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 풍미한 패션리더들, 풍만·우아·섹시의 스타일 변천사

[패션칼럼] 스타일을 창조한 세기의 매력男女
한 시대 풍미한 패션리더들, 풍만·우아·섹시의 스타일 변천사

고대와 중세를 걸쳐 아름다움은 다산과 풍요를 가장 중시했다.
루이15세의 연인이자 정치적 조언자였던 로코코 시대의 뮤즈, 퐁파두르
프랑스 귀족의 혈통으로 미국에 고급 패션을 전파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덜 자란 반항적인 소녀의 모습으로 모델계에 입문해 여전히 활발한 활동중인 케이트 모스의 버버리 광고 비주얼
남성 패션 아이콘의 대표 주자는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웰빙 시대, 건강한 육체의 모델에 대한 호응도가 높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스스로 패션 아이콘이 된 샤넬의 창시자 코코 샤넬의 명언이다. 해마다 유행에 따라다니는 대중과는 달리, 자신만의 개성으로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스타일 리더들이 있다. 시대를 건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그녀와 그.

경쟁력이 되는 나만의 스타일 만들기

최근 광고 비주얼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운동하는 모습이 많다는 것. 웰빙 시대, 건강미가 우선이다.

지난해 ‘얼짱’에 이은 신조어 ‘몸짱’의 시대를 연 40대 봄날 아줌마 정다연의 출연으로 온 나라가 피트니스 열풍에 휩싸인 적이 있다. 어느 20대보다 훌륭하게 가꿔진 그의 트레이닝된 몸은 이후 패션에도 큰 영향을 미쳐 노출패션과 피트니스 의류의 유행을 이끌었다. 이처럼 화제의 인물, 특히 지속적인 매스컴의 타깃이 되는 스타들의 경우라면 잘 가꿔진 이미지는 곧 바로 자산이 된다. 경쟁력이 되는 나만의 스타일, 자신 있게 “이거다”하고 밝힐 수 있는가.

세기의 미인들이 있다. 중국의 양귀비,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뛰어난 미모와 총명함을 무기로 한나라를 뒤흔든 그녀들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시대의 미인이었다. 고대와 중세에 걸쳐 서양에서는 풍만한 몸매를 가장 큰 미덕으로 생각했다. 배까지 처진 가슴과 둔한 엉덩이만 남은 구석기 시대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다산의 어머니상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았다.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에서 발견된 ‘크리도스의 비너스’상은 신화를 대표하는 미의 기준으로 화가들의 붓끝에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여성미의 기준이 변하다

그러나 19세기로 접어 들면서, 전통적 여인상은 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변신을 시작한다. 코르셋이라는 발명품으로 여성들은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에다 허리만은 개미처럼 보이는 모래 시계형 체형을 갈망하게 된다. 왕실과 귀족층의 과시욕을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거대한 부피로 자신을 표현했다. 18세기까지 신분을 인정받지 못 했던 배우들의 지위가 상승하면서 그들은 사교계에 빠질 수 없는 유명 인사가 되어 주목 받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에는 더 이상 자신의 몸을 고래 심줄 같은 속옷으로 옥죌 필요가 없어졌다. 속옷을 걷어내고 한 꺼풀의 옷만 걸친 듯해 ‘벌거벗은 패션’이라고 불렀을 정도. 종교계와 언론에서 들고 일어날 정도로 반향이 컸지만 의상은 점점 상황에 맞는 차림새로 변해갔다. 날씬한 외관의 패션이 유행하면서 무성 영화 시대에는 두 여배우가 동경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단발머리의 쾌활한 여배우 클라라 보, 말괄량이 소녀 루이스 브룩스의 마른 체형이 그것.

1차 세계 대전 후 여성의 사회 진출과 함께 진취적이면서도 여성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패션은 코코 샤넬이 만들어 갔다. 지금까지도 우아미와 모던한 여성의 스타일로 정평 나 있는 ‘샤넬 스타일’의 모델이 된 그녀는 스스로가 선구적인 여성의 라이프 스타일을 실천한 신화였다.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친 1940년대 후반에 와서는 다시금 여성성을 찾는다. 마릴린 몬로, 에바 가드너,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풍만한 여성상이 세인들을 설레게 했다. 50년대는 우아미의 차지였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오드리 햅번, 그레이스 켈리가 귀족적인 이미지로 대중을 움직였다. 이중 오드리 헵번은 청순하면서도 기품 있는 이미지로 프랑스의 우아함을 대표하는 지방시의 완벽한 모델이었다. 짧은 머리모양, 사브리나 팬츠의 순진무구한 이미지부터 드레스 차림의 우아한 자태까지 패션의 역사의 큰 획을 그었다.

