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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여성이야기] 마담 스탈
프랑스 지성들의 숨통을 터주다
나폴레옹에 반대하며 지식인들의 자유에 대한 고민과 토론의 장 마련






18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유럽은 변화의 도가니였다. 특히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 등으로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정치적, 정신적 격동기를 맞고 있었다. 오랜 왕정에 길들여졌던 백성들은 자기들이 이끌어낸 새로운 시대에 어리둥절했고 당황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새로운 자유의 시대를 불러온 사람들 스스로가 나폴레옹의 등장에 환호하고 가까스로 얻은 자유를 자진해서 헌납하기도 했다. 무엇이 올바른 정치적 선택인가를 매일 매일 질문 당하고 살아야 했던 그 시절의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만남과 토론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마담 스탈의 살롱에 하나 둘 모여들어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고 토론하며 앞날을 모색했다.

- 살롱에서 자란 아이

통상 마담 스탈로 불리며, 정식이름이 안느 루이즈 제르맹 드 스탈 홀슈타인인 주불 스웨덴 대사의 부인 스탈 남작 부인은 격동기 프랑스 살롱의 대표적인 안주인이었다. 그녀는 혁명 전 루이 16세의 재무 대신이자 은행가인 부호 네케르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 네케르 부인은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문예 살롱의 안주인으로 그녀의 집안엔 늘 학자와 시인,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다.

훗날 마담 스탈이 되는 어린시절의 제르맹 네케르는 어머니 곁에서 살롱의 귀염둥이로 자라났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프랑스 혁명을 이끈 계몽학자들의 무릎 위에서 그들의 사상을 배웠고, 정치적 감각과 예술적 소양과 학자로서의 지식을 모두 살롱에서 익혔다. 제르맹 네케르에게 살롱은 가정과 학교를 의미했고 항차 그녀가 자라 반드시 안주인이 되어야 할 그녀의 미래이기도 하였다.

- 정치적 살롱의 안주인



17세기 궁중에서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살롱문화는 18세기 귀족부인들이 안주인이 되어 대표적인 귀족문학과 예술의 산실이 되었다. 많은 이름난 귀족부인들이 자신의 집을 개방했고 이곳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만남과 사교의 장이 되었다. 이들 살롱들은 대부분 문예 살롱으로 세련된 매너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살롱의 안주인을 중심으로 섬세한 예술적 분위기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말 즈음부터 살롱의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급변하는 사회상황과 지식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한 자유와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신선 놀음 같은 귀족문예활동에 회의를 품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식인들은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할 장소가 필요했다. 정치적 토론의 장으로서 살롱의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고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마담 스탈의 살롱이었다.

프랑스에 와 있던 주불 스웨덴 대사 스탈 홀슈타인 남작과 결혼한 후 그녀의 살롱에는 프랑스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다. 어릴 때부터 계몽 지식인들 틈에서 그들의 사상을 습득했던 마담 스탈은 여느 살롱의 여주인과 달랐다. 그녀는 정치와 사회상에 대한 식견을 가지고 지식인 남성들과 토론을 즐기는 남다른 살롱의 안주인이었다. 또한 자신의 사회사상을 논문으로 발표하는 등 단순한 살롱의 안주인 역할을 벗어나 진지한 정치 살롱의 일원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 나폴레옹과의 불화

초기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던 마담 스탈은 혁명이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자신의 입지를 위협하는 경지에 이르자 잠시 살롱을 접고 스위스 코페로 물러난다. 사회변혁을 주장했던 그녀였지만 혁명이 자신이 속한 귀족 계급을 위협하게 되자 애매한 입장을 취하며 스위스에서 은거하였다.

이후 프랑스 상황이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즈음 마담 스탈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살롱을 연다. 마담 스탈이 새로 연 살롱도 이전의 살롱처럼 정치적인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장소였다. 그녀의 살롱에는 주로 나폴레옹에 반대하?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혁명으로 어렵게 얻은 자유와 인권이 나폴레옹이 내세운 프랑스의 자존심이라는 허울 속에 고스란히 사장되는 것을 본 몇몇 지식인들은 나폴레옹의 폭주를 그대로 둘 수 없었고 그 선봉에 마담 스탈이 서있었다. 나폴레옹은 마담 스탈과 그녀의 살롱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두려워했다.

오랫동안 마담 스탈의 살롱을 감시하던 나폴레옹은 마침내 마담 스탈이 <<델핀>>이라는 사회 비판 소설을 써내자 폭발하고 만다. 마담 스탈은 즉시 프랑스에서 추방되었으며 그녀는 이후 나폴레옹이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했다.

- 낭만주의의 전파자

프랑스에서 추방된 후 마담 스탈은 유럽 각지를 여행한다.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으로 가뜩이나 그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던 유럽 국가들은 반 나폴레옹주의자인 마담 스탈의 방문을 환영하였다. 그 중에서 특히 그녀는 독일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괴테를 비롯하여 실러, 슐레겔 등 당시 독일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그녀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독일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마담 스탈은 마침 독일에서 막 꽃피기 시작한 낭만주의 사조에 깊이 감명 받았다. 독일에 대한 인상을 정리하여 그녀가 낸 <<독일론>> 이라는 책은 프랑스에 독일의 낭만주의 문화를 소개했고 나아가 이를 전 유럽으로 전파시켰다. 1807년 마담 스탈은 또 한 편 그녀를 대표하는 소설을 펴낸다.

<<코린 혹은 이탈리아>>는 여성성을 찬미하는 본격 여성주의 소설이었다. 이제 마담 스탈은 프랑스 살롱의 안주인에서부터 벗어나 전 유럽에 영향을 미치는, 유럽의 지식인 전체를 상대로 한 문예와 정치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19세기 초 프랑스는 전 유럽에 영향을 미친 두 명의 강력한 인물을 얻었다. 한 명은 막강한 군인 나폴레옹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런 나폴레옹을 반대하며 일어서 전유럽 지식인들을 매혹시킨 마담 스탈이었다.



김정미 방송ㆍ시나리오 작가 limpid7@msn.com


입력시간 : 2004-10-2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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