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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경계 허문 패션, 다양성이다
남녀 구분 없어진 트렌드, 정체성 뛰어넘은 개성

여성복은 리본과 주름, 하트무늬까지 온통 ‘사랑스러운’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성정장의 턱시도 모양을 본뜬 턱시도재킷과 군복에서 응용한 재킷 등 남성적인 요소가 함께 유행하기도 했다.

남성복은 또 어떠한가. ‘꽃’자를 붙여가며 ‘예쁜’ 남성들을 추켜세우더니 이제는 또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젠틀맨을 찾고 있지 않은가. 여성성과 남성성, 성을 파괴하고 넘나드는 패션을 이야기한다.

불필요해진 성의 구분



부드러운 느낌의 남성복. 김서룡, 남성복의 턱시도를 응용한 여성복. 노승은 (왼쪽부터)
























여성스러운 로맨티시즘이 유행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여성성이 짙은 경향의 의복이 썩 달갑지 않다. 어찌 보면 작은 체구를 극복해 보려는 요량에서인지 여성스러운 옷가지보다 남성적인 옷차림을 더 선호한다.

아니 남자 옷을 좋아한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는 아버지의 타이를 탐냈고, 사이즈가 비슷한 남동생의 옷을 몰래 훔쳐 입기도 했다. 가죽점퍼와 버버리 코트, 군화 같은 남성적인 옷가지와 장신구를 갖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남동생이나 누나의 옷을 탐하고, 용기내서 입고 나가지는 못해도 홀로 패션쇼를 벌인 일 말이다.

의복은 크게 남성복과 여성복으로 나뉜다. 학창시절 가사교과목에서 가장 헷갈렸던 것은 남성은 왼쪽 여밈, 여성은 오른쪽 여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자옷과 여자옷의 경계가 모호하고 심지어 똑같은 옷을 함께 입는 유니섹스 캐주얼 시대에 남성과 여성의 특성으로 나뉘는 학습이 필요했겠는가.

사실, 좌임과 우임으로 구분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 단지 남성과 여성을 나누고자 한 것이었다.

남자다운 옷과 여자다운 옷으로 구분하는 버릇은 무엇이든 위아래, 좌우, 둘로 나눠 보려는 인간의 성향 때문이다.



여성의 색인 '핑크'가 남성복에 등장했다. 헨리코튼

외형상 가장 구분이 뚜렷한 남자와 여자를 나누고 이 외형상의 차이를 더욱 도드라지게 보이기 위해 남성복과 여성복을 나누게 된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가슴과 허리, 둔부의 차이점 외에도 목의 형태가 다르다. 가장 남성다운 옷, 군복이나 남성셔츠를 보면 목 위쪽으로 높이 여미는 특성이 있다.

이는 짧고 굵은 목을 조여서 가슴을 더 넓어보이게 만든다. 여성은 반대로 긴 목을 더욱 길게 보이도록 가슴이 많이 파인 옷을 선호한다.

산업사회 이전에 농업과 목축이 주된 사회에서 여성은 둥글고 넓은 치마를 입었다. 이는 출산과 양육이 중시되는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성이 무엇보다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어떠한가. 미니스커트와 청바지는 여성의 엉덩이를 최대한 작아보이게 만들었다. 더 이상 성의 구분은 불필요한 사항이 되어가고 있다.

패션에서 남성과 여성의 법칙이 깨진 것은 1920년대. 코르셋으로부터 해방된 여성들은 타이를 매고 스모킹슈트(흑백으로 갖춰 입는 슈트)를 입었다.

여기다 신사코트에 맞춰 쓰는 딱딱한 중절모까지 갖췄다. 머리모양도 짧게 잘라서 매끈하게 빗어 내린 ‘보브스타일’이 무용수, 모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뒷모습만으로는 그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여성들은 남성복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20년대 ‘가르손(소년을 뜻하는 불어)’ 패션은 남성들과 함께 완전한 평등을 바라는 여성들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평등을 추구한 여성들의 옷입기

패션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오르는 50년대 H라인을 선보인다. 전쟁이후 잘록한 허리의 극히 여성스러운 ‘디올룩’을 발표해 유명세를 받기 시작한 그가 선보인 H라인은 디올룩과는 반대로 ‘가슴도 엉덩이도 없는 여성복’, ‘대패로 민 가슴’이라는 등 비난을 받았다.