60~70년대는 깡마른 체형이 이상형이 됐다. 1960년대 패션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트위기는 꼬챙이처럼 마른 몸매에 남자애처럼 짧은 머리 모양, 주근깨, 광대뼈, 표정 없는 커다란 눈동자가 트레이드 마크인 모델이었다. 트위기의 매력은 이제까지의 전통적인 여성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패션사에서 가장 짧은 치마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소년 같았다. 그녀를 따라 하기 위해 수많은 소녀들이 식사를 거르는 등 다이어트가 사회 문제로 야기되기도 했다.

80년대 이후 몸 자체가 하나의 패션

80년대에 들어서 패션 아이콘은 빠르게 변해 간다. 풍만하게 보이기 위해, 또 깡말라 보이기 위해 옷을 입었던 과거와 달리 몸 자체가 패션이 된다. 미국의 국력 성장에 따라 가장 미국적인 여성으로 마돈나, 신디 크로포드가 떠오른다. 지속적인 단련으로 근육을 다진 그녀들의 파워 넘치는 건강미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힘이 성장했음을 깨닫게 했다.

90년대 와서는 반대로 덜 자라 중성적인 케이트 모스가 패션 아이콘으로 등극한다. 아직 소녀티를 벗지 않은 케이트가 화장기 없는 얼굴의 전라로 소파에 누워있는 모습과 상반신 누드가 클로즈업된 광고 비주얼은 성숙한 여인의 누드보다 충격적이었다. 우선 당시 180㎝를 넘는 슈퍼모델들 사이에서 170㎝를 갓 넘은 데다 모델로는 결격 사유가 되는 안짱다리였다. 그러나 현실감 없는 완벽한 미모보다 개성으로 패션계를 지배했고 최근까지도 버버리, 펜디 등의 럭셔리 브랜드의 모델로 활약했다. 14살 우연하게 모델로 발탁된 케이트 모스는 아이와 같은 순진한 얼굴에 마약 복용 전력 등으로 반항적인 모습이 뒤섞인, 고도로 발전한 사회 속에서 방황하는 청년상을 대변했다.

90년대 후반에는 귀족 출신의 타고난 우아함을 지닌 여배우 귀네스 팰트로의 전성기였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여우 주연상을 받았던 1999년, 그녀는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화려한 보석과 모피로 온몸을 휘감은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단아한 분홍색 드레스를 선택함으로써 스스로를 보석으로 만들었다. 무엇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 외모, 큰 키(177센티미터), 날씬한 몸매, 빛나는 금발을 지녔지만 유행하는 옷을 입기보다는 입었을 때 스스로가 아름다워 보이는 옷을 선택하는 까다로운 감각이 그녀를 스타일 리더로 추켜세울 수 있는 조건이었다.

2000년에 들어서는 브라질 출신의 글래머 슈퍼모델 지젤 번천이 밀레니엄 패션계를 접수한다. 신이 내린 몸매라는 칭송과 현재 패션 사진작가들에게 가장 완벽한 몸매를 가진 모델로 사랑받고 있는 번천. 180센티미터, 50킬로그램, 92-61-89의 ‘쭉빵’ 몸매는 패션잡지 ‘보그’와 영국 ‘선데이 타임즈’지 등이 인정했듯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매이다. 럭셔리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은 그녀의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빌어 대히트했고 크리스챤 디올, 돌체&가바나, 얼진 등의 전속 모델이며, 현재 패션쇼 한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 5,000불 수입의 톱 모델 대우를 받고 있다.

레드카펫의 주목받는 패션 아이콘은 니콜 키드만이다. 이혼을 겪고 성숙미를 더하고 있는 니콜 키드만은 더 이상 남성의 후광을 필요치 않는 고귀한 여성의 이미지를 품고 있다. 지난해 호주 최고의 갑부 명단에까지 들었고 공식 행사에는 언제나 고급 취향의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고공 주가를 기록하고 있다.

남성 패션 아이콘으로는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손 들어 줘야 한다. 독창적인 머리 모양과 화장, 여성 취향의 패션도 서슴지 않는 그는 운동으로 다져진 강인한 체력과 ‘꽃미남’ 외모를 동시에 지닌 새로운 남성상, 곧 메트로섹슈얼의 대표 주자다. 또 가끔은 아내 빅토리아 베컴에게 몇 십 억대의 선물을 안겨 남성과 여성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남편이기도 하다.

개성이 최고의 매력이다

양귀비와 클레오파트라는 한 나라를 뒤흔들 미모의 소유자였음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그녀들의 진짜 매력은 남과 다른 개성과 재능이었다. TV에 나오는 못난이 캐릭터들을 보라. 시간이 흘러 어느새 익숙해진 그들의 외모는 ‘성형수술’ 여부를 들먹일 정도로 아름다워져 있다. 우리는 평균 이하라고 여겼던 그들의 외모에서도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유행의 경향도 날로 다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혹 평균의 미를 좇아 나만의 개성과 매력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새로 시작되는 한해, 시대를 풍미했던 매력남녀들을 돌아보며 자신만의 매력을 쌓기 위한 계획도 빠뜨리지 않기를.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1-0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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