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해진 색·디자인·소재, 캐주얼화한 모피로 '귀족적 멋내기'에 도전

[패션] 가벼워진 사치, 모피가 젊어졌다
다양해진 색·디자인·소재, 캐주얼화한 모피로 '귀족적 멋내기'에 도전

망고

부유함이 상징인 모피. 부유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보이고 싶은 신분 상승 효과를 준다. 어떤 여성이 이 유혹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육식과 모피를 거부하는 것이 단지 혐오하기 때문이 아니라면 이번 겨울, ‘남의 털’에 신경 써야 한다. 그것도 한다 하는 ‘패션인’이라면 반드시.

어른이 되고 나서 갖고 싶은 것이 있었다. 빨간색 립스틱과 하이힐, 그리고 모피 코트. 모피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마찬가지로 여자들의 꿈이 실려 있다. 그것도 매우 값이 드는. 그래서 겨울이면 모피를 닮은 양털 무스탕, 인조털이 달린 겉옷을 애용했지만 부족했다. 백화점에 멋지게 내걸린 모피 코너를 지나칠 때면 보이지 않게 살짝 손끝을 대봐야 만족하곤 했다.

언젠가 “이 코트는 친칠라 50마리의 모피로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선전하는 점원을 말을 듣는 순간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친칠라는 다람쥐과의 작은 동물이기 때문에 여성 코트 하나를 만들려면 많은 목숨을 앗아야 한다. 아기 피부처럼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 뒤 따르는 희생. 그 때문에 모피는 제 몸값을 높일 수 있었을까.

때만 되면 동물보호 단체들은 목소리를 높여 모피 반대 운동을 벌였고, 최근에도 한 폴란드 여성이 피를 묻힌 모피 모자를 쓰고 시위하는 모습을 인터넷 기사를 통해 목격할 수 있었다. 폴란드에서만 매년 100만여 마리의 동물이 모피 코트 때문에 희생되고 있어서란다. 이런 목소리를 두려워하면서도 패션은 모피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때만 되면 패션쇼 앞에서 동물 보호 시위가 벌어졌고, 그 여파로 1990년대 후반에는 인조 모피로 한을 달래야 했다.


사치의 대명사에서 패션으로
그렇게 학대와 사치품의 대명사였던 모피는 고급품에 대한 열망에 힘입어 다시 패션의 대열에 합류했다. 1994년 모피 반대 캠페인에 참가하고 나신으로 모피 반대 운동을 벌여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슈퍼 모델 신디 크로포드는 얼마 전 미국 최고급 모피브랜드와 광고 계약을 맺어 원성을 들었다. 진짜 모피를 쓰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미국의 패션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패션쇼에도 모피가 등장했다. 그녀의 말로는 자연적으로 떨어진 동물의 털을 주워 옷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같은 소리다.

불황이라는 상황도 모피 유행에 불을 지폈다. 어려우니까 허름하게 입는 것이 아니라, 더 화려하게 기왕이면 돈을 들여 제대로 된 옷에 투자하자는 생각 때문이다. 모피는 보온성과 부피에 비해 가벼운 경량성, 보는 것만으로도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겨울 최고의 소재다. 가벼운 복장 위에 걸쳐도 차가운 바람을 막아 주니, 실내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또 모피의 부드러운 감촉은 원초적인 행복감을 준다.

하지만 정말 비싸 보이는 ‘사모님’이 떠오르던 과시적 모피는 고리타분하다. 복고풍을 말할 때 항상 하는 소리지만 장롱 안에서 금방 꺼내 입은 곰팡내 날 듯한 옷이라면 차라리 폐품 처리 하는 것이 낫다. 혼수로 몇 백 만원을 들여 모셔온 모피 코트라면 당장 모피 전문 수선집에 달려가자. 취급이 어려운 모피를 고쳐 입으려면 또 그 만큼의 비용도 감당해야 함을 물론이다.

롱 코트를 반 코트로 만드는데 최소 50만원 정도는 예상해야 한다. 얼마나 귀한 몸값인데, 눈 딱 감아야 한다. 모피 염색 리폼부터 모피 전체 디자인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리폼까지 기술도 대단하게 발전했다. 떼어낸 모피 조각으로 목도리나, 가방, 작은 장신구까지 만들어준다.

모피하면 ‘밍크’를 생각하겠지만 18세기 바다 족제비 털을 시작해 물개, 검은 여우의 털로 모피 옷을 해 입었다. 자연 생산(!)되던 자원이 고갈되면서 모피 옷을 해 입기 위해 동물을 사육하기 시작했고, 모피용 동물의 종류도 다양해 졌다. 밍크, 폭스(여우), 세이블(담비), 햄스터, 라쿤(너구리), 레빗(토끼), 와일드캣(야생 고양이), 스와카라(어린양) 등이 있다. 가공 기술을 발휘해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털을 짧게 깎아 가공한 ‘쉬어드’, 거친 털을 뽑아 부드럽게 만든 ‘플럭트 밍크’ 등이다. 고르지 않고 거친 소재를 쓰기도 하는데 꼬불꼬불한 털 모양을 그대로 살리기도 했다.

