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 분위기의 여름패션, 사실감 넘치는 싱그러운 자연을 입는다

[패션] 관능의 꽃무늬, 여름에 만개하다
감각적 분위기의 여름패션, 사실감 넘치는 싱그러운 자연을 입는다

꽃밭처럼 펼쳐진 원피스, 산뜻한 색이 조화된 줄무늬 셔츠, 싱그러운 과일이 한가득 담긴 듯한 가방, 이젠 슬리퍼에까지 무늬 천지다. 우아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던 명품 무늬들은 발랄한 색을 입고 만화 같은 캐릭터를 비싼 몸에 프린트했다. 장식의 시대에 들여다본 무늬열전.

우리의 생활공간과 일상용품에는 온갖 무늬가 가득하다. 벽지의 꽃무늬, 바닥의 나무 결 무늬, 침구의 줄무늬와 체크무늬. 옷에는 또 얼마나 많은 무늬들이 수 놓여 있는지. 과거로부터 무늬는 생활주변의 아름다움과 장식욕구를 위해 발달했다. 또 무늬는 고대에서 중세, 그리고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어 왔다.

이 장식을 위한 무늬는 고대의 수많은 벽화와 유물들 속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인간이 원초적으로 무늬를 창조하는 일에 능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입을 옷에 무늬를 새겨 넣는 일은 고대인들에게 필수적이었다. 사냥이나 풍작을 기원하는 표현으로 의류에 동물과 자연의 모습을 그려 넣었고, 부족간의 구별을 위해 서로 다른 무늬로 장식한 옷을 입었다. 5천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시대에 원단 장식이 쓰인 유물 발견을 시작으로 기원전 2500년 경 이집트 벽화에서는 상형문자를 무늬로 장식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처럼 의류의 무늬는 인류의 역사와 문명, 종교, 경제, 심리 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무늬는 기본적으로 점ㆍ선ㆍ면ㆍ색의 단순한 구성의 질서 있는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무늬는 독자적이지 못하다. 가구든, 침구든 의류든 매체가 있어야 자신의 역할을 해 낼 수 있다. 단순하고 주체적이지 못한 무늬는 부적과 같은 주술부호로 상징성을 내포하며 힘과 권력, 부유함을 표置歐竪?한다. 에트로, 에밀리오 푸치, 버버리, 루이비통처럼 고유한 무늬에서 출발하는 명품들은 그 무늬만으로도 이 시대 가장 큰 힘, ‘부유함’의 상징으로 통한다.

요즘 패션에 나타나는 무늬는 ‘멀티’하다. 꽃무늬와 체크무늬 등 여러 가지 무늬를 뒤섞어 ‘거지패션’을 만들기도 하고 경직된 연속무늬 위에 엉뚱하게 만화캐릭터를 얹기도 한다. 여러 가지 무늬에 나타난 의미와 특징은 무엇일까.

사랑스러운 여성들의 꽃무늬
꽃무늬는 가장 널리 애용되는 무늬로 우리에게 친근한 무늬다. 벽지와 소파, 커튼, 침구 등 인테리어의 기본이 되는 무늬가 꽃무늬다. 이제는 꽃무늬가 들어간 원피스와 치마, 블라우스, 셔츠 등 옷에도 꽃무늬가 만발하고 있다. 꽃무늬 프린트는 2~3년 전부터 강세를 보인 ‘사랑스러운’ 여성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져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특히 여성성을 강조하는 ‘페미니티 코드’의 강세로 아무래도 의류의 면적이 적어 ‘헐벗어야’ 하는 여름에는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살려 낸다.

화려한 꽃무늬 프린트 패션은 더운 날씨에 특히 애용된다. 여성 원피스의 경우 80% 정도가 꽃무늬로 출시되었다고 하는데 여성의류에 풀스커트와 원피스 등 면적이 넓은 의상이 많기 때문에 특히 꽃무늬와 같은 비연속무缺?활용이 많다.

노타이패션을 추구하고 있는 남성셔츠의 경우도 꽃무늬가 강세다. 남성복 매장에서는 꽃무늬 프린트와 자수가 새겨진 셔츠가 내걸려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으며, 화려한 꽃무늬 상품이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응용한 남성셔츠전문브랜드 ‘예작’의 셔츠는 품귀현상까지 보였다고 한다.

의류 뿐 아니라 소품과 장신구에도 꽃바람이 한창이다. 패션시계 스와치는 6종류의 꽃무늬 시계를 선보였고 캐주얼백 브랜드 레스포삭도 꽃무늬 핸드백을 출시했다. 시원한 왕골소재 가방도 유행인데 꽃무늬 장식하나 안 달리면 이상할 정도로 꽃무늬의 인기가 대단하다.

꽃무늬는 웰빙, 자연주의, 보헤미안룩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단순히 꽃만 가지고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잎, 줄기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다양한 식물무늬로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귀엽고 발랄한 사실주의 무늬
팝아트 스타일의 사실적인 과일 무늬도 자주 만나게 된다. 핸드백, 수영복, 원피스 등의 과일무늬가 눈을 즐겁게 한다. 보기만 해도 싱그럽고 상큼한 과일이 의류와 소품에 잔뜩 열렸다. 특히 레몬, 사과, 오렌지 등을 반쯤 잘라 놓은 듯한 프린트는 옷만이 아니라 핸드백, 구두 등에도 응용되고 있다.

