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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페미니즘] 정지아의 <행복>
'행복'이라는 어렵고도 험난한 길에 대하여
'행복'할 겨를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부모님의 '행복'을 이해하기까지




<행복> 정지아 소설집, 창비, 2004.

1990년 장편 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냈으나, 국가보안법으로 판금 조치를 당하고, 이후 노동해방문학 관련 활동으로 수배생활을 하기도 했던 정지아는 2003년부터 창작활동을 재개해 2004년 첫 소설집 <행복>을 펴냈다. 표제작인 <행복>은 소설가와 평론가가 뽑은 ‘2003년 가장 좋은 소설’에 선정되기도 했다.

정지아는 실제로 1940년대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소설화해 <빨치산의 딸>을 써냈고, <행복> 역시도 자전적 소설이다. 자전적 성격이 강한 만큼 소설은 실제 경험하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묵직하고 농밀한 체험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역사와 개인, 이데올로기와 인간의 문제를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풀어내는 깊은 성찰과 섬세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아파하며 쓴 글에서만 번져나오는 묵직함과 단단함이 <행복>에 소설적 진정성과 깊이를 부여한다. 답을 던지기보다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회의하는 화자의 자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그 묵직한 아픔이 뼛속 깊이 전해오는 듯도 하다.

- 늘 생경하고 당혹스러운 단어, ‘행복’
고등학교 국어 선생인 나는 남편과 함께 부모님과 함께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한” 여행을 떠난다. 전남도당 소속으로 이후, 사상범으로 십여 년 간 복역했던 전력이 있는 아버지와 남부군 출신으로 산에서 “독종”이라는 별명을 지녔었다는 어머니가 나의 부모님. “그때 나는 이미 죽은 것이여”라는 어머니의 말처럼, 내 부모님에게 “빨치산 시절은 모든 것의 출발점이나 귀착점”이 되어, “고작 오 년에서 육 년에 불과한 젊은 날의 짧은 시간이 두 사람의 평생을 단단하게 얽어매고 있”다. “그때 두 분에게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겠지만, 그들은 “행위할 수 없는 열정”으로 “암흑보다 더한 절망”, “죽는 것보다 못한 세월”을 살아냈다.

한편 그런 부모님과의 기억에서 가족의 일상적인 행복이란 내게 늘 생소했다. 특히 단란한 가족사진을 집안 여기저기에 붙여둔다거나 꼼꼼히 사진첩을 정리해두는 것을 볼 때마다, 아버지 출소 후 찍은 어색한 한 장의 가족사진이 유일한 나는 마음이 서걱거렸다. 다정한 남편과 결혼하고 아이도 생겼지만, 나는 늘 “남편처럼 자연스럽게 즐길 수 없”었고, “어쩐지 낯선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없이 휑한 방에서 수십 년을 살아오는 동안 빈 공간에 익숙해진 나는 남의 담장을 기웃거리며 거기 피어있는 꽃을 탐낼 뿐 내 담장 안에는 아무 것도 키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어떤 인생이든 한 순간쯤은 행복의 흔적을 남겨도 좋을 만한 권리가 있는 게 아닐까”
부모님과의 어쩌면 ‘행복’을 찾아 떠난 여행. 그러나 여행을 하면서 내가 본 것은 부모님의 노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마음속에 여전히 정지해있는 ‘그 시절’이다.

예전에는 기차간에서조차 꼿꼿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던 어머니는 늙은이 냄새를 풍기며 입까지 벌리고 잠이 들고, 눈가에는 질척한 눈곱이 낀다. “영웅까지는 아니어도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인간으로 내 부모를 바라보았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 내 앞에서 피곤을 이기지 못해 깊은 잠에 취해 있는 부모님은 억압과 착취가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비던 혁명가가 아니라 다만 가난하고 볼품없는 늙은네일 뿐이었다.”

그리고 늘 부모님을 귀착시키는 지점들. 여행은 곧, 신념으로 버티고 걸어왔던 길이 허방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끊임없이 환기시켜주는 고통의 여정이다. 부모님은 50년 전에 멈춰버린 시간들을 만나고 싶지만, 현재는 그들에게 낯설고 황량하기만 하다. 한때 어머니가 “혁명의 열정을 품고” 걸었던 대관령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 시침을 떼고 있었”고, “정상이 가까워올수록 쇠락의 기미가 농후”하다. 어머니가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던 운포를 찾지만, 그곳은 과거의 자취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허물어져가는 동네일 따름이다.

즐겁게 음식을 먹고 술을 즐기며 노래라도 부르는 여행을 기대한 남편의 생각과는 달리, “동지들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던 아버지에게는 아무리 넘쳐나더라도 먹을 것은 곧 생명”이기에 부모님은 음식을 남기지 않는 데에 급급하고, “소주는 노동의 피로를 덜어주는 음료일 뿐”이니 딱 한 잔을 마시고 만다. 남편이 사온 생일케이크에는 눈도 제대로 주지 않으며, 부모님은 “빨치산 시절 이래로 세상의 변화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일종의 체질이 되어 버린 것인지” 여행을 와서도 강박적으로 뉴스를 챙겨보려고만 한다.

두 번째가 될 나와 부모님의 가족사진에는 제각기 어색한 표정만 찍히고, “나는 서럽도록 쓸쓸하게 느껴졌다.” “내게는 당신들을 배반한 역사만큼이나 알 수 없는 존재”인 어머니는 영정 사진으로 쓸 수 있게 자신들을 찍어달라고 한다.

