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깬 화려한 빅사이즈섹시노출 등 당당해진 옷입기

[패션] 삼순이, 뚱뚱女에 희망을 주다
고정관념 깬 화려한 빅사이즈
섹시노출 등 당당해진 옷입기


“삼순이가 너무 그리워”, “삼순이를 보면 내 외모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안 그래?”, “그러게 뱃살도 귀엽잖아.” 버스 뒷좌석에 앉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대화에 귀가 쫑긋해진다. 시청률 50%를 넘으며 인기리에 종영된 ‘내 이름은 김삼순’. 드라마는 끝났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아쉬움과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삼순이’가 남긴 이 시대의 새로운 여성상과 패션이야기.

‘내 이름은 김삼순’ 인기의 여파는 대단했다. 드라마 OST는 음반 판매량에서 10위권을 유지하고 있고 극중 삽입된 노래를 부른 가수들의 인기 또한 덩달아 높아졌다. 또 제과 제빵 업계 매출이 는 것과 함께 극중 삼순이의 직업인 ‘파티쉐’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삼순이가 좋아했던 책 ‘모모’는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삼순이 패션’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김삼순 스타일은 기존의 연예인 스타일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고 평범하면서도 편안하다. 그러면서도 디자인적인 요소는 놓치지 않았다. 옷장을 박스티만으로 채워야 했던 통통녀들에게 유행을 그저 동경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빅사이즈에도 스타일이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가릴 수 없다면 대담해져라
실제로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인터넷에서 유행의류를 판매하는 상인들에게 ‘같은 디자인으로 66, 77사이즈는 없느냐’는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44, 55사이즈를 보통의 젊은 여성의 신체사이즈라고 생각했던 패션업계의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었다.

통통한 몸매를 자신 있게 드러내는 삼순이의 영향으로 음지로 숨기만 했던 통통녀들의 자기주장이 당당해진 것이다. 헐렁하고 어두웠던 옷을 벗어버리고 화려한 꽃무늬에 섹시한 노출까지, 통통녀들의 패션이 대담해졌다. 더욱 화려하고 과감한 디자인으로 다양해지고 폭 넓어진 빅사이즈 의류. 틈새시장에 불과했던 빅사이즈 의류 시장이 이제 패션 시장의 중요한 품목으로 자리했다.

남성복을 빌려 입거나 맞춰 입어야 했던 통통녀들에게도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 경기 침체에 따른 재고를 줄이기 위해 표준 사이즈 외에 상품 라인을 없애거나 축소한 의류브랜드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여성 빅사이즈 의류, 얼마나 팔렸을까. 일찌감치 ‘빅사이즈’ 의류부문을 개설한 국내최대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옥션(www.auction.co.kr)의 경우 지난해 여름 한달 3만9,000여 벌이 팔렸던 여성 빅사이즈 의류가 올해 같은 기간동안에 무려 8만4,000여 벌이 팔렸다고 한다.

113%나 성장한 셈이다. 옥션에서는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일명 ‘삼순이가 입은’, ‘김삼순 스타일’의 의류와 패션 소품 40여 종을 판매했다. 이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었던 제품은 김삼순이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이미지 변신을 위해 입었던 더블버튼 조끼니트 카디건. 펑퍼짐하게만 보였던 김삼순이 입어서 예뻐졌다고 네티즌 사이에 화제가 됐던 옷가지였다.

또 삼순이의 통통한 엉덩이와 허벅지를 가려준 넉넉한 통의 마반바지와 통통녀들의 체형을 보완해주는 통 넓은 치마바지가 단번에 히트상품으로 등극했다. 큰 도트 무늬가 들어간 일명 ‘삼순이 티’와 화장하는 여자의 얼굴이 그려진 언밸런스 민소매 티셔츠 등 기본 옷가지는 1~2만 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어 ‘삼순이 패션’은 확실히 서민 패션으로 자리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스픈’이란 이름으로 여성 빅사이즈 의류를 판매하고 있는 김창경 씨는 “예전에는 헐렁한 박스티나 폭넓은 바지 등 심플한 디자인이 주를 이뤘지만, 일부 판매자가 여성스럽고 화려한 디자인의 빅사이즈 의류를 인터넷에 올려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빅사이즈 의류에 대한 잠재 구매력이 드러나게 됐다”며, “이제는 대다수 유행 아이템은 모두 빅사이즈 의류에도 반영되고 있고 오히려 구매자가 더욱 다양하고 파격적인 디자인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넷에 ‘빅사이즈’라는 단어 하나만 입력해도 무수한 사이트와 정보들이 페이지 한 가득 뜬다. 몇 개의 의류쇼핑몰을 둘러본 결과, 2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 즐겨 찾는 최신 유행 스타일을 그대로 빅사이즈에 적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옥션에서만도 캐주얼의류부터 정장, 속옷까지 77~100사이즈의 2,000여 종에 달하는 빅사이즈 여성의류가 판매되고 있다.

