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야~ 오늘은 뭐하고 놀까?

[여성-취미] 인형수집
애기야~ 오늘은 뭐하고 놀까?

몸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큰 머리에 왕방울만한 눈알을 이리 저리 굴리는 브라이스, 손가락만큼 작고 앙증맞은 큐브릭,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구제 관절 인형에 이르기까지…. 곰 인형 하나로 유아기를 보내고, 바비 인형으로 어린 시절 놀이 문화를 마감한 이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인형은 아직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어린이는 물론이고 여학생, 남학생, 직장인 여성, 전문직 종사자 등 많은 사람들이 인형의 부모가 되기를 자청하고 있다. 인형놀이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 그 구구 절절한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인형이 아니라 자식입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근처의 인형카페 ‘커스텀 하우스’는 늘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큰 가방 안에 각종 인형과 소품을 들고 와서 인형 머리를 빗질하거나 사진 찍기에 몰입해 있다. 이들이 인형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이 꿈꾸는 또 다른 삶을 인형에 불어넣는 것이다.

과거 인형의 꿈이 다산이나 풍년 같은 공동체의 바람이었다면 현대에는 개인의 사적 감정을 표현하는 대상으로 바뀌었다. 때문에 인형 마니아들은 인형을 구입할 때도 ‘사왔다’고 말하지 않고 ‘입양했다’고 말한다. ‘인형’이라는 말조차도 ‘우리 아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이들에게 인형은 살아 숨쉬는 존재다.

인터넷 싸이월드의 ‘큐브릭&베어브릭’(k-brickers.cyworld.com) 클럽에서 만난 웹디자이너 주영근(35세)씨는 “예전에는 나이 들어서 인형 가지고 노는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여자친구에게 액션 피규어 ‘태호’를 선물 받은 후 어울릴만한 인형들을 하나 둘씩 수집하게 되었고, 3년이 지난 지금 브라이스 큐브릭 피규어 등 약 130여 개의 인형을 소장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후르츠펀치’(www.fruitspunch.com)라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인형 옷을 만들어 판매하는 조현아(26세)씨는 브라이스에 푹 빠져 있다. 그녀가 말하는 브라이스의 매력은 ‘웃지 않는 얼굴에서 뿜어 나오는 오묘한 천의 얼굴’이다. “같은 얼굴이지만 사진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낼 수 있어요”라는 그녀의 말대로 브라이스를 ‘입양’한 ‘엄마’, ‘아빠’들은 저마다 사진기를 들이대고 자식의 어여쁜 모습을 담아내기에 바쁘다.


- 키덜트, 정신병 취급하지 마!

그러나 이러한 인형을 ‘입양’하고 ‘양육’하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브라이스의 경우 모델에 따라 표정과 화장, 헤어 컬러, 의상이 제 각각이다. 가격은 10만~20만원 정도이지만 구하기 어려운 모델의 경우 100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실제 사람과 비슷한 외모의 구제 관절의 가격은 브라이스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고가다. 때문에 ‘다 큰 어른이 무슨 인형 놀이냐’, ‘쓸데없는 곳에 많은 돈을 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드세다.

이런 반응에 대해 인형 마니아 황보라(23세)씨는 “인형을 꾸밀 때는 나를 표현하는 기분이 들어요”라고 말한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명품으로 온 몸을 감싸는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인형에 대한 집착은 ‘관계 맺기’에 대한 요즘 세대의 복잡한 심정을 담고 있다”며 “독방 세대인 요즘 젊은이들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원하지만 정작 살아 있는 대상과의 만남을 두려워한다. 차라리 내 마음대로 꾸미고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는 인형에 애정을 쏟아 마음의 안정과 대리 만족을 얻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자료 제공 : 주하우스(zoohouse.pe.kr) 주영근, 후르츠펀치(www.fruitspunch.com) 조현아, 큐브릭&베어브릭(k-brickers.cyworld.com) 정미진, 황보라, 김민영

김세나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9-03 15:45


김세나 자유기고가 senar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