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 스타일' 만든 스타일리스트, 영화같은 삶의 주인공심플하고 우아한 옷입기로 미국 패션수준 한단계 끌어올려

[패션] 재키룩, 기품과 자유를 입은 창조적 패션리더
'재키 스타일' 만든 스타일리스트, 영화같은 삶의 주인공
심플하고 우아한 옷입기로 미국 패션수준 한단계 끌어올려


젊고 패기 넘쳤던 미국의 연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비운의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 그리고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결혼으로 다시 한번 충격을 줬던 그녀가 생을 달리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패션의 역사는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 수줍었던 한 여성이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을 전 세계가 지켜보았고 그녀의 스타일은 그녀의 인생만큼 화려했고 또 자유로웠다.

1950년 스타일은 세 명의 여성이 주도했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이스 켈리, 그리고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그녀들은 1929년 ‘대공황 베이비’로 태어나 유명한 여성으로 한 시대를 살았다. 영화 배우였던 헵번과 켈리의 스타일도 뛰어났지만 스크린 속에서 그들은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재클린은 ‘재키스타일’이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창조적인 스타일 리더였다.

-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계 패션계 이목 집중

위에서 부터, 패션지 보그에 실린 재키. 두 줄 진주 목걸이와 흰 장갑이 당시 여대생들의 차림을 보여주고 있다. 1951년, 물 빠진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바람에 날리는 재키’. 1971년, 승마로 휴식을 취하는 재키. 윙 칼라 화이트 셔츠와 7부 팬츠, 단화가 더없이 편안해 보인다, 원피스 형식의 여유로운 코트 차림의 재키. 1966년.

재클린은 뛰어난 스타일리스트였지만 빼어난 외모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170센티미터의 키는 너무 컸고 체격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었다. 갈색 머리카락에 사각형 얼굴, 제대로 맞는 안경이 없을 정도로 간격이 넓은 두 눈.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미스 재키는 부풀린 소매와 허리는 꼭 맞게 아래로 넓게 퍼지는 드레스 형식의 워싱턴패션 대신 프랑스 잡지와 뉴욕 디자이너의 영향을 받은 세련된 패션으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갔다. 그런 패션에 대한 관심과 재능은 대학 재학 중 패션지 보그 주최 대학생 공모전에서 1200명을 제치고 1등에 당선된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케네디를 만나 결혼 한 후 그녀의 스타일에 영향을 준 사람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작고 흰색 블라우스에 넓게 퍼지는 개더스커트, 굽 낮은 발레리나 슈즈를 신었다. 심지어 영화 <사브리나>의 영향으로 검정 푸들까지 키웠다. 10년 후 모든 여성들이 자신을 따르리라는 상상은 하지 못한 시절이었다. 재키의 뛰어난 패션감각은 면바지에 대학생 같은 재킷을 입고 다니던 케네디 상원의원의 이미지를 바꿔 놓았고 그녀의 내조 덕분인지 케네디는 1960년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후 재키의 스타일은 크게 세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백악관 시절의 퍼스트레이디 스타일,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한 재키 오나시스 스타일, 출판계에 종사한 워킹 우먼 스타일로 나눌 수 있다.

재키는 이제까지 퍼스트레이디로써는 가장 어린 서른 한 살의 나이로 백악관에 젊은 취향을 불어 넣었다. 그녀는 검정과 회색을 버리고 레드, 핑크, 옐로 같은 색으로 자신의 젊음을 표현했다. 7부 소매의 프랑스식 맞춤 정장, 낮은 굽 구두, 세줄 진주 목걸이, 흰 송아지가죽 장갑, 큰 머리를 커버하기 위해 썼던 작은 모자, 필박스 모자가 백악관시대를 대표했다.

재키는 또 가장 미국적인 여성으로 보이기 위해 미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었다. 그러나 전담 디자이너만으로는 패션에 대해 뛰어난 안목을 지닌 재키를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측근을 통해 유럽의 맞춤복 디자이너의 옷을 구해 입었다. 또 스스로 패션경향을 분석하기 위해 패션쇼마다 사진사를 보내 의상을 찍어오도록 했고 옷감의 견본과 가격까지 입수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 요소를 더해 창조적인 복제의상을 만들게 했다.

대통령과 재키의 첫 공식 방문은 프랑스였다. 모두들 재키의 패션쇼 여행이었다고 기억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우아하고 매력적인 옷차림 게다가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미국의 영부인에게 반해버렸다. 이후 재키의 패션은 어딜 가나 뉴스의 톱을 장식했다. 심지어 하루에 옷을 다섯 번 갈아입은 것, 구두사이즈를 확인해낸 것에 대한 흥분된 기사를 싣기도 했다. 재키의 공식의상을 디자인한 패션디자이너들은 곧바로 유명세를 탔다. 그녀의 감각은 패션 선진국이었던 프랑스를 향해 있었지만 미국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입으므로 미국의 패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공헌자였음이 분명했다.

공식적인 차림을 벗게 된 계기는 케네디 대통령 사후 5개월 만에 단행한 오나시스와의 재혼이었다. 재클린 오나시스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백악관 시절 이후 재키스타일은 ‘핍스에버뉴’의 멋쟁이 스타일이었다. 그녀가 즐겨 입던 화이트 진 뿐 아니라 모든 아이템이 유행 대열에 올랐다. 더 이상 결점 하나 없던 장식품 같던 백안관룩을 입지 않았다. 마음껏 느슨해졌고 자유로워졌다. 여기서 보여 지는 옷차림은 에스닉룩의 경향을 보였다. 머리를 뒤로 묶고 링 귀걸이를 하고 맨발에 샌들을 신고 집시 스커트를 입었다. 벨버텀 팬츠와 빗어 올려 볼륨 감을 준 헤어스타일로 재키는 더 날씬해 보였다. 그리고 얼굴을 가릴 정도로 큰 선글라스, 세련미와 자유로운 성적 매력에다 하이클래스의 부유함까지 그녀가 원하던 패션을 맘껏 누렸다.

