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도를 눈물의 바다에 빠뜨린 세 모자우동에 얽힌 눈물겹지만 가슴 훈훈한 이야기, 원제목은

[문화 속 음식기행] 동화 <우동 한 그릇>
열도를 눈물의 바다에 빠뜨린 세 모자
우동에 얽힌 눈물겹지만 가슴 훈훈한 이야기, 원제목은 <한 그릇 소바>


한때 초등학생들의 권장 도서로도 유명했던 동화 ‘우동 한 그릇’. 일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이 동화는 이례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는 가족과 따뜻한 이웃이라는 소재가 한국적인 정서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훗카이도의 조그마한 우동집 ‘북해정’. 섣달 그믐날의 손님맞이로 정신 없이 바쁘던 이곳의 주인은 밤이 되자 슬슬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남루한 옷을 입은 젊은 여인과 두 아들이 나타나 우동을 한 그릇만 시켜도 되느냐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주인은 일부러 평소보다 조금 많은 양의 우동을 말아 그들 앞에 내놓고, 세 모자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한 그릇의 우동을 나눠 먹는다.

섣달 그믐날 우동집 찾은 남루한 세 모자

다음 해에도 이들은 손님이 끊길 무렵 북해정을 찾고, 그 다음 해에는 한 그릇이 아닌 두 그릇을 시킨다. 교통 사고를 내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빚을 마침내 다 갚게 된 것이다. 이들의 사연에 북해정 주인 내외는 몰래 눈시울을 붉힌다. 그 후 북해정 주인은 매년 12월 31일이 돌아올 때마다 그들의 자리를 비워 놓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들은 10여 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 새 북해정의 예약석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게 된다.

주인 내외의 머리 속에서 이들 모자의 모습이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 섣달 그믐을 맞은 북해정에 말쑥한 기모노를 차려 입은 중년 부인과 두 청년이 찾아 온다. 알고 보니 이들은 부인의 친정이 있는 교토로 이사하는 바람에 우동을 먹으러 오지 못한 것이었다. 성장한 아들들은 각각 의사와 은행원이 되어 있었다. 이들 세 모자는 어려웠던 시절 최고의 사치였던 북해정의 우동을, 이번에는 세 그릇을 시켜 먹는다.

구리 료헤이가 1987년에 쓴 이 동화가 유명해진 것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연말 방송에 소개 되면서부터였다. 라디오를 들은 수 많은 청취자들은 재방송을 부탁하는 엽서를 보냈고,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오쿠보 나오히고가 의사당에서 이 동화를 낭독하여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전 일본 열도는, 그들 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1억 눈물’의 바다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이 ‘우동 한 그릇’의 원래 제목이 ‘한 그릇 소바’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이는 번역자가 의도적으로 오역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바, 즉 메밀국수라고 하면 채반에 나오는 차가운 국수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인들이 설 치레를 하기 위해 먹는 음식도 우동이 아닌 소바이다. 이는 에도 시대의 귀금속 세공사들이 작업 중 남은 금 부스러기를 흡착하는 데 메밀가루를 이용한 것에서 착안, 메밀이 재물을 묻혀 들인다는 의미로 나아간 것이다. 물론 설 무렵에 먹는 소바는 냉국수가 아니라 뜨거운 국물에 말아져 나온다.

비록 섣달 그믐날 음식은 아니지만 우동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일본 우동의 원조는 ‘사누키 우동’으로 그 시작은 헤이안 시대인 서기 800년경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나라에 유학했던 승려 고보 대사는 밀 종자와 함께 중국식 국수 만드는 법을 들여와 지금의 가가와 현인 사누키 지방에 전했다고 한다.

일본 대표음식 중 하나, 지방마다 다른 맛

일본에서 유명한 우동으로는 문어 등의 해산물로 국물을 낸 후쿠오카 지역의 하카다 우동, 전골처럼 끓이면서 먹는 오사카의 우동스키, 떡을 넣은 간토 지방의 지카라 우동, 우동에 밥을 말아먹는 야마나시 현의 우동메시 등이 있다.

재료별로 분류하자면 유부를 넣은 기쓰네 우동(직역하면 여우 우동이라는 뜻으로 여우가 유부를 좋아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튀김 부스러기를 얹은 다누키 우동, 호화스럽게 새우나 야채 튀김을 넣은 뎀푸라 우동, 파를 넣은 네기이리 우동 등이 유명하다. 그 밖에 고기나 계란 노른자, 카레 등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한 우동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먹는 가케우동은 사발에 우동을 담고 국물을 끼얹어 손으로 그릇을 들어 올려 먹는 방법을 붓가케라고 한 데서 나온 이름이다. 이는 젓가락 등의 식기가 부족하던 시절에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우동 맛을 좌우하는 포인트는 뭐니 뭐니 해도 깔끔한 국물 맛에 있다.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다시마와 가쓰오부시 등이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다시마는 오래 끓이게 되면 국물이 끈적해지고 잡맛이 나기 때문에 미리 불려 두었다가 끓으면 불을 끄고 건져낸다. 가쓰오부시는 말린 가다랭이를 대패로 얇게 깎아낸 것으로 끓이지는 않고 뜨거운 국물에 넣어 식히면서 맛이 우러나게 한다.

일본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예의이지만 우동만큼은 예외이다. 후루룩 소리를 내며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면발을 쭉 빨아 올리며 먹는 것이 우동을 최고로 맛있게 먹는 방식이라고 한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1-0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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