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를 찾아 달로 간 엉뚱이달에는 노란치즈가 지천, 상상력이 빚어낸 경이로운 애니세상

[문화 속 음식기행]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
치즈를 찾아 달로 간 엉뚱이
달에는 노란치즈가 지천, 상상력이 빚어낸 경이로운 애니세상


무료할 때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으면 온갖 공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 죽이기로 보이는 이런 공상들이 때로는 신화나 전설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고 재미있는 옛이야기로 우리의 정신 세계를 풍부하게 만든다.

둥그런 보름달 하나를 보고서도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달 속에 옥토끼가 살고 있어 떡방아를 찧는다고 믿었듯이 서양인들은 달이 치즈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겼다.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 중 첫 번째인 ‘화려한 외출(A Grand Day Out)’은 이 엉뚱한 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조금 덜렁거리고 순진한 발명가 아저씨 월레스. 어느 날 애견 그로밋과 함께 휴가 계획을 세우던 중 차 한잔을 마시며 쉬기로 한다. 그런데 비상 사태 발생. 월레스의 주식이나 다름없는 치즈가 바닥난 것이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월레스는 마침내 창 밖의 달을 보고는 치즈를 구하러 달로의 여행을 계획한다. 곧 월레스와 그로밋은 직접 로켓까지 만들어 달로 떠나게 되는데….


- 달로 떠나는 월레스와 그로밋

과연, 그들이 도착한 달에는 노란 치즈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피크닉 자리를 마련하고 암석처럼 생긴 치즈 한 조각을 잘라 맛보는 월레스. “웬슬리데일ㆍ스틸톤ㆍ까망베르” 전혀 낯선 맛에 월레스는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이들이 다른 맛을 찾아보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달을 지키는 어설픈 로봇이 월레스가 넣은 동전 하나 때문에 작동을 시작한다.

<월레스와 그로밋>에는 이 작품 이외에도 최첨단 바지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을 담은 ‘전자바지 소동(The Wrong Trousers)’, 그리고 사라지는 양들에 대한 이야기 ‘양털 도둑(A Close Shave)’등이 시리즈로 묶여 있다.

찰흙 인형들을 조금씩 움직여가며 하루에 1초 분량을 찍어낸 끈기와 정성, 그리고 기발한 상상력이 빚어낸 이 애니메이션은 보는 이에게 경이로운 세계를 펼쳐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저 뛰어난 기술로만 평가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플라톤과 도스토예프스키를 즐겨 읽는 ‘주인보다 똑똑한 강아지’ 그로밋은 권위에 대한 부정을 나타낸다. ‘문명의 이기’인 전자바지나 양털 깎는 기계가 오히려 악용되어 인간에게 해를 준다는 설정은 과학을 맹신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까. 따라서 <월레스와 그로밋>은 보수적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대다수 아동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다.

월레스가 가장 좋아하는 치즈는 영국인들에게도 중요한 식품이다. 비록 4백 종류가 넘는다는 프랑스 치즈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영국에도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양질의 치즈가 많이 생산된다. 영국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1세기경으로, 주로 수도원에서 여러 가지 치즈들이 개발되어 17세기경 최고조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영국의 치즈 산업은 대량 생산 체계로 바뀌었고 그 고유의 맛과 다양성을 잃었다. 영국인들이 뒤늦게 전통적인 치즈 제조방법을 부활시킨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 부드럽고 보존성 높은 체다치즈

영국산 치즈 중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 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체더치즈이다. 보통 체더치즈라고 하면 공장에서 만들어 파는 슬라이스 치즈를 떠올리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면 ‘프로세스 치즈’로, 체더를 가공한 것이다. 맛이 자극적이지 않고 보존성이 좋은 반면 자연치즈의 풍미를 잃는 단점이 있다. 원래 체더는 영국 서머셋의 ‘체더(Cheddar)’ 마을에서 생산되는데 5~6개월 가량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효소에 의해 독특한 단맛과 풍미를 갖게된다.

치즈 애호가들이 인정하는 영국 최고의 치즈는 뭐니뭐니 해도 ‘스틸턴’이다. 1730년 태어난 스틸턴은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대니얼 디포가 이 치즈를 찬양하는 글을 남김으로써 유명해졌다. 스틸턴은 블루 치즈의 일종으로 제조 과정에서 푸른 곰팡이를 주입해 독특한 대리석 무늬를 갖고 있다. 강렬한 맛과 향을 지닌 이 치즈는 콤콤한 특유의 냄새가 마치 우리의 청국장을 연상시킨다. 최贊걋?경우 100g에 우리 돈으로 천만원을 호가한다고 하니 이쯤 되면 ‘명품’으로 불릴 만 하다. 미식가들은 스틸턴 치즈 중앙에 도수 높은 포트 와인을 부어 녹아내리게 한 다음 먹는다.

스틸턴만큼 명품으로 인정받는 치즈가 바로 ‘웬슬리데일’이다. 웬슬리데일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치즈 중 하나로 11세기 정복자 윌리엄과 함께 건너온 수도사가 개발했다고 한다. 원래 양젖으로 만들어지는 이 치즈는 모슬린 천으로 감싸서 와인 저장고 같은 지하실에 보관한다. 상품에 속하는 웬슬리데일은 약간 푸석푸석하고 촉촉한 질감에 시큼하고 신선한 맛을 지니고 있다.

입력시간 : 2004-09-1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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