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입으로 먹는 일본의 식문화대나무로 싼 주먹밥에서 발달, 지방마다 독특한 맛으로 인기

[문화 속 음식기행]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 도시락
눈과 입으로 먹는 일본의 식문화
대나무로 싼 주먹밥에서 발달, 지방마다 독특한 맛으로 인기


시대상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르 중 하나가 형사물 영화나 드라마라는 말이 있다. ‘수사 반장’이 엄숙하고 정의로운 경찰의 모습을 통해 사회 질서를 강조했다면, 20여 년 후의 ‘투캅스’나 ‘공공의 적’은 비틀리고 타락한 경찰을 보여줌으로써 공직자의 특권의식을 비꼬고 있다.

경찰을 비롯한 공직 사회가 폐쇄적이고 경직되어 있다는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은 망국병으로까지 불리는 일본식 관료주의를 풍자해 큰 인기를 끌었던 코미디 형사물이다.

강력계의 ‘열혈 형사’ 아오시마(오다 유지)는 회사의 조직 문화에 싫증을 느껴 경찰이 되었지만 현실은 꿈꾸었던 것과는 달랐다. 대형 사건이라도 터지면 수사권은 경시청에 넘어가고 관할서가 맡는 일은 고작 잔심부름이다. 경찰 관료들은 회의실에서의 탁상공론에만 의존할 뿐 직접 현장을 겪는 관할 형사들의 말은 무시하고 만다.

희화화되고 망가진 경찰의 권위

경찰 조직의 권위와 형식을 중요시하는 관료들에게 아오시마는 한 마디로 ‘미운털 박힌’ 부하이다. “사건은 회의실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며 상관의 명령을 대놓고 거부하는가 하면, 직접 범인을 잡겠다고 무모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형사라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며,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는 인물이다.

중요하지도 않은 수사 본부 이름을 짓는 데 머리를 싸매고, 주도권 싸움을 하느라 눈앞의 범인을 놓쳐 버리는 등 우왕좌왕하는 경찰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경찰’로 상징되는 해묵은 권위는 영화 속에서 이렇게 희화화되고 망가진다. 자살 사이트, 오타쿠, 실업문제 등 변화하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다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도 이 영화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본의 관료주의 문화를 비판하는 것 같다가도 결과적으로는 이를 인정해 버리는 부분이다. 아오시마가 상관인 무로이(야나기바 토시로)에게 “나는 현장을 지킬 테니 더 승진해서 현장 형사들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초반의 통쾌함과는 대조적으로 알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긴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찰대 출신 정도에 해당하는 ‘캐리어 경찰’과 일반 경찰들은 승진 속도 뿐 아니라 처우에서도 큰 차별을 받는데, 이는 영화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특별수사본부의 엘리트 경찰들에게는 고급 백화점의 값비싼 도시락이 제공되는 반면 관할서 형사의 식사는 컵라면이 고작이고, 그나마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때가 많다.

이 ‘고급 도시락’은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일본의 식문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직접 식당으로 모셔가지 포장된 도시락을 대접한다면 무례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일 것이다. 국물음식 등 뜨겁게 먹는 요리가 많고 푸짐한 양을 중시하는 한식에서 도시락은 필요할 때나 먹는 간이식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뜨거운 음식을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며 소식이 습관화된 일본인들에게 도시락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요리이다. 특히 각 기차역에서 판매하는 ‘에키벤(驛弁)’은 그 지방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보여준다.

철도와 함께 발달한 일본대표음식

일본식 도시락의 가장 큰 특징은 ‘오방색’이라고 불리는 다섯 가지 색깔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즉 흰색의 밥과 검정색의 김, 노란색 달걀, 빨간색 우메보시(매실 장아찌), 녹색의 야채를 기본으로 사용하게 된다.

‘눈으로 먹는다’는 일본 요리답게 이 다섯 가지 색의 조화 여부에 따라 도시락의 레벨이 달라진다고 한다. 일본의 기후는 덥고 습하기 때문에 도시락을 만들 때는 밥이 쉬지 않도록 식초를 섞거나 우메보시를 밥 한가운데에 박는다.

최초의 에키벤은 주먹밥 4개를 대나무 잎에 싸고 단무지를 곁들인 간단한 형태였으나, 그 후 철도의 발달과 함께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다. 지역별 특징을 보자면 관동 지역에는 간장과 설탕을 많이 사용해 달착지근한 반찬이 많은 반면 관서 지역에서는 소금간을 주로 해 깔끔하고 담백한 편이다.

훗카이도 지역의 에키벤은 해산물을 많이 이용했다. 에키벤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오사카 지역에서는 팔각형 목재상자에 갖가지 호화스러운 반찬을 담은 학카쿠벤또(八角弁當), 팥밥에 깨소금을 뿌려 먹는 세키한벤또(赤飯弁當), 16개의 작은 칸에 각기 다른 재료로 모자이크처럼 화려한 무늬를 넣은 카농(花音) 등이 유명하다.

교통 수단이 크게 발달하면서 예전처럼 장시간 기차 여행을 하며 도시락을 즐기는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최근에는 매년 4월 10일을 ‘에키벤의 날’로 정해 백화점 등에서 각종 이벤트를 열고 있다고 한다. 이제 도시락은 여행과 별개로 일본의 음식 문화에서 새로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11-24 16:29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