오나시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다시 미망인이 된 재키는 드디어 자신의 오랜 소망이었던 출판계 일을 시작한다. 퍼스트레이디로 보낸 3년과 선박왕의 아내로 8년을 살았던 시기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재키의 가장 중요한 삶은 출판업에 종사한 이후 20년이었다. 더 이상 케네디, 오나시스 같은 남성들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다. 스스로 커피를 뽑았고 복사기 앞에서 줄을 섰다. 디너파티나 출판기념회 외에는 드레스를 입을 필요가 없었다. 워킹 우먼 재키는 셔츠에 바지를 입었고 발렌티노 같은 이태리 디자이너의 부드럽게 떨어지는 수트를 즐겨 입었다. 사교계의 파워와 타고난 감각으로 출판계에서도 성공한 워킹 우먼으로 이름을 남긴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는 1994년 6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 멋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대표스타일

위에서 부터, 심플한 라인과 고급스러운 외관이 재키스타일의 기본이다. 랄프로렌, 두건으로 연출한 스카프, 얼굴을 반쯤 가리는 선글라스, 재키가 연출한 완벽한 재키스타일. 1970년대, 화이트 진과 노란 티셔츠 차림의 재키. 샌들을 들고 맨발로 걷는 모습이 여유롭다. 1964년, 재키가 애용한 에르메스 스카프는 두건으로 멋지게 활용됐다. 에르메스.

그녀가 유명을 달리한 후 그녀의 영향은 곧바로 패션쇼 무대에 나타난다. 무릎길이의 A라인 스커트와 몸에 꼭 맞는 재킷이 그것이었다. ‘손에 집어 드는 모든 잡지에 그녀가 들어있다’고 할 정도로 재키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그녀의 사후에도 계속 늘어났다. 디자이너 신시아 로리는 재키스타일에 대해 “재키의 심플한 스웨터와 바지, 굽 낮은 신발을 신은 모습은 단순하면서도 매우 패셔너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고 디자인이 결코 복잡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고 말했다. 또 디자이너 수전 델은 세대를 넘어 아름다운 재키 스타일에 대해 “그녀는 ‘멋진 일을 하고 싶고, 멋지게 되고 싶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여성들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재키룩이란 무엇일까. 디자이너 발렌티노는 말한다. “자연스러움과 세련됨이 혼합된 야상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재키룩은 값비싼 유명 디자이너의 못을 입었을 때도 결코 요란해 보이지 않았다. 재키에게는 서민의 자유로운 태도와 왕족의 기품이 뒤섞여 있었다. 재키 스타일이 오늘날까지 회고되고 있는 이유는 그녀의 패션이 멈춰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해 가며 계속 발전했고 기본 스타일 위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갔다. 몇 가지 고정적인 옷차림이 있지만 중복되는 일은 없었다. 재키 스타일은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았고 매우 정제돼 있지만 결코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1950년대 남자들은 외출 시 반드시 모자를 썼고 여자들은 설거지 할 때도 진주 목걸이를 했다. 1960년대 중반 여성들의 공식차림은 무조건 스커트 정장이어야 했다. 정장 차림이더라도 바지를 입으면 고급 레스토랑에 출입을 거절당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재키는 공식석상은 아니었지만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푸른 셔츠를 입고 나타뎬쨉?남성복 매장에서 구입한 남성용 셔츠였다고 한다.

이처럼 재키의 심플한 옷차림은 옷으로 계층을 나눴던 당시의 벽을 허물었다. 교육받은 듯 획일화를 걷던 패션이 각자의 스타일로 줄기를 뻗어가기 시작했던 중심에 재키가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모델이 되어 미국 여성들에게 패션을 가르쳤다. 그리고 재키는 제트 여객기로 세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 최초의 젯셋족으로 변화하는 새로운 패션을 몸소 세계로 전달했다.

재키 스타일을 복습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소재를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훌륭한 소재는 고급스러운 이미지 연출에 기본임을 알아두자. 또 하나 재키 스타일에서 배워야 할 점은 단점을 장점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다. 사각 턱에 큰 머리를 커버하기 위해 부풀어 올린 머리 스타일을 하거나 스카프를 두건으로 이용하는 센스는 놀랍다. 게다가 파파라치를 피하기 위해 애용했다는 커다란 선글라스는 그대로 재키 스타일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지 않았나.

퍼스트레이디 스타일에서 가장 많이 보인 디자인은 프렌치 수트였다. 무릎길이 스커트, 7부 소매 재킷으로 구성된 이 수트는 유행을 초월한 클래식 디자인이다. 뉴욕스타일을 대표하는 재키 스타일은 화이트 진으로 표현되고 있다. 벨트를 하지 않고 터틀넥 스웨터를 덧입는데 엉덩이가 가릴 정도로 길이가 긴 것이 포인트. 얇은 끈으로 처리된 샌들이나 맨발에도 신을 수 있는 가죽 소재의 단화도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더해 줄 것이다.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도 재키 스타일을 응용한다면 중후한 보석장신구를 골라야 할 것이다. 금으로 처리된 유색보석 디자인으로. 마지막으로 유명인들처럼 신비한 이미지를 주려면 잠자리 눈처럼 큰 사이즈의 선글라스는 필수다. 재키처럼 12개의 선글라스까지는 필요 없겠지만.

** 참고자료 : <재키스타일> 패밀러 클라크 키어우 지음, 푸른솔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10-05 16:06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