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음의 미학, 시간의 흔적을 입는다레트로풍 소재, 오래된 골동품 같은 고급스런 느낌 강조

[패션] 2004가을겨울 유행소재 경향
낡음의 미학, 시간의 흔적을 입는다
레트로풍 소재, 오래된 골동품 같은 고급스런 느낌 강조


옅은 보라색으로 염색된 모피를 볼레로 스타일로 짧게 디자인했다. 값 비싸 나이 들어 보일 수 있는 모피의 대변신. 라인바이린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는 기온. 멋도 중요하고 스타일도 중요하지만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옷차림이 먼저다. 가을 겨울의 대표소재 울과 가죽, 모피까지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신체를 지켜줄 따뜻한 소재 유행경향과 쇼핑 노하우.

- 낡게 더 낡게, 빈티지 소재를 잡아라!

먼저 이번 계절의 소재 경향에 대해 알아보자. 이번 가을 겨울 패션 트렌드인 ‘레트로’ 스타일에 어울릴 소재들은 고급스럽지만 오래된 느낌이 나야 한다. 따라서 일부러 낡아보이게 만든 가공법이 특징이다.

패션브랜드 매장을 장식하고 있는 신상품들은 새 것처럼 보여도 모자랄 판에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겪은 듯 낡은 상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먼지가 앉은 것처럼 뿌연 표면과 구겨진 원단, 스크래치 페이퍼로 문지른 흠집까지. 그뿐인가. 세탁해서 비틀어진 가죽소재 가방이며 보풀이 일어난 스웨터들. 마치 벼룩시장 같다.

골동품과 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 세월의 흔적을 하나하나 새겨 넣는 과정을 거친다. 오래된 느낌, 빈티지 효과를 위해 워싱과 프레스, 염색 등 일일이 수작업으로 공들인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또 끓는 물에 가죽이나 울 소재를 넣어 심하게 쪼그라든 상태를 다시 스팀다리미로 펴 독특한 주름을 살리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깔끔하게 재단된 옷을 세탁하면 옷감이 상하기도 하고 원하는 느낌을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수공과정은 똑같은 것이 나오지 않는다는 매력이 있다. 하나하나가 작품처럼 세월의 공이 고스란히 스며드니까.

레트로의 영향을 받은 복고풍 아이템들은 과거를 연상케 하는 선이 굵은 모직류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모직류의 복고 아이템은 굵은 원사를 다양한 패턴으로 디자인한 제품으로 색상도 빛바랜 듯 낡은 이미지를 지닌다. 굵은 실로 헐렁하고 성글게 짠 니트류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때 좋다. 워싱 진과 함께 입어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간편한 코디법.

기본적으로 올 가을 겨울 소재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벨벳과 트위드라 할 수 있다. 이밖에 코듀로이 스웨이드, 모피 등도 주목 받는 소재. 벨벳과 트위드, 자카드 소재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들 소재가 가을과 겨울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광택이 도는 벨벳과 코듀로이는 패션 키워드에 걸맞게 우아한 여성미와 중후한 남성을 잘 표현하고 반영하고 있다.

- 울(Wool) : 유행하는 울 소재는 봄여름의 실크처럼 풍부한 주름이 잡힌 얇은 소재보다 빈티지 스타일에 어울릴 성글거나 굵은 올의 풍성한 울 소재에 주목해야 한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깊이 있는 내추럴 색상이 곁들여진다. 울 소재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캐시미어(Cashmere)는 섬유의 보석이라 불리는 부드러운 감촉과 아름다운 색상으로 인기 있는 고급 모직류. 산양의 털에서 가늘고 길게 뽑아낸 캐시미어는 우아한 광택과 염색성이 우수해 고급스럽다. 남미 안데스 산맥에 서식하는 낙타과의 양, 알파카(Alpaca) 소재도 광택이 풍부해 고급소재로 떠올랐다.

울과 함께 직조돼 서로의 특징을 사이좋게 나누고 있는 혼방소재도 많다. 울/실크, 울/캐시미어, 울/캐시미어/실크, 울/캐시미어/면 등이 울 혼방소재로 나와 있는데 실크혼방의 경우 밝고 화사한 느낌을 주고, 캐시미어 혼방의 경우 부드러운 감촉으로 고급스럽다.

- 벨벳(velvet) : 벨벳은 광택 촉감 등으로 귀하게 여겨졌는데, 종교적 의복이나 왕 귀족들의 의상이나 실내 장식용으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지난 가을 겨울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벨벳의 광택과 질감이 고급스러움을 한층 살려주고 있다. 검은색 일색이던 벨벳의 색도 올해에는 보라색, 자주색 등 다양한 유행컬러를 선보이고 있다.

