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와 실속의 합리적 선택로맨티시즘 화려하게 꽃피다

올 한해 전체 의류시장(신발, 가방 등 패션잡화 제외) 규모는 약 19조3,600억원. 여전히 외환위기 이전 시장규모를 회복하진 못했지만 10% 안쪽의 성장세를 보였다.

불황 속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이 선택한 패션은 무엇이었을까. 삼성디자인넷이 발표한 ‘리뷰2005’ 리포트를 중심으로 지난 한해 패션시장을 돌아본다.

■로맨티즘의 절정, 과도한 디테일과 화려한 장식

상반기 로맨틱 에스닉(Romantic Ethnic) 패션 유행경향에 이어 하반기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빅토리안 룩(Victorian Look)에 이르기까지 로맨티시즘이 절정을 이뤘다.

풍부한 볼륨 실루엣과 로맨틱 장식, 컬러풀한 색감의 풀 스커트와 볼레로가 크게 유행했다. 또 조끼, 모자, 가방 등 장식적인 패션아이템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색깔에 있어서도 로맨티시즘의 영향으로 파스텔, 비비드한 밝고 경쾌한 색의 인기가 정점에 달했으나, 하반기 이후로는 검정을 중심으로 갈색, 녹색, 보라색 등이 어두운 톤으로 부각됐다.

위버섹슈얼의 대표주자, 다니엘 헤니 (왼쪽), 디자이너와 스포츠랜드의 협업. 아디다스 by 스텔라 맥카트니









국내 최대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옥션(www.auction.co.kr)이 올 한해 주요 제품의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패션상품으로 카고팬츠, 티어드스커트, 수공예 액세서리, 퍼트리밍코트, 어그/털부츠가 히트상품 20위권에 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발 빠른 패션경향 반영으로 인터넷이 주요 패션소비 채널로 떠오르면서 ‘자연주의’ 와 ‘보헤미안 룩’, ‘러시안 룩’ 등의 패션 키워드를 반영하는 제품들이 인기상품 목록에 올랐다.

자유로운 보헤미안 스타일의 ‘티어드 스커트’는 올 봄ㆍ여름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보헤미안 룩과 잘 어울리는 나무나 플라스틱 등의 가벼운 소재 아프리카 또는 인디언 스타일의 ‘수공예 주얼리’는 한해 내내 인기를 얻었다.

가을ㆍ겨울 들어서는 벨벳, 퍼 등 따뜻해 보이는 소재를 활용하는 ‘러시안 무드’의 영향으로 벨벳 재킷과 모피를 부분적으로 활용한 ‘퍼 트리밍(fur trimming) 코트’, 그리고 ‘어그/털 부츠’가 인기를 끌었다.

■남자들의 감성, 메트로섹슈얼에서 위버섹슈얼까지

상반기 남성들의 셔츠를 핑크빛으로 물들인 메트로섹슈얼 열풍은 대한민국 남성들이 감성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남성용 화장품과 남성복 브랜드들의 장신구가 강화됐고, 아예 남성용 액세서리 전용 브랜드가 생겨나는 등 멋 부리는 남성을 위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러시안룩의 유행은 털모자와 털모트, 부츠, 밀리터리의 유행을 가져왔다. 탱거스 (왼쪽), 3040장년층을 위한 패션브랜드의 인기도 높았다. 올리비아로렌









하반기 들어서는 맹위를 떨치던 메트로섹슈얼 대신 ‘위버섹슈얼’이 업계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위버섹슈얼족은 강인하고 자신감에 차있으며 스타일리시한, 긍정적인 남성성과 신사적인 매너가 결합된 남성상을 말한다.

일부러 스타일을 꾸미지 않아도 스타일이 살아 있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터프함과 함께 자상함, 풍부한 문화적 감성까지 갖추고 있다.

패션에서 위버섹슈얼은 메트로섹슈얼에 비해 장식이 줄어들고 기능성과 편안함을 추구하며 꾸미지 않은 듯 은근히 멋이 배어나는 자연스러움 등으로 내추럴리즘이 남성복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명인(Celebrity) 전성시대

상반기 영화배우 커스틴 던스트를 시작으로 기네스 팰트로, 드류 배리모어, 제시카 알바와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국내 패션광고에 대거 등장했다.

그들은 이제 먼 하늘의 ‘별’이 아니었다.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 수많은 인터넷상점을 통해 그들의 이미지가 빠르게 전파되면서, 이들의 스타일이 국내 패션 트렌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파파라치들에 의해 소개된 그들의 일상적인 옷차림, 볼레로, 풀스커트, 밀집가방(Straw Bag), 원석과 스팽글을 활용한 액세서리들은 곧바로 국내 거리패션을 휩쓸었다.

인터넷 시장의 활성화로 저가 복제품이 수없이 양산됐고, 해외 구매대행 사이트가 증가하면서 해외 TV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스타일은 곧바로 국내 소비자들의 ‘머스트 해브(must-have)’ 아이템이 됐다.

빠르게 진화하는 제 3의 유통, 무점포 상점 또한 유명 연예인들과 손잡고 유명세를 함께 누렸다. 유명인 모델을 앞세운 G마켓, 유명인 스타일 파파라치를 구성한 ‘CJ몰’, 연예인과 디자이너들의 홈쇼핑, 인터넷몰 브랜드 런칭 등이 대표적 사례다.

