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와 관능의 감성적 美동양적 색채와 문양에 열광, 웰빙트렌드로 '아시안 파워' 구축

[패션] 오리엔탈리즘
신비와 관능의 감성적 美
동양적 색채와 문양에 열광, 웰빙트렌드로 '아시안 파워' 구축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중국 상해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이브 생 로랑을 떠나는 톰 포드는 고별 쇼 무대를 중국풍으로 덮었다. 지난 4월 루이비통은 자사의 150주년 생일파티를 홍콩에서 성대하게 치러냈다. 더불어 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속 중국’에 이어 ‘중국 속 프랑스’행사를 준비 중이다. 급부상한 중국 열풍과 함께 짚어보는 아시안 파워, 오리엔탈 패션.


- 신비롭고 이국적인 매력

서양의 구조적인 편리함에 익숙해 있는 현대사회에서 느림의 미학과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오리엔탈리즘은 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다. 서양에서 열광하고 있는 동양의 매력은 요가와 명상, 동양음식의 인기를 등에 업고 새삼 신비롭고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하이패션에서 동양적인 것에 가치를 높여 최고급 라인을 구축하는 동안 거리의 유행패션도 나름의 동양미를 뽐내고 있다.

통이 넓은 헐렁한 인도풍 패션과 주렁주렁 장식이 많은 에스닉 액세서리의 인기는 이미 정착된 지 오래다. 시즌마다 조금씩 보여 지던 중국풍 의상은 귀여움에서 섹시함으로 자리를 옮겼고, 가운처럼 여미고 천소재로 허리를 조인 기모노 형태의 상의도 허리는 잘록하게 가슴은 볼륨 있게 강조한 섹시한 매력으로 거리에 나섰다. 갖가지 프린트 물은 또 어떠한가. 트로피컬 무늬 속에서 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중국, 일본, 인도풍 무늬가 눈에 띄게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유행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민속풍, 에스닉(ethnic)룩의 역사처럼 말이다.


-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동경과 복고

시즌마다 새로운 패션을 선보여야 하는 패션디자이너들에게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옛 것에 대한 복습이다. 또 하나 그들을 자극하는 것은 새롭게 경험하는 이질적인 문화, 에스닉, 민속풍은 문화와 문화가 충돌하면서 그 시작을 알렸다. 에스닉의 기원은 비잔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동양의 물건들이 유입됐는데 기원전 2세기경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의 보석과 면, 중국산 실크가 전해졌다. 비잔틴에서는 동방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튜닉(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쓰는)형의 복식이 재현됐으며 화려한 금ㆍ은사 장식과 자수, 직조, 염색 기술, 앞트임, 단추 여밈이 전해졌다.

17세기 이래 서양의 남성들은 인도식 가운을 실내에서 착용했다. 19세기경 영국 신사들에게 터키와 북아프리카 복식을 입는 것은 부유함과 여유의 상징이었고, 기모노 풍의 겉옷은 상류층 여성들의 티타임 가운이나 실내복으로 애용됐다.


- 패션 아이템으로 떠오른 동양적 美

에스닉 스타일이 현대적인 패션으로 자리한 데는 20세기 초 폴 뿌와레(Paul Poiret)라는 디자이너의 힘이 컸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모로코를 여행한 그는 몸을 구속하는 서양복식을 버리고 풍부한 외관을 가지는 모로코, 터키, 일본풍의 의상을 유행시키며 샤넬이 등극하기 전까지 동양적인 에스닉 스타일로 전성기?누렸다.

60년대 히피즘은 에스닉 패션의 대중화를 이끈다. 반전, 반물질주의는 정신의 가치가 높은 제 3세계, 동방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고 소수민족의 전통복식을 취하게 된다. 가깝게는 인디언, 남미의 의복과 장신구를 즐겼고 자연주의에 대한 동경은 멀리 아프리카의 색감과 장식을 가져오고 중동, 인도 등의 영향까지 흡수하게 된다.

1970년대 베트남전쟁, 중국의 문호 개방, 일본의 성장 등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80년대 들어 이세이 미야케, 다카다 겐조 등 일본인 패션디자이너의 활약으로 일본 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알려진다. 90년대 초에는 <마지막 황제> <인도차이나> <연인> 등 동남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유행하면서 중국과 베트남의 복식이 패션 아이템으로 떠오른다. 90년대 오리엔탈리즘은 보다 정신적인 환경에 의해 발생한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신비로움을 간직한 동양의 미가 트렌드로 부상하게 된다. 당시 경제 강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의 파워가 패션에도 영향을 미쳐 크리스티앙 라크르와, 존 갈리아노, 잘 폴 고티에, 알렉산더 맥퀸 같은 디자이너들에 의해 패션으로 정착된다. 에스닉 룩과 함께 오리엔탈 룩은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들인 마크 제이콥스, 톰 포드, 마이클 코어스 등에 의해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실용화의 길을 걷고 있다.


- 화려함과 섹시함의 조화, 차이니즈 스타일

일본풍 자수 실크 재킷과 나무소재 샌들, 왼쪽, 프라다 1997 S/S, 몽골리안의 이미지. 장폴 고티에 1994~5 F/W

오리엔탈리즘은 아시아의 중국, 일? 한국, 인도 등의 극동 아시아의 문화를 말하는데 주로 불교문화권을 가리킨다. 패션에서 오리엔탈 룩은 동양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화려한 색감, 섬세한 장식이 어우러진 스타일이다. 흔히 차이니즈 칼라라 불리는 만다린 칼라, 용, 한자 문양, 매듭단추, 기모노, 나무소재 샌들, 천 허리띠, 자수, 붓으로 그린 듯한 전통문양 등이 소개되고 있다.

