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문화의 황횰한 어울림풍성한 실루엣과
[패션] 2005~06 가을 겨울 서울컬렉션 서로 다른 문화의 황횰한 어울림 풍성한 실루엣과 곡선미 강조, 상반된 소재와 스타일의 조화 강조
지난달 14일부터 23일까지 열흘간 한국패션의 현주소와 올 가을 겨울 패션 트렌드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패션대축제 '2005/06 F/W 서울컬렉션'이 열렸다.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FA), 뉴웨이브인서울(NEWS),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 등 국내 3대 패션단체와 개별디자이너, 60여명의 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여 벌인 축제의 현장 속으로 가 봤다. 이번 컬렉션은 전체적으로 퍼포먼스나 볼거리로 눈을 자극하지 않은 실용주의 패션쇼를 펼쳤다. 또 특별한 개성을 표현하려 하기 보다 근본적인 ‘옷’에 집중하고 실험하는 컬렉션이었다. 서울컬렉션 트렌드를 살펴보면 ‘믹스매치 컬쳐(mixmatch culture)’로 다양한 문화가 서로 어울려 창조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러시안(미치코코시노), 카우보이(박윤수) 등이 등장, 도심속의 방랑자, 보헤미안의 인상을 남겼으며 패션의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19세기 낭만주의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이종 문화가 만나고 뒤섞이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국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실용의복의 효시가 되는 밀리터리룩의 경향도 나타났다. 해군복에서 그 시작을 발견할 수 있는 더블브레스트티드 재킷이 특히 많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짙어진 컬러감은 메인 컬러를 ‘블랙’에 고정시킨 까닭이었다. 컬러 톤이 어두워졌지만 실크와 같은 가벼운 소재를 많이 사용해 색의 무게를 덜었다. 이밖에 핸드메이드 느낌을 극대화한 작품들과 순수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모티브로 삼거나 장식물로 사용해 창작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정성도 잊지 않았다.
느슨하고 풍요로운 스타일 연출 비즈장식이나 자수를 통해 수공예적인 화려함을 풍기던 표면장식 경향은 다소 수그러들었고 소재 자체의 중첩으로 볼륨감을 살렸다. 레이스를 넓게 사용하거나 이어 붙이고, 새의 날개처럼 원단을 잘라 겹겹이 바느질해 질감과 부피감을 더했다. 이는 무대 위에서 모델들의 움직임에 따라 풍부하게 물결을 만들어 여체의 곡선미를 강조하는 장식이 됐다. 실크, 저지, 레이스 등 여성스러운 소재의 활용으로 풍성해진 실루엣 속에서 여성의 몸매는 더 가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믹스매치 레이어드 실루엣이 유행이어서 뒤섞이거나 겹쳐지고, 단조로운 듯 풍성하며, 헐거우면서 날렵한 외관이 모두 선보였다. 남성복은 짧고 피트된 상의에 어울리는 청바지처럼 젊고 신선하며 활동적인 의복들이 많이 나타났다. 남성복에서도 믹스&매치의 장이 이어졌는데 클래식과 아웃도어의 만남, 클래식과 빈티지캐주얼의 만남, 전통적인 소재와 신소재의 만남 등 디자인과 소재에서 서로 상반되는 느낌으로 연출됐다.
어둡고 미묘한 색조 소재는 울, 가죽, 모피가 특히 많이 사용됐지만 실크, 저지, 레이스처럼 부드러운 소재를 함께 사용해 믹스매치를 이끌었다. 천연소재를 중심으로 레이스 등 로맨틱한 소재가 더해져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살렸고 디자이너가 자체 개발한 프린트와 소재들로 ‘나만의 것’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중 데님 소재의 활용은 가장 눈에 띄었다. 엘레강스한 여성복 디자이너들도 청바지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고 데님을 주요 소재로 사용한 디자이너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데님 소재를 섹시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변화시키고 있는데 핸드메이드 느낌을 첨가하거나 장식을 더해 개성이 돋보였다. 특히 데님소재를 가슴과 허리부분을 조이는 코르셋모양의 ‘뷔스티에(bustier)’로 독특하게 표현하며 데님의 귀족주의를 표현한 강기옥과, 모시와 실크 소재를 천연 염색해 데님처럼 보이게 만든 ‘데님 같지 않은 데님’으로 한국미를 표현한 한송, 형광염료를 주입한 화이트 진 드레스와 해체하고 분해해서 레이스ㆍ울 등과 재조립한 진 드레스를 선보인 이진윤 등은 데님소재의 파격과 실험에 능한 디자이너로 호평 받았다.
그들만의 컬렉션 그러나 백화점 위주의 국내 패션유통 현실상 제품수주가 일어나기 어려워 실질적인 바이어 상담 및 수주의 장이 되기 어려운 것이 국내의 컬렉션이다. 한마디로 상품만으로 경쟁력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컬렉션 일정이 확정되고 홍보하기 시작한 것은 행사 시작 몇 주 전(서울컬렉션 홈페이지가 개편된 것은 컬렉션 개최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이었고 몇몇 준비성이 부족한 디자이너들의 허술한 패션쇼가 그저 ‘지원금’ 때문에 열리는 인상을 줘 컬렉션의 실속은 풍성하지만은 않았다. 패션디자이너들의 창조적인 디자인이 발표되고 상품으로도 인정받아야 하는 컬렉션 현장이 언제까지 학생들의 졸업발표회, 고객감사 사은 패션쇼 수준에 머물러야 하는지 아쉬움이 크다. 컬렉션 첫날은 ‘패션쇼’를 좋아한다는 서울시장까지 다녀갔다. 전시행정의 깃발 노릇, ‘그들만의 컬렉션’은 이번만으로 족하지 않을까.
입력시간 : 2005-05-0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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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