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보다 더 빛났던 사랑의 화신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가 왕위마저 버리고 선택한 '세기의 로맨스' 주인공

[역사 속 여성이야기] 심슨 부인
왕좌보다 더 빛났던 사랑의 화신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가 왕위마저 버리고 선택한 '세기의 로맨스' 주인공


요즘 TV를 보면 거의 황태자급의 남성들과 안타까운 사랑의 줄타기를 해대는 여성들이 주인공이 된 드라마들이 부쩍 늘었다. 그런 드라마는 어김없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마음속에 잘 난 사람과의 결혼으로 사회적 신분 상승을 하려는 심리가 어쩔 수 없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의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라고 불리는 이 신분상승 욕구에 대한 관심은 비단 드라마뿐만 아니라 해외 토픽 등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들과 일반 여성들의 교제를 크게 다루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사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받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20세기 초반 영국 왕실은 이런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만족시킬 만한 일대의 사건을 겪었다. 영국의 왕이 한 평민 여성을 사랑하고 그 여성과 평생을 하기위해 왕위를 버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 사랑을 찾아 왕위를 버리다.

“사랑하는 여성의 도움이 없는 한 영국 국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1936년 12월 11일 밤 대영제국의 왕 에드워드 8세는 BBC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의 사랑과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 발표했다. 1930년대 아직 대영제국의 영광이 완전히 기울지 않았던 그때, 에드워드 8세는 영국 왕위를 박차고 나와 한 명의 여성을 선택했다. 그녀는 미국인으로 귀족 신분도 아니었고, 이혼 경력이 한번 있으며, 심슨이라는 남자의 아내인 윌리스 심슨, 통상 심슨 부인이라고 불리던 여인이었다.

보수적인 영국 왕실은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 여인을 왕비로 맞을 수가 없었다. 영국 의회와 국민들도 에드워드8세의 사랑을 반대하였다. 그녀가 왕의 정부로 머무는 것에는 반대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가 공식적으로 영국의 왕비가 되어 영국을 대표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치욕이라고 생각했다.

에드워드 8세는 왕위에 오른 11개월 동안 지난하게도 그의 사랑을 결혼으로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허사였다. 그녀를 버리거나 왕위를 버려야 했다.


- 미국인 유부녀와 황태자의 만남

베시 윌리스 워필드 스펜서 심슨 윈저 공작부인(Wallis Warfield Spencer Simpson, Duchess of Windsor 1896~1986)이 정식 이름인 심슨부인은 미국 펜실베이니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스무살에 해군 조종사 스펜서와 결혼하였다가 10년 만에 이혼하고 이듬해 영국인 사업가 심슨과 결혼하여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였다. 이것이 심슨 부인과 당시 황태자이던 에드워드를 만나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남편의 재력을 바탕으로 런던 사교계의 떠오르는 별이 되었던 심슨 부인은 어느날 파티에서 에드워드 황태자를 만난다. 푸른 드레스를 우아하게 차려입은 심슨 부인은 에드워드 왕자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1931년의 일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우정을 가장하여 만나기 시작했으나 마침내는 서로의 사랑을 속이지 못해 결혼을 결심했다. 심슨 부인의 남편은 강력한 연적인 에드워드 8세 앞에 간단히 무릎을 끓었다. 이혼을 앞둔 심슨 부인은 얼마 전 왕으로 즉위한 에드워드 8세의 아내로 영국의 왕비가 될 날을 꿈꾸었다.


- 푸른 드레스를 입고 올린 결혼식

그러나 에드워드 8세는 영국 전체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결국 왕위를 버리고 심슨 부인만을 선택했다. 이 결혼으로 에드워드 8세는 국왕의 자리를 버렸을 뿐 아니라 본의 아닌 망명객이 되어 영국 본토로 돌아가는 것이 거부되었다. 결국 에드워드 8세는 프랑스에 정착했다. 그리고 심슨부인의 이혼 문제가 모두 처리되기를 기다려 1937년 6월 프랑스의 한 교회에서 쓸쓸한 결혼식을 올린다. 이때 심슨 부인은 하얀 웨딩드레스 대신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온몸을 푸른색으로 장식했다. 에드워드 8세와의 첫 만남을 기념하고 두 사람의 사랑이 영원할 것을 맹세하는 의미에서 선택한 색이었다. 결혼식 자체는 초라하였지만 이 결혼식은 심슨 부인의 푸른 드레스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심슨 부인과 에드워드 8세의 사랑에 대해 찬반 양론이 엇갈리던 세계인들의 평가 속에서도 심슨 부인이 입은 푸른색은 유명해져서 이 색을 ‘심슨 블루’ 라고 불렀다. 심슨 블루는 귀족과 왕족에 굴하지 않은 당당한 서민을 뜻하는 색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에드워드 8세는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동생 조지 6세로 부터 윈저 공작 작위를 받았다. 그러나 심슨 부인에게는 아무런 작위가 가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전하’라는 경칭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윈저 공작과 함께 사는 ‘평민’ 아내였을 뿐이었다.

에드워드는 이 조치에 매우 마음 아파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런 고집스러운 조치를 취한 것은 에드워드 8세의 어머니 퀸마더 메리(조지 5세의 왕비) 였기 때문이었다.


- 세기의 로맨스

왕의 자리마저 버리게 만든 여인, 심슨 부인은 비록 공식적으로 신분 상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결국 에드워드 8세와의 결혼으로 신분 상승 이상의 명성을 얻었다. 에드워드 8세와 심슨 부인은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해로하였다. 그들의 결혼은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세기의 로맨스가 되었다.

1972년 에드워드 8세가 프랑스에서 먼저 숨을 거두자 심슨 부인은 검은색 상복 위에 ‘심슨 블루’의 숄을 걸치고 장례식장에 나와 다시 한번 그들의 로맨스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14년 후 그녀가 숨을 거둘 때도 마지막 유언이 ‘심슨 블루’의 옷으로 갈아 입혀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최근 심슨 부인과 에드워드 8세의 세기의 로맨스에 의문을 품게 하는 공식문서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에드워드와 염문을 퍼뜨릴 당시 심슨 부인에게 있던 또 다른 정부의 이야기나 독일 나치에 대한 심슨 부인의 열렬한 지지와 주영대사로 나와있던 독일인과의 밀회 이야기 등은 왕위마저 박차고 나온 에드워드 8세의 로맨스를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심슨 부인은 보수적이던 영국왕실에 파문을 일으켰고 왕위까지 버릴 만큼 굳센 사랑의 힘을 증명한 여인으로 화려한 세기의 로맨스에서 당당한 여주인공이었다.

김정미 방송 시나리오 작가


입력시간 : 2004-07-14 14:57


김정미 방송 시나리오 작가 limpid7@ms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