모피에 대한 유혹에는 ‘값나가는 몸’이라는 제약이 늘 있었다. 모피 대유행 시대. 걱정할 필요 없다. 다행히 이번 겨울 모피 유행의 핵심은 젊고, 캐주얼한 멋이라서 적은 돈으로도 귀한 모피의 해택을 누릴 수 있다. 수백, 수천만 원대 최고급 모피도 있지만 이번 겨울에는 대중적인 저가 모피류가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이다. 토끼털은 10만~20만원대, 밍크는 40만~50만원대 그리고 모피를 부분적으로 덧댄 10만원 미만 제품까지 가격대가 다양하다.


목에 두를까? 어깨에 걸칠까?
롱 코트도 있지만 귀족출신 꼬마 숙녀 같아 보이는 케이프, 조끼 형태의 모피 볼레로도 부담을 줄인 고급스러운 모피 아이템이다. 짧은 코트 형태도 7부 소매에 A라인 재킷 형태로 앙증맞다. 레드 카펫의 여배우들처럼 어깨에 걸치는 숄은 새틴 리본을 묶어 숙녀의 차림새를 빛낸다. 그래도 역시 부담이 가시지 않는다면 가벼운 모피 장식이 달린 트리밍 아이템이나 소품에 눈을 돌리면 된다. 목, 소매, 여밈 부분을 모피로 장식한 니트웨어나 코트를 고르자.

모피 트리밍 제품을 가을과 봄까지 활용하려면 원래 감과 모피를 탈 부착할 수 있는 제품이 실용적이다. 모피로 만들어 털 인형 같은 작은 크기의 핸드백 가방과 앞코에 모피 조각을 덧댄 구두도 모피의 새로운 시도다. 목에만 살짝 두르는 짧은 길이의 모피 목도리도 ‘가벼운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제품이다.

기본적인 모양을 고른다면 전체적으로 일정한 광택과 털 길이, 표면(가죽)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나 가공하지 않는 자연 소재의 경우 조각을 이어 맞추는 기술이 우수해야 한다. 올해는 작은 모피 조각들을 이어 붙이거나 꼬아 만든 디자인도 있다. 색색의 모피 조각을 이어 붙여 젊고 독특한 이미지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해 졌다. 소재와 디자인의 파격만큼 색상도 다채롭다. 천연의 색을 살린 검정과 갈색, 은색과 더불어 보라, 연두, 분홍, 연노랑 등 대담한 색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젊어진 모피는 청바지와 함께 입어야 빛이 난다. 물 빠진 청바지, 어그 부츠 등 빈티지 캐주얼 차림에도 멋지게 어울린다. 대신 모피 안에 입는 내의를 여성스럽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선택한다. 광택이 나는 벨벳, 새틴 소재가 좋겠다.

속옷처럼 섹시해 보이는 슬립 톱도 굿! 한여름 애용했던 티셔츠도 꺼내 입자. 모피를 입었는데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역시 우아한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트위드 소재 스커트와 실크 블라우스를 입는다. 모피 재킷이나 코트를 입었을 경우 함께 걸치는 소품은 모피가 아니어야 과하지 않은 모피스타일을 즐길 수 있다. 되도록 작고, 크리스털 같이 장식이 빛나는 것으로.

남성들도 모피, 입어야 한다. 남성복 매장에 여우털 장식 점퍼는 물론 밍크 롱 코트까지 다양한 남성용 모피 옷이 나와 있다. 아직까지 전신이 모피로 뒤덮인 대담한 패션족을 상상하기는 때 이르지만, 코트 안에 모피를 덧대 입게 되면 그만한 보온성이 없다.

모피 관리

눈이나 비 오는 날엔 가급적 착용을 피하는 것은 기본. 건강한 모피는 보슬비나 가벼운 눈에도 충분히 견뎌낸다. 물이 묻었을 경우에는 마른 수건 등으로 물기를 찍어내듯 닦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하루 정도 걸어 둔다. 털이 누웠더라도 다림질은 금물. 습 기가 찬 욕실에 30분정도 걸어뒀다가 물방울을 제거하고 말린다. 모피를 보관하는 최적의 장소는 영상 10도 정도의 그늘, 모피가 숨을 쉴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장마철이라도 제습제는 쓰지 않는다.

보관하는 동안 가끔 선풍기를 틀어 통풍한다. 보관할 때는 옷 커버보다 면, 실크소재의 천을 걸쳐두는 것이 좋다. 친칠라 등 고가의 모피는 아예 세탁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 그 외 일반 모피는 2~3년에 한 번 정도 드라이클리닝 해도 된다. 겨울이 지나면 따로 맡아서 관리해 주는 모피 전문 회사도 많으니 되도록 안전하게 보관하자.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12-08 17:43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