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엿보기] 남녀가 만나기까지


마음이 힘든 남녀가 마주보고 앉아 있다.

최근 남자는 선을 보았는데, 상대 여자는 그를 ‘속물적인 남자’로 속단했다.

삼십대 후반에 접어든 콧대 높은 이 남자는, 계절마다 보던 선이 이제 더 이상 들어오지 않자,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은 심정으로 자리에 나갔다. 게다가 주변사람들의 충고를 아낌없이 받아 들였다,

“여자를 만날 때는 명품 한 벌 정도는 걸쳐야 하지 않겠어? SM5나 렉서스 정도는 타야 여자들이 호감을 가질 걸. 악세사리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라구.” 얼마 전 늦은 결혼에 골인한 선배의 말은 그에게 자극이 되었다. “여름인데, 휴가 분위기를 내서 자연스런 차림 어때요?” 여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도 하며 말이다.

선을 보는 날, 남자는 알마니 꽃무늬 티셔츠와 해변 스타일의 슬리퍼 차림으로 여자에게 다가갔다. 미리 말해두지만, 남자는 작은 키에 단단한 체격을 가졌다. 그는 성의 없는 동네 아저씨로 보였다. 남자는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동안 새로 뽑은 외제차에 대해 쉴새 없이 말했고, 계산을 할 때는 지갑을 과장되게 꺼내 부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만큼은 자신을 포기하고 세상과 타협하기로 한 것이다.

여자는 최근 한 남자에게 시달렸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나 지적 능력은 천재적인 수준을 넘는 AB형의 아티스트였다. 명문대 미학과 출신인 그녀는 아티스트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남자로서 그는, 아니다 싶었다. 그의 우유부단함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기회주의적인 성격이, 절도 없는 행동에 대한 변명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용어사용의 문제점이 그녀를 괴롭혔다. 미술 평론가인 그녀는 언어에 민감했다. 그는 사람과의 접촉없이 혼자 작업하는 남자였다. 그에겐 야수의 본성이 길들여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고, 남자의 언어구사 능력은 교육받지 못한 초등학생수준에 경박하기까지 했다. 대화할 때마다 비어들이 튀어나와 그녀를 치욕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그의 유년기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녀가 원한 건 믿음이 가는 사람과의 소통이었는데, 세상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그들은 마주보고 서로의 직업에 맞는 글을 쓴다. 그리고 동시에 한숨을 쉰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서로는 무척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마침 남자는 영화표 두장을 끊어온 참이었다. 선 듯, “주말에 영화 함께 보러 가지 않을래요?” 콧대 높은 남자는 왠일인지 먼저 말을 건다. 평소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미모의 미술 평론가인 그녀는 “영화제목이 뭐죠?” 라고 되묻는다. 그것은 일단 프로포즈를 승낙하겠다는 몸짓이었다. 남자가 살짝 웃는데, 마침 왼쪽 볼에 보조개가 패였다. 여자는 잠시 평온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남자는 새로 뽑은 외제차로 강변을 질주하며 그녀를 무사히 집까지 바래다 줄 수 있었다.

결국 준비된 혜택은 뜻밖의 사람에게 주어진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편하게 집에 도착한 그녀는 오랜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남자 또한 그녀의 재치로운 말솜씨에 몇 번이나 크게 웃었는지 모른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 뜻하지 않은 사람에게 떨어지는 것.

입력시간 : 2004-07-3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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