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그날을 위해 '씹었다'15년간의 이유없는 감금과 맛의 기억을 근거로 한 추적

[문화 속 음식이야기] 영화 <올드보이> 군만두
복수의 그날을 위해 '씹었다'
15년간의 이유없는 감금과 맛의 기억을 근거로 한 추적


15년 간의 감금과 복수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로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 <올드보이>. 이 영화가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면서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로 풀이하는 남자 오대수는 장난기 많고 술 좋아하는, 지극히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술에 취해 딸의 생일 선물을 사 가지고 귀가하던 어느 날, 그는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사설 감옥에 갇히게 된다. 자신이 왜 이 곳으로 와야 했고,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그는 알 수가 없다. 식사는 오로지 중국집 군만두 뿐이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TV를 보는 것뿐이다. 영문도 모른 채 감금 당한 지 1년, 그는 뉴스를 통해 자신의 아내가 잔인하게 살해되었으며 살인범으로 자신이 지목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충격을 받은 오대수는 자살을 감행하지만 그 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누군가에 대해 복수를 결심하며 그는 15년 동안 자신을 단련시키고 탈출할 구멍을 파낸다. 겨우 사람 하나 지나갈 크기의 탈출구가 생겼을 때, 그는 어이없게도 처음 납치되었던 그 장소로 돌아오게 된다.

- 복수심에 들끓는 오대수와 두뇌게임

15년 만에 세상 속으로 귀환한 오대수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그는 사라지고 대신 복수심에 가득 찬 날카로운 눈빛의 중년 남자가 있을 뿐이다. 우연히 식사를 하러 들어간 일식집에서 그는 보조 요리사 미도를 만난다. 의지할 곳이 없었던 오대수는 미도와 함께 자신을 가둔 이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유일한 단서는 매일 먹던 군만두에서 나온 ‘청룡’이라는 중국집 전표이다. 마침내 오대수는 15년을 지냈던 감금방을 찾아내고 우여곡절 끝에 자신을 가둔 이우진과 대면하는데….

복수심에 들끓는 오대수에게 이우진은 냉정한 제안을 한다. 자신이 가둔 이유를 5일 안에 밝혀내면 스스로 죽어주겠다는 것. 영화는 긴박한 두뇌 게임의 국면에 접어들고 마침내 실체를 드러내는 비밀은 놀랍고도 충격적이다.

박찬욱 감독은 그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에서 처럼 이 영화에서도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잔인하리만큼’ 세심하게 보여준다. 그 때문인지 이 영화에 나오는 음식도 맛있는 음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대수는 15년 동안이나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중국집 군만두만 먹는다. 한 장소에 갇혀 있어야 하는 괴로움만큼이나 똑같은 음식을 지겹게 먹어야 하는 고통도 클 것이다. 더구나 중국 요리를 시키면 ‘덤’으로 따라 나오는 군만두는 제대로 된 음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한 군만두는 ‘추적’의 결정적 모티브가 된다. 오대수는 15년 간의 맛의 기억을 근거로 자신을 가둔 사람을 찾아낸다. 이 설정은 일본의 원작 만화에서도 그대로 등장한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실은, 일본의 중국집에서 파는 군만두는 그 집 요리사의 개성이 가장 잘 살아나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만두 맛만 가지고 어느 중국집인지 알아낸다는 일이 가능하다. 반면 우리나라 중국집에서는 보통 공장에서 구입한 만두를 사다가 튀기기만 하기 때문에 영화 속의 설정이 약간은 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 다양한 맛의 만두, 먹는 재미에 보는 재미도

만두의 원조는 중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풍랑을 만난 제갈공명이 사람의 머리 대신 밀가루 반죽에 싼 고기를 바다에 던져 제사를 지냈다는 고사는 유명하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가벼운 점심이나 후식으로 만두를 즐겨 먹으며 작은 만두의 일종인 딤섬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형태와 맛을 자랑하고 있어 먹는 재미, 보는 재미가 각별하다.

고기나 야채를 밀가루 반죽에 싸서 먹는 음식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된다. 인도에는 감자와 야채를 소로 넣어 튀긴 ‘사모사’가 유명하며 이탈리아에도 리코타 치즈와 시금치를 넣은 ‘라비올리’라는 만두가 있다. 폴란드에서는 ‘삐에로기’라고 하여 밀가루나 감자 반죽에 각종 과일, 치즈 등을 넣은 만두를 즐겨 먹는다. 고려 시대에 전래되었다고 하는 우리나라의 만두는 장국에 넣어 먹는 편수, 여름철 시식인 규아상, 생선살로 소를 감싼 어만두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기름기가 많은 군만두는 굳이 15년을 먹지 않더라도 질리기 쉬운 음식이다. 그럴 때는 여러 가지 속 재료를 넣어 다양하게 변화를 주면 좋다. 색다른 군만두에 어울리는 재료로는 숙주, 완두콩, 통조림 옥수수 같은 야채나 김치, 두부, 다진 잣가루, 모짜렐라 치즈 등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메밀이나 감자전분 등으로 피를 만들면 느끼한 맛이 한결 줄어든다. 집에 남은 냉동만두를 처리하고 싶다면 군만두에 볶은 야채에 물녹말로 걸죽하게 한 소스를 뿌려 탕수 만두를 만들거나 화이트소스, 치즈와 함께 그라탕으로 만들어 먹어도 맛있다.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6-09 15:33


장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