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의 부속품 같은 가족"을 꿈꾸며식물 같은 여성들의 묵묵히 삶을 견디는 방식, 증오보다 더욱 가혹한 연민

[문학과 페미니즘] 서하진의 <모델하우스>
"모델하우스의 부속품 같은 가족"을 꿈꾸며
식물 같은 여성들의 묵묵히 삶을 견디는 방식, 증오보다 더욱 가혹한 연민


현대의 일상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내면갈등에 주목하여, 사랑과 결혼을 특히 그 중심에 두고 여성의 내면을 미학적으로 그려온 작가 서하진. 그녀는 섬세한 심리 묘사로 도시의 일상에 숨어있는 비극적 진실들을 그려내었다. 제대로 가족을 갖지 못한 여성들, 그들은 가족과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매번 그 환상은 배반당하고, 그들은 또 다른 환상, 불륜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결국 여전히 숙명적으로 불행하기 십상이다. 순수한 사랑과 낭만, 허위적이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일상. 완전히 벗어나거나 튀어 나갈 수 없는 그 두 현실을 오가며 그녀의 여성들은 묵묵히 삶의 모욕을 견딘다. 그리고 그 하나의 방법은 식물성이다. 식물의 묵묵함으로 향기를 피워내며, 증오보다 더욱 자신에게 가혹할 연민들을 품으며 그녀들은 그렇게 삶을 지속한다.

<모델하우스>는 “고아나 다름없는” 한 여성의 ‘불행하고 잠시 행복하다 다시 불행하고… 늘 불행할 지 모르는 이야기’이다. 평생 떠나가 버린 아내를 그리워하며 찾아 헤매다가 생을 마감해 버린 내 아버지의 삶은, 사랑하던 여인이 떠나버려 실연을 몹시도 앓는 그(나의 남편)에게서, 그 남편이 나를 떠나 늘 그리움과 쓸쓸함에 시달리게 될 나에게서 반복된다.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시간들
곧 헐릴 동네에서 작은 꽃집을 하던 나. 그런 내 꽃집을 늘 찾아오던 “한 세대 전의 사람처럼”, “궁핍의 냄새”를 가진 남자가 있었다. “늘 웃는 낯인데도 웃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이상한 사람”인 “그는 언제나 사춘기 소년처럼 초조해했고 때로 손톱을 물어뜯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계면쩍게 웃었다.” 장미 세 송이를 사고, 그것도 돈이 없으면 읽던 책을 맡기고 가던 그가 “꼬박 반 년” 동안이나 꽃을 사 가던 어느 날, 그는 “꽃을 사들고 찾아간 여자가 결혼한 여자라는 걸 지난주에야 알았다고” 말하며, 내 앞에서 “훅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시 어느 날 그는 “그 여자가 이제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되었다고” 하며 꽃을 사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동안 찾아오지 않는 그를 생각하며, “혼자 남겨졌을 때 나는 진짜 고아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얼굴이 떠오?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보다도 (한 동안 나를 돌봐주다 이민을 간) 떠나간 이모 부부보다도 나는 그가 그리웠다”고 토로한다. 어느 날 그가 오지 않은 이유가 “꽃을 바치던 여자가 다시 어디론가 가버렸기 때문”에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임을 알게 된 나는 “시든 꽃처럼 누워 앓고 있”는 그를 찾았다.

그리고 하루, 이틀, 사흘… 나는 과거에 아버지를 시중들 듯 그를 돌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꿈속을 찾아가 그를 만나고 싶었다. 꿈속에서 그를 안고 울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내가 모르는 이름을 부르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벽에 기댄 채 혼자 울었다. 나는 기다리고 기다렸다. 잠결에 곁을 더듬다 화들짝 깨어 후우, 긴 한숨을 쉬며 나를 보듬던 아버지처럼 그가 나를 알아주기를” 꿈꾼다.

평화로워 오히려 불안한 나날들, 어김없이 찾아온 불행
그리고 그들은 부부가 되었다. “행복에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인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로운 날”들이 지속되어 “불안”할 정도로.

어느 날 나는 틈틈이 모아놓은 돈을 “남편을 위해 쓸 생각”으로, 출근할 때마다 다른 집 문들을 두드려야 하는 그를 위해, 남편이 “매일 아침”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휘파람을 불며 출근”할 날들만을 고대하며, “일 가구 일 주차장”이 있는 새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예쁜 집 안 곳곳을 둘러보고, “구름 속을 걷는 기분”으로 모델하우스를 나오는 내가 본 것은 “늘 안쓰러워 보이던 남편과 너무도 달”라 보이는 나의 남편과 그 여자. “누구의 남편, 누군가의 아내, 그런 것을 따지는 일이 헛되고 덧없고 가혹하다 싶을 만큼” 행복해 보이는 남편과 여자였다.

