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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페미니즘] 정미경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
잔혹하지만 나의 연인일 수밖에 없는, 피투성이 당신<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소설집, 2004, 민음사.

너무나 잔혹하지만 나의 연인일 수밖에 없는 피투성이 당신
1987년 희곡으로 등단했으나,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소설을 써온 시간이 그리 길지 않지만, 남다르게 탄탄한 문장력과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작가 정미경. 그녀의 소설은, 축적된 연륜 때문인지 경쾌하면서도 삶의 숨은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다. 2002년 <장밋빛 인생>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해 첫 소설집을 펴냈다. 문체와 통찰의 깊이를 긍정한다면, 오래 지켜보아야 할 작가들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첫 소설집의 표제작인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서른 하나에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된 여자, ‘유선’이 마주하게 된 막막하고 고통스러운 숨은 진실과 그를 벗어나는 과정들을 다루고 있는 중편이다. 사랑의 환희에 가려진 또 하나의 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사랑으로 나아가는 사유의 지점들을 소설은 밟아나간다.

어느 날 상습 안개 지역을 술을 마신 상태로 운전하다 사망한 남편. 그러나 남편이 죽고부터 과거의 일상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남편의 숨겨진 이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남편의 죽음을 알려준 여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누군가이고, 남편의 마지막 모습은 낯설기만 한데, 그것은 “안경이 달아나버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피투성이의 얼굴 때문”이다. 안경을 벗고, 즉 삶의 규범 따위를 던져버리고 피투성이가 된 얼굴은 어쩌면 남편의 맨 얼굴. 이는 누군지 모를 한 여자에 대한 의심과 함께 내내 유선을 고통스럽게 하고, 유선은 “자신과 세상 사이에 투명하고 두꺼운 유리, 자신은 통로를 찾을 수 없는 유리 칸막이가 놓인 것 같다.”

순간 낯선 타인이 되어 버린 당신, “이 사람이 나와 함께 살고 아이를 낳고 웃고 때로 울며 함께 살아왔던 그 사람일까”
그러다 죽은 남편의 일기나 편지 등을 묶어 책을 내겠다는 한 편집자를 만나면서, 유선은 남편이 암호까지 걸어놓은 컴퓨터 속 파일을 열어보게 된다. 그 속에서 발견한 것은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백 일 동안의 사랑의 기록.” 그 속에는 다음과 같은 사유들이 담겨있다.

“우리의 생에는 두 개의 윤리가 있다. 하나는 결혼의 윤리며, 다른 하나는 열정의 윤리다. 인생에 밤과 낮이 있듯 태양 아래의 윤리와 달빛 아래의 윤리가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무거운 것인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삶은 어느 순간까지 선택을 강요할 것인가.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선택을 강요하는 삶이여, 나는,” / “때로 M이 내 영혼의 목발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를 알기 전엔 내 영혼이 목발이 필요한 상태라는 걸 스스로 알지 못했다.” / “모든 게 좋아. 너의 모든 것.” “그렇게 많이?” / “아아,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이처럼 세상이 아름다우니까.”

“모두 하나의 뚜렷한 초점을 향하고 있는” 글들에서 유선은 “일생에 한 번 꿀까 말까 한 깨어나기 싫은 꿈과도 같이” “마지막 순간까지 즐기고 있었을” 남편의 “강박적” 사랑을 본다. “그의 기록에는 극도의 절제와 결코 절제할 수 없는 과잉된 정서가 행복하게 불화하고 있었고”, 그의 연인이었음이 분명한 M은 “구심력”으로, 아내인 유선은 “우울한 원심력으로” “차갑고 멀어지고 싶은 낡은 행성”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태양 아래의 윤리”인 “결혼의 윤리”와 “달빛 아래의 윤리”인 “열정의 윤리” 사이에서, 그가 “열정”을 선택해왔음을 유선은 인정해야만 했다.

