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가깝게, 자연속으로…미니멀리즘이 패션을 리드한다

2006년 봄여름을 겨냥한 한국패션축제가 열렸다. 11월16일부터 열흘간 열린 서울컬렉션. 서울특별시와 산업자원부의 지원 아래 한국패션협회와 서울패션디자인센터, 그리고 서울패션아티스트협회(SFAA), 한국패션디자이너협회(KFDA), 뉴웨이브인서울(NWS) 디자이너 그룹 주관으로 진행된 이 행사는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및 신진디자이너와 내셔널 브랜드 등의 참여 속에 성황리에 개최됐다.

디자이너 및 내셔널 브랜드 총 52개 업체의 참여로 진행된 컬렉션은 KFDA 그룹을 시작으로 김종월, 안윤정, 조명례, 이영선, 강기옥 외에 회를 거듭할수록 성숙된 컬렉션 라인을 선보이고 있는 이진윤 컬렉션이 소개됐다.

또 개별 활동 디자이너인 강희숙, 박종철, 변지유, 송지오, 임선옥, 지춘희와 미치코코시노의 세번째 서울컬렉션 무대가 마련됐으며, 파리 뉴욕 등에서 활발한 해외 비즈니스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영희, 임현희, 홍은주와 지난 계절 데뷔 무대를 통해 좋은 평가를 받은 서은길, 차세대 대표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는 앤디앤뎁(김석원/윤원정), 곽현주 컬렉션이 펼쳐졌다.

젊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NWS는 정욱준, 조성경, 김서룡, 최재영, 서승희, 홍승완, 양성숙을 중심으로 오랜만에 컬렉션 무대에 복귀한 박춘무, 두 번째 무대를 펼친 신인 최재영, 이은정의 참여도 이어졌다.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 SFAA그룹은 박윤수, 이상봉, 설윤형, 신장경, 김동순, 장광효, 박항치, 최연옥 컬렉션과 2세 디자이너 송자인, 노승은과 신예 디자이너 김규식, 김형철이 참여했고 SFAA 컨테스트 수상자들, 최유주, 손성근, 이혜승, 김민지, 송혜명, 김덕형 신인들의 뜨거운 무대도 흥미로웠다.

이번 컬렉션의 특이할 만한 사항은 남성복 ‘본(BON)’과 스포츠브랜드 ‘르 꼬끄 스포티브(LE COQ SPORTIF)’ 등 국내 패션브랜드들의 참여다.

불륨화된 패션브랜드의 컬렉션 데뷔로 대중의 관심과 대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새로운 계기로 평가됐다. 특히 ‘르 꼬끄 스포티브(LE COQ SPORTIF)’는 전 세계 패션계에 불고 있는 ‘디자이너 by’ 바람을 증명하듯 홍승완, 오자화, 토모히로 스즈키가 새롭게 디자인한 스포츠감성 캐주얼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대자연속 미니멀리즘’이 유행경향

이상봉, 이영희, 이진윤, 임현희, 지춘희 (왼쪽부터)







이번 컬렉션의 경향으로는 ‘자연’이었다. 내년 봄여름 유행할 ‘미니멀리즘’의 경향 속에서 눈길을 끄는 장식으로 자연모티브가 활용됐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절제된 미니멀리즘으로 표현하되 컬러나 프린트, 액세서리 등은 1960년대와 1980년대에서 영감을 받아 평화롭고 로맨틱하게 연출됐다.

새와 물고기, 활짝 핀 꽃과 싱그러운 초록 식물 등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연의 모티프를 무대 위로 가져왔다. 디자이너 노승은은 무대 중앙의 연못 속에 작은 물고기들을 풀어놓고, 천장에는 알록달록한 새가 있는 새장을 달아 평화로운 정원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으며, 디자이너 박윤수는 바다 배경과 큼직한 잎사귀, 나무 바닥 등으로 컬렉션 테마인 카리브해변의 모습을 재현했다.

니트 디자인으로 유명한 임현희는 모델의 풍성한 머리에 새 장식을 꽂았고, 앤디앤뎁은 의상에 물고기 모양을 프린트하고 낚시 줄에 거는 찌로 브로치를 만들어 독특한 액세서리를 제안했다.