20~30년대 남성적인 여주인공. 남성복을 입고 강력한 성적 매력을 풍겼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19세기말의 회화 (왼쪽부터)





















50년대 후반에는 ‘불량소녀’들이 남자애들처럼 가죽옷을 입기 시작했다. 60년대 들어서는 청바지가 평상복이 되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소녀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며 청바지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어떻게 남자들과 똑같은 옷을 입느냐는 이유에서였다.

60년대 비키니수영복이 유행할 때는 여성들도 남성처럼 팬티수영복만 입자며 상의를 빼버린 토플리스 수영복이 등장해 충격을 주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유방의 노출을 ‘퇴폐와 쾌락의 상징’이라며 반대에 나섰고 로마 교황청도 앞장서서 비난했다. 이와 함께 페미니스트들은 브래지어를 불사르며 여성해방을 외쳤다.

다시 여성복이 남성복의 특성을 받아들인 것은 80년대였다. 본격적인 사회진출과 평등권을 확보한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남성들과 동등한 자리에 서고자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입었다.

어깨에 패드가 들어가 어깨가 과장되게 넓어보였다. 10년 이상 계속된 맥시룩은 많은 여성들에게 성적인 상대가 아닌 남성과 동등한 ‘이상적인 민주화’ 관계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양성적인 패션, 앤드로진룩. 멋을 아는 남성, 댄디룩. 본. 꽃미남전성시대를 구가한 '메트로섹슈얼' 패션, 크리스찬 라크로와. 군복의 유행도 남성성을 받아들인 여성복의 특징이다, 주크. 영국풍의 신사복처럼 보이는 여성복, 쿠아. 여성복의 다양한 착장법을 응용한 남성복, 제스퍼, 본. 남성의 여성화에 이어 여성적인 감성을 지닌 남성상이 뜨고 있다. 소년처럼 보이는 가르손 패션.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사라진 캐쥬얼. 클라이드. (왼쪽윗부터)











































신사복에서 여성성의 등장은 1965년경 비틀즈가 등장하면서 시작된 ‘모즈룩’이 대표적이다. 무대 복처럼 화려한 색상과 몸매를 강조하는 타이트한 양복이 특징이었다.

이러한 젊은 남성의 옷차림에 대해 영국신문은 “남성들은 더 젊어 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이고자 한다”고 평했다. 이 당시 남성들이 외모 가꾸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느냐 하면 남성용 화장품이 증가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화장품회사에서 남성용 화장품을 출시했고 유명패션브랜드에서는 남성용 향수를 개발했다. 80년대 들어서는 ‘아메리칸 지골로’의 리차드 기어처럼 남성도 유혹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감수성과 성적인 매력을 외모로 꾸몄다.

1985년경에는 남성화, 여성화가 아닌 공통성을 갖는 존재로 함께 입을 수 있는 옷이 등장했다. 양성패션이었다.

신화와 철학에서 유래된 ‘앤드로진(양성인간)’은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긍정과 부정, 힘과 연약함을 동시에 가진 인간상이었다.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 데이비드 보위, 보이 조지, 마이클 잭슨이 여성해방에 대한 남성들의 반항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



남성의 여성화에 이어 여성적인 감성을 지닌 남성상이 뜨고 있다. 소년처럼 보이는 가르손 패션.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사라진 캐쥬얼, 클라이드. (왼쪽부터)
















요즘 거리에서는 여성들보다 더 멋 부린 남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발목까지 오는 모피코트, 화려한 셔츠, 스카프, 장신구 등 치마만 안 둘렀다 뿐이지 그들은 너무 예쁘장하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수놈이 더 아름답다. 짝을 유혹하기 위해 온갖 장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남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본래의 몫이다.

남성의 여성화는 어찌 보면 힘의 배분이 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치, 경제, 사회의 실권을 쥐고 있던 남성성이 무너졌다.

과거 남성의 여성화나 여성의 남성화는 반항의 표시나 소망하는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지만 현재는 생존의 한 방법이다.

얼마 전 금융계 고위간부를 만나 인터뷰 한 일이 있었다. 그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으로 ‘여성화’를 들었다.

이는 단순히 여성적인 성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누르는 지배적이고 획일적인 사회의 틀을 벗어나 이제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남을 배려하는 여성적인 면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감성’을 갖춰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원화시대다. 세계가 하나의 지붕아래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남성성과 여성성도 각각의 개성을 인정하고 설사 모호한 성정체성을 추구하더라도 곁눈질 말아야 한다.

최근의 양성화는 80년대의 양성화 ‘앤드로진’과는 다르다. 남성과 여성의 장점을 추구한다. 진정한 평등은 이제부터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eramwiz.com


입력시간 : 2006-01-1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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