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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여성이야기] 서시
영웅호걸 녹인 미인계의 원조
중국 월나라의 절세미녀, 미인계 전술로 오나라 망하게 한 일등공신






종종 ‘미인계’를 이용한다는 말을 쓴다. 미인계란 목적 달성을 위해 아름다운 여인으로 상대를 유혹하여 뜻하는 바를 이루어 내는 것을 말한다. 생각해보면 참 치졸한 방법이다. 여기서 아름다운 여인은 단지 무언가를 이루고자 할 때 쓰는 수단일 뿐, 여인의 인격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여인은 단지 임무와 사명만 가지고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유혹하고 때로는 몸을 허락하기도 한다. 게다가 여자를 팔아 얻은 승리에 남성들이 취해 있을 때, 정작 일을 성사시킨 여성들은 쓸쓸히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연약한 여자를 이용하고 그것도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약한 감정인 사랑을 기만하는 치졸한 수법으로 승리하였다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 속에는 영웅호걸이라 불리우는 남성들이 뜻밖에 미인계에 힘입어 일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공은 모두 그들에게 돌아가고 미인들은 쓸쓸히 사라지곤 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몇 명의 여인들이 있다. 그 중 서시가 가장 유명하다.


- 월나라의 절세 미녀

때는 중국의 춘추말기. 월나라의 저라산 근처에 사는 땔나무장수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서시.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그녀가 강으로 빨래를 하러 갔을 때 강속 물고기가 물에 비친 그녀의 얼굴에 반해 헤엄칠 생각도 잊고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이야기가 생길 정도였다. 이때 서시의 아름다움을 두고 침어(浸魚)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서시는 어렸을 때부터 가슴앓이 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늘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는데 그 모습조차도 너무나 아름다워 동네의 처녀들이 그 찡그린 모습을 흉내 내고 다녔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말이 효빈(效嚬)이라는 고사성어이다.

서시는 그 아름다움 때문에 훗날 월나라의 수도로 뽑혀 가게 되는데 월나라 사람들이 모두 서시의 얼굴을 보기위해 나와 궁전에 들어가는데 사흘이나 걸렸다고 한다. 월나라의 재상이던 범려는 서시의 얼굴을 보는 값으로 백성들에게 1전씩 받아 그 돈으로 무기를 사기도 하였다고 한다.


- 와신상담의 오나라와 월나라



서시가 살던 월나라는 춘추 말기 지금의 절강성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나라였다. 춘추시대는 주나라를 명목상 모시면서 각지의 제후국들이 서로 힘을 겨루던 시기였다. 월나라는 바로 인접한 국가인 오나라와 언제나 세력다툼을 하였고 오랜 분쟁은 두 나라를 원수의 나라로 만들었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어느 한쪽이 사라지지 않고서는 절대 전쟁을 멈추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다. 특히 서시가 살던 즈음에 오나라와 월나라의 사이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먼저 월나라와의 전쟁으로 오나라의 왕 협려가 죽자 그 아들 부차는 월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가시나무 위에서 잠을 자며 그 원한을 되새겼다고 한다. 부차는 오자서와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의 도움으로 나라를 크게 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월나라를 쳐서 굴복시키고 월나라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월나라의 왕 구천이 쓰디쓴 쓸개를 옆에 두고 스스로 해이해지거나 흐트러질 때마다 그 쓸개를 맛보며 오나라에 당한 굴욕을 되새기며 복수를 다짐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말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이다. 서시는 바로 이 와신상담의 시기에 굴욕당한 월나라의 백성이었다. 월나라의 왕 구천은 오나라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이라도 감행할 만큼 원한에 젖어 있었다. 그러한 시기에 서시는 구천의 원한을 풀기위해 오나라로 가야만 했다.


- 오나라로 간 서시

월나라의 재상이던 범려는 임금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이길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그 중 그가 생각해낸 방법이 아름다운 여인을 통한 적의 무장해제였다. 범려는 월나라 각지를 돌아다니며 절세 미인들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월나라를 위해 자신의 감정과 목숨을 내놓게 할 교육을 시켰다. 그 속에는 갖가지 기예와 남성을 유혹하는 법, 그러면서도 절대 월나라를 저버리지 않을 사명감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녀들의 임무는 오나라 부차를 유혹하여 그가 정치를 돌아보지 않고 주색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몇 차례 월나라 미녀들이 오나라에 공물로 바쳐지고 마침내 서시도 오나라로 가는 미인들 속에 끼게 되었다.

워낙에 출중했던 서시는 금새 오나라 왕 부차의 눈에 들었다. 부차는 충신 오자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시를 옆에 끼고 정치를 잊었다. 그는 서시가 연못에서 배타고 노는 것을 좋아하자 무리하여 인공 못을 만들게 하고 그녀를 위해 화려한 궁전을 새로 지었다. 그러는 사이 오나라의 국력은 급격히 떨어져갔다. 충신이자 명장이었던 오자서의 간언도 부차에게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부차는 오자서가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자 자결을 명령한다. 부차의 명령에 분노한 오자서는 스스로 눈을 파내 나뭇가지에 건 다음 죽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부차가 월나라에 패해 오나라가 망하는 꼴을 나뭇가지에 걸어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겠다는 것이었다.


- 서시의 마지막

오자서의 우려와 범려의 계획대로 오나라의 힘은 약해졌고 그 기회를 노린 월나라는 오나라를 쳐서 이겼다. 부차는 산 속으로 도망가 미인에게 속아 충신을 저버린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자결하였다. 월나라의 임금 구천은 원수를 갚고 승리하였다.

그러나 정작 오나라를 망하게 한 일등 공신인 서시는 이후 그 행방이 묘연하다. 일설에 서시는 오나라가 망하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자 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도 전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원래부터 서시를 사랑하였던 범려가 오나라가 망하자 서시를 구해내 그녀와 함께 신분을 감추고 살았다고도 한다. 무엇하나 자신의 사랑과 인격을 포기하고 나라를 위해 산 공에 대한 처우로 마땅치 않다. 승리는 남성들에게 돌아가고 미인인 죄로 불행하게 살아야 했던 서시는 소외되었던 것이다.

서시의 이야기는 이후 많은 중국의 문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누대에 걸쳐 시인과 문인들이 그녀를 기렸고, 중국 최고의 미인으로 그녀를 칭송했다. 미인계라는 잔혹한 전술로 불행하게 살았던 서시는 결국 감상적인 중국 문인들 덕분에 고통스러웠던 삶을 조금이나마 보상 받은 것이다.



김정미 방송ㆍ 시나리오 작가 limpid7@msn.com


입력시간 : 2004-09-2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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