중국 - 중국 전통의상의 차이니즈 칼라, 목선에서 어깨, 겨드랑이로 이어진 트임, 스커트의 섹시한 슬릿 등은 이미 매 시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디자인 요소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한국은 한복, 일본은 기모노가 있듯이, 중국은 ‘치파오’라는 전통의상이 있다. 선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모양의 치파오는 중국 여인들의 복장이다. 원래 남녀공용의 박스형이었는데 현대화되면서 몸이 꼭 맞게 변형돼 섹시한 곡선을 가지게 됐다. 서양의 슬릿이 주로 앞이나 뒷면에 들어간 반면, 치파오의 슬릿은 옆선에 넣는데, 더욱 은밀한 성적 매력을 준다. 치파오의 소재는 몸의 굴곡을 그대로 살려내는 실크가 많이 사용되어 고급스러운 의복으로 인식돼 있다.

이밖에 용과 나비, 연꽃, 한자 등 화려한 문양은 중국을 상징하는 주요 디자인 요소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색상도 중국의 전통을 최대한 살린다.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 행운과 성공을 상징하는 빨간색, 고결함을 의미하는 검은색, 청나라를 상징하는 푸른색 등이 강렬한 조화를 이룬다. 이들 색들은 다채로운 색감의 자수 꽃무늬, 전통 매듭을 사용해 동양적인 느낌을 살려낸다.


- 섬세함 색감의 일본풍 의상

왼쪽부터, 군복과 에스닉룩의 결합으로 중국 인민복을 새롭게 해석했다. 크리스챤 디오르 1999~8 F/W, 티벳의 영향을 받은 금박 스카프, 드레스 반 노튼 1997~8 F/W, 여름철, 목욕한 후에 입는 일본 전통 복식인 유카타를 응용한 캐주얼웨어. 겐조 1971 S/S.

일본 -기모노 가운의 언밸런스 여밈과 실루엣은 1980년대 이후 빈번하게 사용되었고, 게이샤풍의 헤어메이크업은 컬렉션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1990년대 말 일본풍의 젠(ZEN)은 미니멀 패션 뿐 아니라 건축, 인테리어 트렌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본풍 패션은 기모노에서 힌트를 얻은 여밈의 상의를 짧게 디자인하고 기모노의 오비를 벨트처럼 활용, 실내복 유카타와 같은 가운 형태의 아이템이 많다. 무엇보다 일본풍은 섬세한 색감과 정교한 자수와 프린트가 특징인데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의복이 기모노. 기모노를 가리켜 일본인들은 ‘감춤의 미학’, ‘걸어 다니는 미술관’이라 한다. 맨살을 드러내지 않는 의복이고 여러 겹으로 감싼 옷감의 다채로운 문양을 비유한 것이다. 기모노의 특징은 허리에 칭칭 감는 오비. 오비는 작달만한 일본인의 체구를 둘로 나눠 날씬하고 길어 보이게 만드는 눈가림의 미학을 완성하고 있다.


- 에로틱한 원색미, 인도패션

인도 - 최근 요가, 헤나 등 인도식 라이프스타일은 여성들 사이에서 빅 트렌드다. 바느질을 하지 않는 인도풍 의상은 헐렁하면서도 의외의 섹시한 미를 뽐내는 스타일이다. 인도풍은 어깨와 머리에 쓰는 사리(Sari)와 배꼽티 격인 졸리(Choli)의 감추고 드러나는 에로틱한 아름다움과 터번, 페이즐리 문양, 화려한 장식 등으로 요약된다. 원색적인 색감의 인도풍 천은 끈으로 묶어 천연 소재로 염색하고 화려한 패턴 위에 반짝이는 장신구를 문양처럼 수놓거나 파라핀 연색인 바틱을 더해 손맛을 살린다.

인도풍의 유행은 액세서리에서 더욱 빛난다. 금속을 두드려 무늬 판을 만들고 각종 보석과 반짝이는 구슬을 매단 커다란 목걸이, 귀고리, 팔찌 등은 인도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젊은 여성들은 이마에 점을 찍거나 혼례 등 축복을 기원할 때 부적처럼 몸에 새기는 일회용 문신 헤나를 그려 아예 인도여성처럼 치장하기도 한다.


- 동방의 시대를 알리는 오리엔탈 트렌드

역사적으로 에스닉 룩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을 드러냈다. 폴 뿌와레의 오리엔탈리즘은 새로운 문화사조인 아르데코와 연관이 깊고, 다카다 겐조의 마오쩌둥 룩은 중국의 문화혁명과 문호 개방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브 생 로랑이 모로코 풍을 발표했을 때는 석유파동으로 인해 중동국가들의 파워를 경험한 시기였다. 1980년대에는 경제대국 일본의 민속의상이 강력하게 대두되었고, 1997년에는 홍콩의 중국 반환을 계기로 중국풍이 유행했다. 2000년대에 들어 테러와 전쟁은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웰빙을 갈구하며 인도풍의 유행을 불러왔고, 커져 가는 중국 시장을 의식한 중국풍 물결도 여전히 거세다. 다양한 문화유산에서 영감을 얻어 재창조된 에스닉 룩은 전통과 현대미의 조화로 호소력을 지닌다. 보다 친숙하고, 화려하게 재탄생한 오리엔탈 트렌드는 동방의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다. 그러나 여전히 유행은 발생지로부터 자연적인 전파가 아닌 서구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힘의 역사를 거스르지 못하는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6-02 13:45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