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한복으로 대중화 모색

한복은 혼례식 등에 맞춰 입는 예절복이 됐다. 이제는 명절에 찾아 입는 일조차 드물다.

한복의 생활화에 대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복은 일상복이라기보다는 전통과 관련된 사람들이나 개성 강한 사람들의 전유물로만 남아있다.

한복의 일상화는 요원할까. 설을 맞아 한복이 걸어온 길과 대중화 문제에 대해 되짚어 본다.

1년에 한 번, 한복을 꺼내 입게 되는 설 명절이다. 사실, 명절 때마다 한복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필자는 근간에 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어본 기억이 없다.

지난해 한복의 패션화와 대중화에 대해 강연하기 위해 진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복협회의 초청이니 복장에 신경쓸 요량으로 생활한복을 구입하기 위해 쇼핑에 나섰다.

한복을 세계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작품. 2005년, 고려청자의 선과 색을 재현한 최경자作 청자, 1959년, 색동과 노리개를 응용한 패션, 한복을 개량한 디자인의 이브닝 드레스, 1963년 (왼쪽부터)








생활한복 전문점이 모여 있는 인사동 거리를 종일 돌아다녔지만 선뜻 사 입고 싶은 한복은 없었다. 너무 유별나게 전통을 재현해서 고리타분해 보이기도 하고, 주 고객층의 연령을 의식한 때문인지 제대로 된 ‘핏(fit)’이 나오지 않았다.

천연염색이 대부분이라 색도 우중충했다. 결국 양장을 하고 강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살구색 모시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온 특별 초청 강연자 국악인 오정해가 “국악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복이 정말 편하고 예뻐서 입는다”는 말과 함께 진도아리랑으로 청중을 휘어잡는 모습을 보면서 한복을 새롭게 생각했다.

한복은 우리 민족의 의식구조와 정서, 기후에 맞게 정착된 고유 옷이다. 우리나라의 기본 복식구조는 고조선 이래 외세의 잦은 침략을 받은 탓에 다른 나라복식 문화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지만 그래도 큰 줄기는 변하지 않았다.

외래 복식 문화는 우리 복식에 세부적인 변화만을 가져왔을 뿐 고유 구조를 바꾸지는 못한 셈이다.

우리 민족 복식 문화의 뿌리는 중국적인 면보다는 오히려 서구적인 형태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삼국시대 복식에서 입증되듯 하의의 기본형은 바지다.

이는 중국 복식의 기본형이 상의하상(상의는 저고리, 하의는 치마)인 것과는 다르다. 이러한 상의하고(상의는 저고리, 하의는 바지)의 상하 분리형 양식은 북방 기마 유목민의 복식으로서 추위와 유목 생활에 적합하도록 소매와 바짓가랑이가 좁고 몸을 감싸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복식 형태는 삼국시대 말기에 이르러 중국 양식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변화를 겪는다. 또한 조선시대 말기에 개항과 함께 유입된 서양복식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복식은 기본구조에는 변함이 없으나 주변상황과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쳐 왔다. 하지만 중국 양식은 왕실과 귀족층 일부의 관복과 예복에만 국한되었고 서민들은 일상생활에서 우리 고유의 옷을 계속 입었다.

외래 복식과 고유 복식의 혼용이라는 독특한 이중구조를 낳았다. 이러한 이중구조 현상은 우리나라 복식 구성의 큰 특징이다.

상류층은 외래 복식의 영향을 받아들였지만 서민층은 우리 고유의 전통을 끈질기게 이어온 것이다. 특히 저고리와 바지, 치마 두루마기로 대표되는 서민의 기본 복식은 민족역사가 형성된 이래로 지금까지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나라 복식의 기본 형태는 저고리, 바지, 치마, 포이다. 옷의 특징은 평면에 상하 분리형이며 이는 각기 머리에 쓰고 몸에 입고 발에 신는 삼분 구조형을 이루고 있다.

복식 구조와 입는 형태는 우리의 옷이 경제성, 합리성, 과학성을 갖추고 있음을 입증한다. 이러한 의복 구조는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 잘 적응하며 북방의 유목민계 특징도 결합돼 방한과 활동성 모두에 적합하다.

한복은 또 선과 색이 아름다운 옷이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지만 대부분 완만한 곡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색은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한 오방색, 청․적․황․백․흑색이 기본인데 원시의상에서 볼 수 있는 강렬한 색이 아닌 천연염료를 사용한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색을 추구했다.

모시를 소재로한 디자인, 전태욱 作, 대나무로 만든 코르셋과 연꽃무늬가 동양적이다. 이상복作, 데님을 맞춤복화하고 한국적인 자수를 더한 강기옥, 2004년, 한복의 서민적인 소박함을 에스닉하게 풀어내는 홍은주의 작품.(왼쪽부터)








바느질에 있어서는 누빔 기법과 깨끼바느질이 대표적이다. 누빔은 평면적인 옷감에 부피감과 입체감을 주고 무늬를 새겨 넣어 절제된 미를 표현했다.

