의해 발생한 유행이 사회 전체로 번져 나간다는 설이다. 수입이 낮은 이들 계층이 선택하는 것들은 값싸고 간편하고 실용적이면서도 독특한 색깔을 띠기 때문에 새로운 스타일로 인지되는데, 진과 티셔츠의 유행이 상향전파설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이다.

하위문화가 집단적으로 번지기 시작한 시기는 1960년대부터다. 대량생산과 소비가 시작되면서 사회는 새로운 계급층이 형성된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 명분 없는 월남전에 대한 저항도 반항의 문화를 싹틔우는데 충분했다. 이때부터 다양한 하위집단문화가 발생하고 유행됐는데 이 패션이 상류계층의 엄격한 복식의 상식을 뒤집는 새로운 패션으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또 유행 보급을 도운 것은 잡지와 TV, 영화 등의 통신수단 발달도 한 몫을 했다. 이 과정에서 변화와 독창성을 지닌 패션은 기존 세대의 가치관에 도전하는 반항아로 패션의 주도적 위치를 넘보게 된다.

60년대 여성패션의 첫째 반란은 ‘미니스커트’였다. 1965년 영국 디자이너 매리 콴트(Mary Quant)에 의해 발표된 미니스커트는 젊은이들에게는 계급사회에 대한 반항과 노출의 고정관념을 탈피한 신선함이었지만 처음으로 거리에서 여성의 허벅지를 목격한 사회는 논란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스커트 길이는 점점 더 짧아졌고 미니가 잘 어울렸던 깡마른 모델 ‘트위기’를 따라하기 위해 여성들은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1966년에는 50년대 말부터 번지기 시작한 모즈룩도 ‘반항의 패션’ 대열에 합류한다. 비틀스와 엘비스에 의해 크게 유행한 모즈(Mods)룩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 영국 하류층 청소년과 미대생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새로운 문화로 인식된 팝, 록뮤직에 열광한 패션의 이단아들은 초기에 자신의 사이즈에 맞게 옷과 신발을 직접 만들거나 맞춰 입으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모즈룩의 전성기(1964-65년)에는 마약이 유행했고 처음으로 남자와 여자가 따로 추는 트위스트라는 춤이 등장했다. 당시 또 하나 반항아 패션은 로커패션이었다. 검은 색 가죽으로 온몸에 두르고 오토바이를 타고 스피드를 겨루는 터프한 무리가 로커패션을 주도했다. 도심에서는 모즈, 교외에서는 로커 간의 대립이 폭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60년대 후반은 히피(Hippie)즘이 안티패션의 깃대를 꽂았다. 지식계급이나 예술가 중심으로 기존의 관습에 반발하고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주장하는 탈현실주의가 히피를 낳았다. 반체제 반전의 보헤미안적 성격을 띤 신비주의자들은 싸이키델릭 음악과 소울 댄스, 환각제에 빠졌고 자신의 사상을 패션에 적용하며 반항심을 표현했다. 자수가 놓인 블라우스, 술 달린 벨트, 헤어밴드, 손뜨개 등의 원시적인 의상에 머리에는 꽃을 꽂고, 맨발, 계절과 시대를 거스르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즐겼다. 히피패션의 유행과 함께 당시 대학생들은 청바지를 유니폼처럼 착용해 유니섹스 모드의 시초를 알렸다. 또 히피들의 이러한 모습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쳐 영 패션에 강한 영향을 미쳤으며 히피패션의 개념은 민속풍, 전원풍의 개념으로까지 확대돼 레이어드룩, 이국풍의 의상 유행의 계기가 되었다.

불황의 시기 1970년대는 좀 더 과격한 안티패션이 청년문화를 이끈다. 73년 중동전쟁으로 유가와 물가가 급상승해 세계무역도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고 중반에 접어들면서 영국과 미국은 청년실업자로 들끓었다. 반전운동도 거셌다. 이러한 사회적 불안이 낡은 데님, 군복 등의 안티패션으로 표현되었는데 이 반(反)패션이 하이패션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반사회적인 펑크패션이 등장했다. 펑크(Punk)는 1976년 영국의 로큰롤 그룹인 섹스피스톨즈에 의해 시작됐는데 당시 불안정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좌절, 부르주아에 대한 반항을 나타냈다. 정상적인 의복요소를 파괴하고, 피어싱과 어둡고 짙은 화장, 괴상한 헤어스타일이 혐오스러웠고 면도날, 쇠사슬 등의 공격적인 장식으로 불쾌감을 줬다.

세계적으로 청년 문화가 태동한 1960~70년 사이 국내 패션은 사회적인 핍박과 법의 구속을 견뎌야 했다. 67년 가수 윤복희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미국에서 귀국하는 장면이 방송되면서 유행한 미니스커트는 68년에는 무릎 위 30센티미터까지 올라갔고 경찰들은 자를 들고 여성들의 치마길이를 재는 웃지 못 할 사건을 만든다. 1971년 히피패션은 방송출현금지 당했고 미니스커트와 함께 장발패션도 경범죄의 처벌을 받았다.

최근 패션의 안티세력 부상은 90년부터 다원화된 트렌드를 통한 구석으로 밀려 있던 하위문화가 부상, 젊은 세대에게 ‘새로움’으로 어필했다. 2000년대에 넘어오면서 거리 패션은 과거의 다양했던 년대별 문화가 리바이벌 되면서 자유자재의 믹스(Mix)화 시대를 맞이한다.

하위문화를 이끄는 것은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소수의 안티세력에 의해서만은 아니다. 이제 하위문화가 갖는 영향력은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최상급 패션디자이너에게서도 보여 지고 있다. 크리스찬 디올, 루이비통 컬렉션 장에 알록달록한 만화 프린트와 슬로건, 그라피티가 쓰이거나 이질적인 소재들을 사용해 60~70년대의 안티패션의 계승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특히 크리스찬 디오르의 수석디자이너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는 모방과 재창조의 천재로 불리며 19세기 프랑스의 로맨티시즘을 이끄는 고전적인 라인의 드레스를 해체하거나 과장하고 거기에 뒷거리 문화를 표현하는 피어싱, 페인팅, 문신 등을 적절히 응용하고 있다. 기괴한 상상력을 지닌 뒷거리의 반항아 같은 이미지의 장폴 고티에(Jean Paul Gautier)와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이 각각 전통 있는 패션브랜드 ‘에르메스’와 ‘지방시’의 수석디자이너라는 사실만으로 안티패션의 주도 세력이 반전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철학과 고집의 '그들만의 패션'

“거리에서 많은 영감을 얻죠.” 영국 펑크룩의 대모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am Westwood)는 뒷골목에서 시작된 자신의 패션을 정의했다. ‘이미 완성된 트렌드를 따르지는 않는다.’는 진 브랜드 ‘디젤’의 철학도 패션과 유행을 거스르는 안티주자다. 과거의 안티패션을 집어본 결과 그들만의 독특한 옷차림은 철학과 고집이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안티패션의 주체는 언제나 기성사회를 견제한 젊은이들의 변화에 대한 소망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요즘 거리에서 만나는 이단아 패션에는 ‘철학’이 빠져있다. 왜 이런 복장을 했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예뻐서’, ‘유행이니까’라고 답한다. 너무나 문명화된 사회가 복제의 복제를 거듭한 결과 ‘정신’을 빠뜨린 것일까. 현실도피적인 ‘발랄패션’은 어쩌면 거품으로 부풀려진 풍요의 이면일지도 모른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5-27 15:08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