나의 부모와는 달랐던, “자기에게 허락된 아주 짧은 순간조차 즐”길 줄 알았던 시어머니에 대한 회상은 내 부모님에 대한 시선을 한층 더 안타깝게 만든다. 대장암을 앓고 죽음에 임박했던 시어머니가 여행을 와서 “어둠속에 쭈그려 앉아 먼 바다를 보며 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평생 단 한순간이라도 저렇듯 슬픔이든 아픔이든 상처 입은 자신의 내면을 고즈넉하게 들여다보면서 스스로를 위로해본 적이” 없을 것만 같은 내 부모님 때문에 “저릿한 슬픔과 함께 부러움”으로 각인되었던 것이다.

- “꿈꿔왔던 것의 실체가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할 때, 초라하다 못해 되레 자신의 꿈을 배반한 것일 때도 사람은 평생의 꿈을 버릴 수 없는 것일까”
부모님의 제안으로 통일전망대를 찾고 별 대단할 것도 없는 북한 땅을 바라보고서 나는 “그래도 후회하지 않으세요?”라고 묻는다. 아버지는 노기 어린 눈길만 던지고 입을 열지 않는다. 이윽고 싸움의 대가를 조금이라도 바란다는 어머니와 그것은 패배주의로 진정한 혁명가의 자세가 아니라는 아버지는 논쟁을 하고. 나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저 비정한 괴물”, 역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여전히 역사를 신뢰하는, 청춘의 꿈을 신뢰하는 부모님의 순정 또한 나는 비정한 역사만큼이나 당혹스”럽지만, 그런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내게 스미는 하나의 화해. “당신들끼리 하는 말이었지만 두 사람은 내 질문에 충분히 답하고 있었다. 북한의 현실이 어떻든 현재 자신들의 모습이 어떻든, 자신들의 정의와 진리를 위해 청춘을 바쳤고, 그것은 옳았노라고 두 사람은 나에게 항변하고 있는 것! 이다.”

그리고 소설은 배롱나무의 전설을 언급하며, 부모님에 비추어 자신을 보는 지점으로 향한다. “다정한 모자처럼 도란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남편과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우리 가족사진의 감옥 같은 분위기에 나 역시 한몫을 거들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부모님의 삶을 “유토피아를 향한 멈출 수 없는 마라톤 같은 게 아니었을까”라고 정의하며, “도대체 내게는 그런 소망이 있기나 한 것인지”라고 반문한다. 이윽고 처음으로 불러보는 부모님과 남편에 대한 호칭, “내 가족 셋”.

역사를 평생의 화두로 알고 살아온 부모님에게 가족의 단란함이나 일상의 작은 행복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런 행복이란 누리기 어렵다기보다는, 누릴 수 없는 무엇으로 이미 설정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끊임없이 ‘행복’을 찾고 그에 대해 질문하고 있지만, 어쩌면 ‘불행’만을 이야기한다. 애초부터 ‘행복’할 겨를 따위는 허락되지도 않았던 빨치산 세대 부모님의 ‘불행’을 말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자신들이 한때를 살아낸 이유, 그 이상을 완전히 버리지도 않고서, 현재에서는 그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나름의 가치를 고수하며 살아간다. “생기 없고 공허”하지만 “아름답기는” 한 아버지의 생각들, “누가 뭐라든 아버지는 아직도 혁명가”였던 것이다.

화자는 오랜 질문과 회의 끝에 부모님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모순되는 현실을 묵묵히 살아온 부모에 대한 경의와 애정이 안타까움이나 연민에 서서히 스며든다. 화해는 늘 손쉽지 않고 행복은 항상 멀리 있지만, 그를 향하는 첫 발걸음으로 인해 비로소 화해와 행복의 문은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섣불리 낙관하지 않기에, 고민과 회의를 멈추지 않기에, 오히려 그 행복은 단단하고 묵직하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소설은 어쩌면 ‘행복’하다. ‘고통스럽게’ ‘행복’하다. 결코 자신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배신과 좌절의 역사를 겪고서도, 결코 달리기를 멈추지는 않는 부모님, “유토피아를 향한 멈출 수 없는 마라톤”을 쉬지 않는 부모님은 어쩌면 “도대체 내게는 그런 소망이 있기나 한 것인지”라고 말하는 나만큼, 혹은 나보다 행복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소설은, 흰 돛을 달고 오겠느라 약속하고 이무기를 죽이러 간 청년을 기다리다, 이무기를 죽이느라 붉게 된 돛을 멀리서 보고 절망하여 자결한 처녀가 죽어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웠다는 백일홍(배롱나무:목백일홍)의 전설을 다시 쓰고 있다.

“나는 일순간 어머니의 몸이 얼룩덜룩한 배롱나무 기둥으로 느껴졌다. (…) 배롱나무는 간절한 소망과 그리움의 꽃인 것이다. 처녀가 죽어서도 바랐던 소망은 사실 죽기 전에 이루어졌지만 배롱나무 전설에서 소망의 성취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 부모님에게 소망이란 애초에 도달 불가능한 유토피아이며, 그들의 인생이란 배신과 실패마저 제 심장과 동맥으로 삼아 앞으로든 뒤로든 뛰든 기든 여하튼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유토피아를 향한 멈출 수 없는 마라톤 같은 게 아니었을까.”




권민정 자유기고가 eunsae77@naver.com


입력시간 : 2005-04-0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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