최신 유행 아이템부터 기본 스타일까지 다양한 코디법으로 통통족들의 개성을 돕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유행중인 보헤미안 룩, 레이어드 룩의 영향으로 헐렁하고 풍성하게 입는 까닭에 몸매의 약점을 가려 주면서도 패셔너블한 아이템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것이 올해 빅사이즈 의류의 추세다. 빅사이즈 부문에서는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로맨틱 룩이나 대담한 섹시룩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귀한 몸 칭송 받던 풍만한 여체
여체는 모계사회의 출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충만한 자연의 산물이었다. 예술작품을 보면 ‘출산드라의 축복’을 듬뿍 받은 여성상이 대부분이다. 여성을 대표하?‘비너스’를 보라. 허리와 엉덩이가 구분이 안가는 듬직한 곡선과 허벅지를 자랑하지 않는가.

왕족사회에서는 잘 먹어 흘러 넘치는 살을 가져야 부유하고 고귀한 몸으로 칭송받았다. 텔레비전도 영화관도 없던 시대에는 코르셋을 벗어 던진 무용수들의 축 쳐진 뱃살이 섹시한 여성의 상징이었다. 유행이 시작된 1900년대 동양적인 패션경향이 무르익었을 때에도 코르셋에서 해방된 풍만한 여체가 기본이었다.

쭉빵 몸매와 얼굴로 시대를 풍미하는 할리우드 스타들 가운데 통통녀로 패션아이콘이 된 여성들이 있다. 이 통통녀들은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찍혀 잡지와 인터넷에 떠다니며 패션잡지에서 제안하는 스타일보다 더 큰 유행을 만들었다. 현재 떠오르는 10대 스타,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을 통해 이름을 알린 린제이 로한도 통통함이 매력이었다.

자유분방한 겹쳐 입기의 일인자인 린제이 로한이 최근 다이어트로 살을 빼자 그녀의 팬들은 ‘예뻐졌다’고 칭찬하기보다 다시 살을 찌우라고 피켓을 들었다. 로한의 팬들은 ‘린제이에게 먹을 것을!’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로한이 다시 살을 불리도록 캠페인을 벌이며 이전의 통통한 귀여움으로 복귀하기를 애원하고 있다.

‘블랙사바스’의 보컬로 이름을 날렸던 오지 오스본의 외동딸 켈리 오스본의 등장은 엽기적인 뚱녀의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가수와 배우로 활동중인 그녀는 뚱뚱한 축에 속하는데 보란 듯이 일부러 딱 맞게 옷을 입어 삐져 나오는 살집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다닌다.

검은 머리, 검은색 손톱과 눈화장이 트레이드마크인 켈리 오스본은 마약복용과 독설, 엽기적인 옷차림 때문에 악의적으로 시작된 조롱 섞인 관심이 오히려 독특함으로 주목받은 경우다. 패션계에서 통통녀라 하면 이 여성을 대표로 든다. 182㎝에 70㎏이 넘는 풍만한 체격으로 모델계에서 주목받은 영국모델 ‘소피 달’은 이브 생 로랑과 베르사체의 모델로 활동했다.

특히 이브 생 로랑의 향수 ‘오피움’의 지면 광고에서 눈부신 나신으로 등장해 글래머모델로 주목 받았다. 지금은 ‘뚱보 모델 소피 달의 변천사’란 제목으로 그녀의 다이어트 전후 사진이 돌아다닐 정도로 날씬해졌지만.

할리우드 통통녀들은 패션리더 자리를 차지했지만 삼순이, 김선아는 패션리더가 되지는 못했다. 김선아는 패션과는 거리가 먼 식음료 CF에 등장한다. 삼순이는 다이어트와 촌스러운 이름의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보통 여성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반면 드라마 속에서 사랑을 다퉜던 희진역의 려원은 여배우들이 선망하는 의류브랜드(ab.f.z)와 화장품(뉴트로지나) 전속모델로 거액의 계약을 맺어 패션아이콘으로 등극했다. 뉴트로지나 측은 “소비자 설문조사 결과,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는 김삼순이었지만 여성들이 닮고 싶어 하는 인물은 희진이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외모 지상주의 왕국에 성형 공화국이 아니던가. ‘삼순이 현상’은 쭉빵 섹시 미녀나 긴 생머리에 가느다란 몸매의 청순가련형을 선망했던 오늘을 사는 삼순이들에게 새로운 여성상을 심어줬다.

비록 소원하는 외관은 ‘려원’이더라도, ‘김삼순’에 열광한 젊은 여성들이 더 이상 외모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녀들은 이제 일과 사랑, 삶을 직관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브리짓 존스 현상(Bridget Jones Phenomenon)’에 빗댈 수 있지 않을까.

노처녀 뚱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20㎏ 가까이 체중을 늘리고 다시 뺀 여배우 르네 젤위거를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 관객들은 폭주와 줄담배, 땅콩 잼을 숟가락으로 퍼먹는 일을 일삼는 브리짓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그리고 비록 바람둥이지만, 브리짓의 아줌마용 대형 팬티를 보면 흥분한다는 다니엘의 말에 짜릿함을 느꼈다. 우리가 삼순이의 ‘온도 조절이 가능한 삼단 베개’를 사랑해마지 않았던 것처럼.

여배우의 몸에 대한 고정관념의 벽은 높다. 그만큼 여성들이 지향하는 몸에 대한 고정관념의 벽 또한 높다. 삼순이역의 김선아는 종영 기자회견장에서 “삼순이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명대사 ‘그대로의 당신이 좋아(I like you just as you are)’를 기억하는지. 여성들이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자신감을 갖자. 비록 현재의 ‘패션’에 맞춤되지 않더라도.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8-11 20:42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