“지난 오 년이, 그와의 삶이, 그리고 내 세계가 산산이 부서져 버려지고” 남편은 고요 속에서 “그 여자가 돌아왔어”라는 말만을 던졌다. 나는 “그가 떠나려 한다는 것. 떠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을 알았지만, “그녀가 그를 다시 버리기를, 그저 스쳐가는 바람처럼 그의 곁을 지나가고 그가 다시 기진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정말이지 미안해. 당신은 나와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라고만 말할 뿐이다.

“그에게로 향한 그리움이 시들고 마르고 마침내 버려질 때까지”
어느 일요일, 나와 남편은 “마지막 산행”을 나선다. “미안해 여보”라고 말하는 남편. “그 말은 그와 함께 한 길이 이제는 끝났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늘 오르던 서너 군데의 등산로를 벗어나보자”는 남편의 제의로 들어선 길에서 그들은 길을 잃는다. 이어 길이 없는 산 속으로,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샛길로 훌쩍 사라지고” 버리는 남편.

나는 그곳에서 왠지 낯설지 않은 한 남자를 만난다. “저이 금방 돌아올 겁니다. 첨 가는 이는 못 찾는 길이야요”라고 말하는 남자는 “아버지의, 아버지와 동향이었던 (내가 매우 의지하던) 이모부의 말투”를 지니고 있다. 아버지를 닮은 남자, “내 마음속까지도 속속들이 아는 듯하던 남자”는 “그러다 돌아오갔지. 가네들이 놓으주믄 말이지만”이라고 말하며 어느 순간 “그림자처럼 사라지고” 만다. 이 장면은 매우 상징적인데, 남편이 들어가는 낯선 길(그 여자와의 새로운 사랑)을 염두에 두고 아버지를 닮은 남자가 하는 말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남자를 따라온 길을 돌아가기도, 알지 못하는 샛길로 남편의 흔적을 찾아가기도 똑같이 두려”운 나. “어느 길로 가든” “혼자 남겨지고 말 것 같”은 나는 모델하우스를 떠올리며, “만약 지금이라도 그 집을 산다면 남편과 나는 예쁜 집에서 예쁜 찻잔에 향기 짙은 차를 마실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나는 가족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모델하우스의 부속품 같은 가족”을 떠올린다. 예쁜 모델하우스의 부속품 같은 가족조차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소설은 이 지점에서 일상이 지닌 허위성을 폭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 꿈꾸어야 하고 좌절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을 연출한다.

이윽고 나는 “그가 오면 작별을 말하리라. 그를 그 여자에게로, 그리운 사람에게로 보내리라. 나는… 돌아갈 곳이 없는 나는, 어딘가에서 작은 꽃집을 열 수 있을까. 그가 언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다시 장미를 팔면서 살아갈까. 그에게로 향한 그리움이 시들고 마르고 마침내 버려질 때까지”를 되뇐다.

떠나간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그리움, 붙잡히지 않는 여인을 향한 남편의 애달픔, 결국 나를 떠나게 될 남편이니 그를 보내주어야 하는 나의 증오와 연민이 얽힌 아리는 심정들. 사랑이란 다른 곳을 향하고 있기에 그들은 늘 불행하다. 그런데 소설은 이 세 가지 상처와 아픔들을 엮어놓으면서도 결코 ‘아프다’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조용하고 묵묵히 이 모순들을 견딘다. 그리고 이루지 못했던 갈망을 이루기 위해 나를 떠나가는 남편과 달리, 나는 그저 “작은 꽃집”을 가꿀 생각을 한다. 마치 한 순간 아름답게 피어나지만, 곧 “보이지 않게 썩어들어가” “군내를 풍기”는 꽃들처럼. 어쩌면 그녀도 그런 식물의 삶을 살아가게 될 지 모른다. 그리하여 작가는 소설 어귀에 다음의 문장을 던져놓았다.

“꽃은 아름다웠지만 꽃을 파는 일은 그렇지 않았다. 막 받아와 우아한 향기를 뿜는 꽃일수록 질 때의 냄새는 고약했다. 물이끼 낀 양동이 안에서 군내를 풍기며 썩는 꽃의 밑동을 씻어낼 때마다 내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보이지 않게 썩어들어가는 것. 삶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 내가 본 것은 이런 예쁜 공간이었을까? 나는 “저처럼 예쁜 공간에서 차를 마시면 남편과 나의 세계도 그렇게 환해질 것 같았다. 그는 내게 말할 것이다. 여보 믿어지지 않아. 그리고… 아직껏 이따금 잠결에 부르는 이름도 그의 꿈속에서 사라지리라. 어쩌면 우리는 예쁜 아이를 낳을 수도 있으리라. 나는 얼른 남편을 그곳으로 오게 하고 싶었다. 그 순간처럼 그가 간절히 그리웠던 적은 없는 것 같았다. 기쁨과 감격으로 일그러지다 환하게 밝아질 남편의 얼굴이 목이 아프도록 보고 싶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그녀의 소망은 완벽하게 배신당한다. 남편은 그녀의 눈앞에서,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 “잠결에 부르는 이름”의 주인공을 감싸 안고 바로 그 모델하우스로 들어간다.

권민정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1-24 15:23


권민정 자유기고가 eunsae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