“이제는 그의 침묵조차도 점자처럼 더듬어 읽을 수 있을 만큼 서로에게 투명하다고 믿었던” 유선이기에 이 모든 것들은 그녀를 엄청난 혼란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이 남자는 누구일까. (…) 이 사람이 나와 함께 살고 아이를 낳고 웃고 때로 울며 함께 살아왔던 그 사람일까.” “분노를 폭발시킬 상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고통은 더욱 크다. 무엇 하나 분명하지 않으나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했다는 사실만은 절대적인, 오직 그녀 혼자서 감당해야할 진실 앞에서 그녀는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앓는다. 그 고통은 이윽고 신체적 증상으로 변형되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인 지독한 가려움증이 된다. “절망적인 가려움이, 손 닿지 않는 시린 우물 속에서 꾸역꾸역 밀려 올라왔다.” 그러나 “가려움으로 사람이 죽진 않으니까”, 가려움증은 “가라앉고 나면 흔적이 없어지는” “분만통” 같은 것이니까, 유선은 “언젠가 내 속에 있는 아픈 덩어리가 날 찢고 나가는 순간 이 모든 가려움도 같이 데리고 가주겠지”라고 자신을 위안한다.

그리고 유선은 그와의 관계를 다시 보기 시작한다. “너무 잔인한” 방식으로, “종종 숨겨진 현실을 일깨워주곤” 하는 “인생”을 받아들여야만 하기에. “그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 둘 사이엔 깊은 우물이 있었다. 그가 옆에 있을 땐 우물의 존재를 몰랐다. 너무 가까이 있는 건 보지 못하는 게 인간의 시력이니까. 그 심연 속에 많은 것들이 있었다. 사랑도, 결핍도, 원심력도, 구심력도, 피로한 감정의 순간도, 은닉된 삶의 조각들도. 그 조각들을 다 맞추어도 기어이 떠오르지 않는 지난 생의 밑그림. 끝내 찾을 수 없는 몇 개의 조각들이 여기 있다.

둘 사이의 우물은 너무 깊고 어둡고 그리고 차갑다.” “감정이 알러지 상태에 빠진” 유선. “기쁨과 즐거움을 빼버린, 너그러움과 행복감을 제외한 모든 감성이 유선의 마음속에서 미친 파도가 되어 출렁거린다. 단단하게 비끄러맨 의식의 틈으로 그것들은 어느 순간 해일처럼 터져 나와 유선을 죽도록 외롭게, 죽도록 슬프게, 죽도록 부끄럽게 몰아붙인다. 유선은 가슴속에 담긴 그 날카로운 감저의 파편들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쉴 수조차 없다. 조금만 몸을 기울이면 그것들은 함부로 쏟아져 살을 베고 발등을 깨고 핏줄을 잘라놓을 것 같다.” “어두움, 차가움, 배반당한 정절, 만져지지 않는 존재감, 익숙했던 만큼 낯설어져 버린 남자, 지독하게 가려운 육체”와 더불어 고통 받으며, 유선은 “그가 선택한 열정의 윤리. 버림받은 혼인의 윤리”를 생각한다. “너무 많은 감정이, 쏟을 길 없는 상대를 향해 간헐천처럼 뜨겁게 예고 없이 솟아올랐다. 매번 소스라쳤고 매번 화상이었다.”