과일 무늬의 선두주자는 단연 루이뷔통. 그래픽 디자이너인 무라카미 다카시는 루이비통의 ‘LV’로고 핸드백 위에 붉은색 체리를 그려 넣었다. 단번에 이 핸드백은 ‘잇백(it-bag)’리스트에 올랐다. 미쏘니는 과일무늬 비키니 수영복을, 벨기에 캐주얼가방브랜드 키플링은 키위, 바나나, 만다린 등 과일모양의 시리즈 가방을 선보여 히트를 쳤다.

이밖에 핸드백, 구두, 거울, 화장품 등 여성용품을 사실적으로 나열한다거나 책장을 사실적으로 프린트한 디자인도 인기다. 아동디자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만화캐릭터 들이 성인의복에 등장한 것도 사실화 무늬에 포함할 수 있다. 팝아트의 정신이 그렇듯 사실주의 무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즐겁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줄무늬
줄무늬는 가볍고 경쾌해 보이는 무늬다. 굵기와 간격, 색의 조합에 따라 여러 가지 인상을 연출할 수 있는 특징이 있는 것이 또 줄무늬다. 특히 남성들에게 사랑받는 줄무늬는 유난떨지 않는 세련미를 준다. 가느다란 세로 줄무늬는 날렵해 보이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신사복의 경우 짙은 바탕 위에 0.2~0.3㎜의 밝은 색 세로 줄무늬를 넣어 긴장감을 더한 정장을 연출하기도 한다.

사실 줄무늬는 중세이전까지 ‘악마의 무늬’로 불렸다. 대표적인 예가 죄수복. 줄무늬는 유럽의 중세 사회에서는 이단자, 배신자, 창녀, 어릿광대, 난쟁이들의 옷에만 사용되어 경멸과 수치를 상징했다. 줄무늬는 인간이 만든 무늬다. 자연에서는 줄무늬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줄무늬는 바탕과 무늬를 구별할 수가 없어 시각의 혼동을 주는 무늬로 줄무늬를 악마의 무늬로 규정지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줄무늬는 오랫동안 치부된 무늬였다. 오늘날 줄무늬는 건강과 즐거움, 역동성을 상징하고 있다. 줄무늬는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기호로 쓰여 마침내 프랑스 국기의 무늬로 채택됐고 낭만주의시대의 귀족들이 세로줄무늬를 택하면서 줄무늬가 세련되고 부유한 무늬로 인정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줄무늬는 젊음과 건강을 표현한다. 마린룩의 요소로 수영복, 가운, 파라솔, 비치볼 등에 사용되었고 오랫동안 어릿광대의 의복이었던 줄무늬는 ‘놀이??‘즐거움’을 주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국적인 풍경, 에스닉 무늬
이국적인 느낌을 살린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유행무늬 역시 지중해, 아프리카, 인도 등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무늬가 많이 사용되었다. 최근 유행하는 기하학 무늬는 원시성을 띠고 있다. 아프리카나 인도 등의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제는 계절을 타지 않고 유행하는 아이템이 된 동물패턴도 에스닉한 요소로 표현되고 있다. 사람들이 동물문양을 좋아하는 것은 꽃과 나무처럼 자연의 무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무늬는 인위적이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튈 수 있게 도와준다.

동물무늬는 나폴레옹의 지배자에 대한 과시용으로 애용하며 유행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초 나폴레옹이 북아프리카 원정에서 표범 가죽을 가져와 카페트를 깔면서부터 동물가죽 무늬가 유행했다고 전해진다. 동물 가죽은 초기에는 단지 깔개 등 장식에만 사용되었으나 20세기에는 여성들을 위한 값비싼 의복에 사용되면서 동물무늬가 의복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동물무늬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미다. 이전에는 야성의 인상을 주는 동물무늬로 호랑이와 표범 무늬를 사용하는데 그쳤지만 이제는 기린, 얼룩말 등 동물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무늬가 다채로워졌다.

정복의 의미로 야생의 자연을 옮겨다 놓았던 동물무늬는 귀족의 품위와 부유함을 상징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보다 경쾌하게 표현되고 있다. 색상도 기존 블랙&화이트, 블랙&브라운 등에서 벗어나 파스텔 톤으로 밝고 화사해졌다. 해마다 동물무늬의 유행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에서 기인한다.

예전이나 현재나 무늬의 시작은 언제나 자연이었다. 추상과 기하학적인 무늬도 그 시작은 자연이었다. 인류생활의 모든 형태, 모든 문양이 자연에서 기인되고 미의 원천도 자연형태에서 출연했다. 무늬는 근본적으로 ‘공백의 공포’를 벗어나려는 본능에서 출발해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며,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소원을 충족시켜 준다. 무늬에 집착하는 현대인.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회귀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6-30 15:44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