세 번 바느질해야 하는 깨끼바느질은 투명한 소재를 겹쳐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효과를 내고 얇은 소재를 튼튼하게 박는 정성어린 손바느질이었다.

이밖에 조각천을 이어 붙인 패치워크 기법과 궁중복과 예복에 사용된 화려한 자수도 한복의 미를 한층 높였다.

우리나라가 현대적인 서양옷을 입은 것은 조선시대 말기 고종황제 때 내려진 단발령(1894년)이 기점이다. 이미 1884년 관복을 간소화한 바 있지만 문무백관의 양복차림과 고종황제의 군복차림은 당시에 획기적인 변화였다.

1900~10년대는 이 같은 서양의복의 영향으로 치마길이가 짧아졌다. 짧은 통치마와 개량 한복이 등장했고 50년대 한국전쟁 이후에는 양장을 입는 사람이 늘어 한복과 양장이 공존하게 됐다.

55년 창간한 여성잡지 ‘여원’은 세계의 유행패션과 국내 패션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실었는데 이 시기에는 한복 위에 걸칠 수 있는 넓은 소매와 A라인 형태의 외투가 많았다.

양장과 한복의 아이템이 융화되는 시기였다. 60년대는 양장과 한복의 장점을 따서 서로 실용성과 미적인 완성도를 높인 것이 특징이었다.

두루마기의 깃을 올려 테일러드수트 형태를 취하고, 소매를 짧게 디자인했으며 고름대신 단추를 달았다. 스커트는 여러 폭을 이어 주름지게 만들어 플레어스커트의 형태를 취했다.

또 한복의 형태를 딴 하이웨스트 드레스가 혼례복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70년대는 경제성장과 소득증대로 기성복이 보편화하고 패션되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60년대와 마찬가지로 한복은 서양패션을 응용했다. 70년대 후반에는 생활한복이 대량 생산되기도 했지만 쉽게 대중화하지는 못했다.

80년대 말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국제적인 행사를 개최하면서 국내 패션계는 한복의 고유성을 널리 알리는데 주력했다.

설윤형, 이신우, 진태옥, 앙드레 김 등의 디자이너들은 현대복식에 전통 복식의 색과 소재, 문양, 형태를 응용한 의상을 발표했다.

한국적인 이미지를 꾸준히 추구해온 이신우는 모시와 삼베를 소재로 하고 한복의 동정과 배래선 등을 현대의상에 적용하는 시도를 계속했다.

진태옥은 88올림픽을 기념하는 패션쇼에서 누빔과 조각보를 형상화한 의상들을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설윤형은 전통 자수와 문양을 대담하게 적용했고 앙드레 김은 모시 같은 전통 소재를 이용한 이브닝드레스를 발표했다.

90년대에는 이 같은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세계 속에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신우, 이영희, 홍미화 등이 도쿄컬렉션, 파리컬렉션에 진출해 세계 시장에 한국의 전통이미지를 알렸다.

한복저고리 고름을 응용한 이진윤의 작품, 2005년

중국풍과 일본풍 등 오리엔탈리즘이 유행하고 있었던 세계 패션시장에서 주목을 끌기 위해 한국적 이미지를 앞세웠다.

하이패션에서 한복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반면 대중패션은 캐주얼의 영향으로 ‘생활한복’ 분야를 제외하고는 더욱 서구화했다.

빠르게 변모하는 유행패션에 발맞추지 못한 결과였다. 2000년 이후 한복은 전통을 고집하는 고급 혼례복과 빌려 입을 수도 있는 저가형으로 양분화됐다.

하이패션에서는 이전처럼 한국적인 것을 고집하기보다는 다원화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다민족 성향의 특징을 뒤섞어 발표하기 시작했다.

데님에 한국적인 자수를 응용하는 강기옥, 모시․노방 같은 한복의 소재를 사용해 우아한 이브닝드레스를 발표하는 김지해 등이 대표적인 디자이너다.

일반인들은 한복을 즐겨 입지 않더라도 해외영화제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무대에 오르는 여배우, 한류 열풍으로 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하는 배우들의 한복차림은 너무도 아름답고 우리들에게 뿌듯한 자부심을 솟구치게 만든다.

대장금의 인기로 우리 궁중음식의 인기가 높아졌듯이 한복도 인기를 얻지 말라는 법은 없다. 끊임없이 전통 한복을 고증, 재현하고 한복의 전통성을 현대적으로 개선해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

*참고자료 : 「최경자와 함께한 패션 70년」, 「생활한복 디자인」, 「우리생활 100년-옷」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