“피의 냄새와 잔혹함, 배신과 후회”가 있어도, “뭔가가 빠져 있는 그대로 그냥 사랑이라고 불러주는 거지”
그러면서 유선은 죽은 남편을 “My Bloody Valentine”, “나의 잔혹한 연인”으로 명명하기 시작한다. “사랑을 주지 않는 나의 냉혹한 연인”으로 말이다. “서로의 손목을 날카로운 면도칼로 긋고 너의 동맥 속에 내 피를 흘려 넣고 싶었던, 혀를 깨물어 흘러나오는 너의 피를 삼키고 싶던 블러디”, “너의 심장 자체를 원했던 블러디” 연인으로. 마지막으로 본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남편이 “피로 얼룩졌던 그 얼굴. 차갑게 식어버리긴 했지만, 손목을 그어도 더 이상 피를 흘려 넣을 수 없었지만, 그의 멈추어버린 심장 속에 내 뜨거운 피를 전부라도 흘려 넣어주고 싶은 블러디 밸런타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와 처음 사랑을 나누게 된 오래 전 그날, “전등사를 보지 못했던, 전등사에 갔던 날”을 떠올리며, “모든 것을 주고 싶은 자의 눈빛”으로 “넌 모르지?” “내가 얼마나 널 좋아하는지”를 말하던 그를 생각하는 “유선은 제 속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런 뜨거움과 차가움이 제각각의 온도를 유지한 채 엉겨있음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피투성이의 낯선 얼굴” “그 모든 것들이 검은 인화지 위에 판독할 수 없는 암호처럼 엉기어 있었다.”

남편의 숨은 연인에 대한 사유가 담긴 일기를 출판하지 않기로 결심한 유선은 중얼거린다. “널 위해서가 아니야. 당신은 내 속에서, 언제까지나, 마지막 보여주었던 그 모습처럼, 나의 피투성이 연인으로 남아 있어야 해. 지나고 보니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어떤 일도 견뎌내는 게 인간이더라. 뭘 못 견디겠어. (…) 당신은 언제까지 나를 물어뜯으며, 나의 연인으로 남아 있어야 해. 피투성이의 연인, 잔혹한 연인. 당신이 특별히 가혹한 사람이란 생각은 안 해. 모든 연인은 더 사랑하는 자에게 잔혹한 존재이니까.”

그녀가 찾은 진실은 사랑의 숨은 실체. 그것까지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의 고통스러운 자유. 유선은 “사랑이 아름답고 따스하고 투명한 어떤 것이라고는 이제 생각하지 않을래. 피의 냄새와 잔혹함, 배신과 후회가 없다면 그건 사이보그의 사랑이 아닐까 싶어. (…) 뭔가가 빠져 있는 그대로 그냥 사랑이라고 불러주는 거지”라는 하나의 통찰에 도달한다. 유선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한 남편, 그러나 이미 그 남편이 죽고 나서야 그 진실을 알게 되어 원망하거나 증오할 상대조차 가질 수 없는 자신의 고통을 그를 끝끝내 사랑하는 것으로 마감한다. 사랑의 잔혹함까지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피투성이 연인을 끝내 사랑하겠다고 말하면서. 어쩌면 사랑은 늘 “뭔가가 빠져 있는 그대로”일지도, 클림트의 그림에서처럼 황홀한 사랑의 환희는 그 이면에 숨겨진 잔혹함과 고통 따위는 잠시 가려버린 것에 지나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늘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사랑이라는 괴물에 대해 정미경의 통찰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 여기다. 피투성이이지만 연인일 수밖에 없는, 잔혹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연인에 대한 통찰. 사랑이라는 실체에 대한 고통스럽지?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실 말이다. 사랑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 광기는 순간의 진실에 기대어서만 황홀하고 잔혹하며 행복하고 고통스러운 것을.

소설의 중간에 사랑의 환희, 그 절정의 순간에 대한 사유가 구스타브 클림트의 이 그림과 함께 펼쳐진다. "황금빛 광채 속에서 목이 부러지도록 격렬하게 포옹하고 있는 두 남녀. 한없이 뜨거운 사랑의 느낌을 어쩌면 저토록 황홀한 색채로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일까. 황금조차 녹아 흐르게 만들어버리는 그 열정의 온도를." 그러면서 소설은 사랑이라는 광기를 이야기한다. 끝내, 피투성이의 잔혹한 내 연인에 대한 사랑도 사랑이라고 불러야만 하는 지점까지. 이 황홀한 색채 이면에 숨겨진 그 황홀함만큼이나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사랑까지도 끌어안는 지점까지.

입력시간 : 2005-05-1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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