벨벳도 최근의 패션 트렌드인 믹스&매치를 사용하면 한층 세련되게 입을 수 있다. 워싱되거나 약품에 의해 부분적으로 무늬가 생기는 번 아웃(Burn-out)기법의 벨벳 소재는 무늬까지 곁들여 여성스럽고 화려한 옷차림을 뽐낼 수 있다. 또 데님과 같은 캐주얼한 소재와 매치하는 것도 발랄함이 더해진 숙녀복 차림에 제격.

- 트위드(tweed) : 트위드라는 소재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젊잖다’ ‘클래식하다’ 인데 이번 시즌 트위드는 좀더 젊고 쾌활해진 것이 특징이다. 벨벳이나 가죽과 믹스되는가 하면 반짝이는 크리스털 장식이나 커다란 브로치를 달아 화려해진 모습이다. 아이템도 다양해져 재킷뿐 아니라 카프리 팬츠, 날씬한 선이 강조되는 펜슬 스커트에도 트위드 소재가 사용되었다. 트위드 소재를 너무 클래식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전혀 다른 소재와 섞어서 소화하면 더욱 멋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페미닌 룩을 원한다며 벨벳이나 시폰 소재와, 캐주얼하게 소화하고 싶다면 니트나 진을 믹스하면 된다.

- 스웨이드(Suede) : 주로 송아지나 염소 새끼 가죽을 이용해 안쪽 피부를 문질러 표면을 살린 소재가 스웨이드이다. 이 부드러운 털 때문에 벨벳과 같은 표면감을 지닌다. 스웨이드가 가죽소재지만 반질한 광택이 나는 일반 가죽보다 친근감을 느끼는 것도 이 부드러운 촉감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감촉은 스웨이드가 캐주얼 아이템에 많이 애용되는 이유 중 하나. 올해는 복고풍의 영향 때문인지 스웨이드가 다양한 패션 아이템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신발이나 모자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물에 여러 번 세탁한 듯한 느낌을 주는 워싱 소재는 청지나 면 소재 뿐 아니라 울이나 가죽소재에까지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데 물에 약한 스웨이드까지 워싱을 더해 오래되고 낡은 느낌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 코듀로이(Corduroy) : 기모가 달린 실을 조직의 짜임에 덧붙여 직물을 짠 후 기모를 짧게 잘라낸 소재를 코듀로이라고 한다. 코듀로이는 이 기모 때문에 두껍지만 부드러운 감촉을 지닌다. 캐주얼한 느낌이 강한 코듀로이는 면 100%보다 울이나 울/나일론, 캐시미어혼방 등으로 고급스럽게 업그레이드 됐다. 이 경우 코듀로이 자체의 캐주얼한 느낌이 살아있으면서도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느낌까지 표현돼 정장으로 활용하기도 무리가 없다. 색상은 초콜릿, 골드 색상이 주로 쓰이지만 진한 녹색이나 분홍색, 빨간색처럼 경쾌한 원색 소재도 많이 나와 있다.

- 모피(Fur) : 2004년 가을겨울 패션쇼에서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한결같이 모피의 다양한 활용에 초점을 맞췄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도 예년?비해 다양한 모피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다.

모피의 부드러운 감촉은 욕망을 표현한다. 모피를 보면 바로 손으로 만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니까. 그리고 동물의 표피를 입는다는 데서 원초적인 자연에 대한 회귀를 뜻한다. 레트로 트렌드에 이만큼 적합한 소재가 있을까.

모피가 이제 흔히 연상하는 귀하신 ‘사모님’ 스타일이 아닌, 젊고 캐주얼한 감각으로 거듭나고 있다. 색상도 밝고 화사해졌고 패턴은 호피무늬 같은 동물무늬 더해져 캐주얼한 멋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모피 재킷이나 점퍼 스타일의 블루종은 짧은 길이로 귀엽고 캐주얼한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좋다. 가죽이나 니트, 트위드 등 다른 소재에 모피를 덧대어 고급스럽게 장식하기도 했다. 모피는 모피 목도리나 모피가방 모피모자 등 소품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와 함께 모피 조각을 이어붙인 패치워크 스타일도 캐주얼한 모피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 좋은 소재 고르는 법

좋은 소재를 고르려면 기본적으로 의류 택에 붙어 있는 소재 혼용률을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또 각각의 소재 특성을 미리 파악하고 쇼핑에 나서야 실수가 없다는 것도 알아두자. 벨벳의 경우 잔 기모가 많은 원단이어서 쉽게 눌려 번들거리거나 오래되면 잔 기모가 마모되어 흉하게 되는데 천연소재보다는 합성소재가 눌림이 적다. 울 소재에는 번수 표시가 있는데 1번수는 1g의 양모를 1m길이로 잡아당겼을 때의 실의 굵기를 말한다. 번수의 숫자가 높을수록 실은 가늘다. 울 소재의 원산지나 사용된 동물명까지 기억해 두면 고급소재를 고르는데 문제가 없을 듯. 스웨이드는 습기에 특히 약하기 때문에 방수 처리된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10-20 11:47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