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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여성이야기] 마가렛 버크화이트
역사를 기록한 한 장의 사진
20세기 중반 포토저널리스트의 새로운 세계를 연 사진작가


한 장의 사진이 때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그것은 사진이 현장에 대한 가장 가감 없는 확연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말과 활자보다 눈으로 단번에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의 고문 행위를 찍은 사진은 미군의 잔혹성에 대한 확연한 증거물이었고 이전부터 지속된 어떤 반전 운동보다도 더 강력하게 이라크 전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다. 한 장의 사진이 새로운 변화를 불러 온 것이다.

지난 20세기는 그 급변하는 역사를 사진으로 남겼다. 19세기에 개발된 사진이 보도에 도입된 20세기부터 사진은 보도와 기록의 현장에는 빠질 수 없는 매체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세상을 접했고 그것을 역사로 남겼다. 이 시기 사진작가들은 충실한 보도자이자 역사기록자, 에세이스트이자, 예술가 그리고 저널리스트들이었다. 그 중 20세기 중반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하며 포토저널리스트의 새로운 세계를 연 사진작가는 마가렛 버크화이트였다.


- 20세기 격동의 현장에 선 사진작가

마가렛 버크화이트(1906-1971)가 포토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시기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이다. 이 시기는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다. 1차대전이 끝난 후 밀려온 경제공황과 공산국가의 탄생, 나치즘의 대두와 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그야말로 혼란과 변화의 도가니였다. 그 격동의 시기에 마가렛 버크화이트는 사진기를 둘러 매고 역사의 현장 그 어디에나 있었다.

그녀는 충실한 사진 한 장을 위해서라면 마천루의 빌딩꼭대기에 주저없이 올라가 아슬아슬한 곡예를 벌이며 사진을 찍었고, 격심한 폭격 현장에서도 물러서지않고 앞으로 나가 카메라를 들이댔다. 어떤 독재자의 심각한 표정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으며, 피사체와 가까이 하기위해서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은 굳센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마가렛 버크화이트는 당시 사진을 찍는 유일한 여자였다. 아직 사진기가 무거운 짐이었던 시절부터 그녀는 어깨에 카메라를 매고, 여자는 아무도 바지를 입지 않던 시절에도 바지를 입고 세계 곳곳을 누볐다. 그녀가 찍어 오는 사진들은 그 누구보다 대담했으며 현장에 충실했고 때로는 미학적이었다.


- 라이프지의 성공

1936년 사진 중심의 시사지 <라이프>가 창간되면서 버크화이트는 날개를 달았다. 라이프지의 창간호 표지는 버크화이트가 찍은 포트벡 댐 사진이었다. 그녀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여러 장의 사진을 포토 에세이 식으로 찍어 연재했다. 그녀 이후로부터 사진은 단순히 현장 기록의 차원에만 그치지 않고 사진으로 기사의 관점을 피력하는 저널의 단계로 뛰어 올랐다.

버크화이트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녀의 성공과 함께 라이프지도 성공을 거두었다. 라이프지의 발행 부수는 그녀의 인기와 비례하여 급격히 늘어났다. 이 시기 그녀는 최초로 스탈린의 사진을 찍어 특종을 터뜨린다. 사진 속에 스탈린이 보여준 싸늘한 미소는 그 동안 크렘린 안에만 틀어박혀 세계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공산권의 지도자에 대한 인상을 확정 지었다.

이후 바크화이트는 2차대전의 종군 기자로 활약하면서 그 누구도 찍을 수 없는 사진들을 찍어냈다. 독일군의 공습이 작열하던 모스크바의 현장에서 폭격 사진을 담아냈고, 직접 비행기를 타고 전장의 가장 핵심에 가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유태인 수용소에 최초로 방문한 사진 작가로써 나치에 의해 벌어진 인류 최악의 범죄를 고발했다. 사람들은 수용소에 갇힌 유태인들의 표정과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에 경악했다. 그녀의 사진은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세계의 여론과 정치를 결정하게 하는 기준이 되었다.


- 인간과 역사에 관심을 가지다

마가렛 버크화이트의 사진은 처음에는 주로 기계와 산업현장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차츰 사진을 찍어 갈수록 그녀는 현장 이면에 있는 인간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1930년대 미국 남부 소작인들의 빈곤에 눈을 뜬 버크화이트는 이후 현장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표정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그것이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어 1945년 이후 버크화이트는 인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간디의 역사의식과 사상에 깊이 감명을 받았고 그저 겉핥기로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간디의 정신세계까지 담아 내고 싶어했다. 온전히 간디의 곁에 가서 그를 제대로 취재하기위해 버크화이트는 인도인의 상징인 물레질까지 배운다. 그 결과 버크화이트는 간디가 가장 신뢰하는 서방의 기자가 되었고, 그녀는 자신의 사진을 통해 간디의 정신세계를 완벽히 표현해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은 1950년 한국전쟁에까지 이어진다. 이전에는 전장의 상황을 담아내는 것에만 치중했던 버크화이트는 한국전쟁에 임해서는 전쟁 속에 고통받는 인간의 표정을 담아냈다. 지리산 격전의 현장에 깊숙이 들어간 버크화이트는 그 곳에서 어머니와 아들, 아들을 잃고 흐느끼는 여인들의 표정을 생생히 담아내 전쟁이 인간에게 주는 고통을 사진으로 웅변했다.


- 생생한 역사 기록자

1952년 한국전쟁 종군기자로 활약하던 버크화이트는 갑자기 몸이 둔해진 것을 느낀다. 곧 이어 몸의 왼쪽에 마비증세가 오기 시작했다. 파킨스씨병을 앓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귀국한 버크화이트는 그러나 병에 굴복하지 않았다. 이후 18년간 지속된 그녀의 투병 생활동안 그녀는 항공사진에 눈을 돌려 하늘을 계속 찍어냈고 그 결과 <<헬리콥터에서 본 미국>>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죽음에 임박하여서는 거의 움직일 수 조차 없는 손가락으로 타자기를 쳐 자서전을 펴내기도 하였다.

버크화이트는 생전에 11권 사후에 1권의 책을 남겼다. 그녀가 남긴 사진들은 인류 역사의 가장 급변했던 격동기를 기록하였다. 마가렛 버크화이트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지구 위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의 생생한 역사 기록자였다.



김정미 방송ㆍ시나리오 작가 limpid7@msn.com


입력시간 : 2004-06-2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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