유명인 브랜드 런칭은 비단 국내 연예인들에만 해당되는 현상은 아니지만 국내의 경우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패스트패션 글로벌브랜드의 아시아 진출이 잦아졌다. 유니클로(왼쪽), 2005년은 유명인패션의 절정기였다. 서어스데이아이슬랜드의 모델 커스틴 던스트









이는 케이블 TV를 통한 단기간 홍보효과와 무점포의 안전성이라는 매체 특성에 기인한다.

이혜영의 패션 브랜드 ‘미싱도로시’, 변정수의 여성 캐주얼 브랜드 ‘엘라호야’와 황신혜의 속옷 브랜드 ‘엘리프리’, 김흥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필리오’, 구준엽의 캐주얼 브랜드 ‘G-LIMT’ 등이 대표적이다.

■타 업종과의 경쟁과 협업, 패션시장 벽을 깨다

패션은 이제 단순히 ‘옷’이 아니다. 옷과 옷 사이의 구분이 사라졌고, 더불어 타 업종과의 경쟁에도 뛰어들어야 했다.

다양한 산업군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차별화 방안으로 선택된 ‘디자인 지향’이 이제는 패션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첨단 기술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은 이제 패션 제품 외에 다양한 첨단기기들을 소지하게 됐다. 다수가 소유하게 된 이 첨단 기기 들은 보다 업그레이드 된 기능 외에도 패션과 디자인까지 강조한 ‘명품’ 옷을 해 입었다.

수많은 패션브랜드와 이종업계에서 케이스 만들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애플의 ‘i-pod’가 단순한 mp3플레이어가 아닌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처럼 말이다.

경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은 패션디자이너와의 협동작업(Collaboration)이 모든 업종에서 화제거리였다.

‘아디다스 by 스텔라 맥카트니’ 등 ‘디자이너 by’의 다양해진 협업은 브랜드 차별화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패션업계 간의 협업 뿐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삼성, LG전자의 휴대폰 외에 공동 제품생산, 공동 브랜드 런칭, 공동 프로모션, 공동 이벤트 등 다양한 형태로 선보였다.

패션디자이너와의 협업은 그 화제성으로 뛰어난 홍보 효과를 누린다. 또한 브랜드 컨셉과 일관된 파트너를 선정했을 경우, 그 시너지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외국의 경우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헤롯 백화점의 푸드 파트와 함께 제품 패키징에 참여, 식품 영역의 패션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유명인들은 모델에 그치지 않고 사업가로 패션의 유행을 선도했다. 엘라호야를 런칭한 모델 변정수(왼쪽), 2005년 가장 유행한 색상은 블랙. 구호









■가치표방 저가시장(Quality Price Market)의 확산

초저가 화장품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패션시장에도 가격은 낮은 그러나 품질과 가치는 높은 ‘가치 표방(Quality) 저가(Price) 브랜드’가 등장했다.

지난해 여성복과 캐주얼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이 경향은 올해는 모든 복종으로 확장됐다.

특히 2005년 신규 브랜드의 상당수가 30~40대를 타깃으로 한 Q/P에 집중되었다. 올 하반기 신규 런칭한 여성복 ‘지센’, ‘올리비아 로렌’, 남성복 ‘제스퍼’, ‘프라이언’, ‘기라로쉬’, 아웃도어 ‘센터폴’, ‘네파’ 등은 주로 할인점과 거리패션상점을 중심 유통점으로 30~40대 장년층이 주대상이었다.

Q/P의 확산은 의류 브랜드뿐 아니라 가방, 구두 등 잡화업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초저가 잡화 브랜드 ‘비아니’에 이어, ‘영에이지’는 모든 구두의 가격을 10만원대 이하로 낮추었고, 초저가 화장품 신화의 주역 ‘미샤’는 1만~2만원대의 캐주얼 백 ‘엘트리’를 선보였다.

에스닉을 대표했던 대륙은 아프리카. 엘룩(왼쪽), 로맨티시즘의 영향으로 과도한 장식과 장신구가 유행했다. 에고이스트









이 같은 가치중심 저가 브랜드들의 등장이 반가운 것은 4050세대.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던 장년층이 실용적인 캐주얼에 눈을 돌렸다.

전체 시장 중 33%를 점유하고 있는 캐주얼 시장에서 장년층, 특히 40~50대층의 경제력과 높아진 패션 의식이 패션시장 활성화에 한몫을 했다.

해외에서도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일본의 단카이 세대로 대변되는 중년 여성들이 이미 각 산업을 변화시킬 만큼 강력한 소비 주체로 떠오른 바 있다.

지난 한해 길었던 내수 침체 속에 소비자들은 적은 돈으로 좋은 상품을 구매하고자 까다로운 눈을 갖게 됐다.

합리적인, 실리 위주의 쇼핑을 위한 선택의 폭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높아진 기대수준을 만족시켜야 하는 패션 업계의 2006년은 변화에 대한 유연한 전략적 사고가 요구되는 중요한 해가 될 전망이다.

자료제공 ; 삼성디자인넷(www.samsungdesign.net)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