지춘희는 도마뱀 모양의 브로치를 재킷 뒤에 달아 옷 위로 도마뱀이 기어가는 듯한 효과를 주었다. 무대 중앙과 관객의 의자 위에 장미꽃을 뿌려놓은 이상봉은 동양적인 이미지의 꽃무늬를 제안했고, 남성복 디자이너 손성근은 꽃 모양 코사주를 VIP고객들에게 기념 선물로 나눠줬다.

남성들이여 근육을 키워라

강희숙, 김서룡, 노승은, 르꼬꼬, 박춘무, 설윤형(왼쪽부터)







얼마 전까지 여성 모델 못지않게 깡마른 가녀린 몸매의 남성 모델들이 컬렉션 무대에 등장해 신선한 충격을 줬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잘 발달된 어깨 근육과 탄탄한 복근을 자랑하는 남성 모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일부 연예인에서 시작된 몸짱 열풍이 패션계에도 불고 있는 것. 다양한 이미지의 옷을 소화해야 하는 모델이기에 미스터코리아처럼 울퉁불퉁한 근육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늘씬한 체구에 어울리는 매끈한 바디 라인을 갖춘 모델들이 증가했다.

송지오, 장광효, 정욱준 등 남성복을 전개하는 디자이너들이 내년 봄여름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강렬한 카리스마가 저변에 깔려있는 패션을 선보였고, 이에 걸맞게 근육질의 모델들이 검게 그을린 피부와 터프한 표정의 얼굴로 무대에 올랐다.

특히 스타일리시한 패션 감각과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로 최근 10~20대 젊은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 배정남과 핸드폰 CF에서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했던 김성현, 마른 편이지만 탄탄한 몸매의 강걸 등 몸짱 모델들은 여성 관객들의 황홀한(?)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서울 컬렉션? 연예인 컬렉션!

송지오, 신장경, 이은정, 임선옥, 조성경, 홍은주(왼쪽부터)







패션디자이너와 연예인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최신 유행 스타일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연예인에게 패션의 유행을 선도하는 디자이너는 훌륭한 스승이고, 디자이너 역시 연예인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입히는 것 자체가 훌륭한 홍보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연예인들은 컬렉션마다 디자이너와의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며 모델로 서거나 특별 초청손님으로 자리한다.

그러나 컬렉션 행사장에서 벌어지는 지나친 연예인 취재 경쟁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연예인이 행사장 안으로 입장하면 그 뒤로 무수히 많은 기자들이 따라와 사진을 찍기 위해 무대 위에 올라가거나 오랜 취재로 통로를 막아 관객의 입장을 지연시키는 등 행사 진행에 차질을 입힌다.

쇼가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 모델들이 옷을 다 갈아입기도 전에 백 스테이지로 불쑥 들어가고, 컬렉션 후 디자이너에게 던지는 질문은 쇼에 관한 내용이 아닌 연예인과의 친분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조성경컬렉션의 이태란, 조성경컬렉션의 남궁민, 노승은컬렉션의 김소연, 박윤수 컬렉션의 바다 (왼쪽부터)









그러다가 연예인의 퇴장으로 취재가 끝나면 패션쇼는 안중에 없는 듯 순식간에 행사장을 빠져나간다. 사람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뒤에선 디자이너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디자이너들은 컬렉션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6개월 아니 1~2년을 넘게 준비한 그들의 무대는 최대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 컬렉션에서는 과열된 취재 경쟁으로 무대가 짓밟히고 무대 설치가 망가지는 일(무대 중앙을 아름다운 연못으로 꾸민 디자이너 노승은 쇼 직전, 급히 연예인을 따라가던 사진기자가 그 위로 넘어져 화분 몇 개가 넘어지고 얌전히 쇼를 기다리고 있던 물고기가 사망)이 일어났다.

연예인의 등장은 많은 이들에게 큰 이슈거리이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은 분명 기자들의 몫이다. 그런데 좁은 공간에서 밀고 당기는 그들의 취재 현장을 보고 있으면 누구 하나 다치지는 않을지 안전사고의 우려가 커진다.

연예인 취재가 목적인 기자들을 위해 컬렉션 행사장 입구에 포토라인을 설치하는 것은 어떨까. 무조건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안전 요원의 저지보다 더 설득력이 있을 듯하다.

패션쇼가 펼쳐지는 행사장 안에서는 오로지 디자이너와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