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차별화 등으로 해외 유명 브랜드 아성에 도전장

“일반 국산 브랜드 청바지(진)로는 히프 라인이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네요. 주관적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제 딸이 매장에 4번이나 찾아 가 입어본 뒤에야 결국 2배 이상 더 비싼 돈을 내고 외국 유명 브랜드 청바지를 사왔어요.”

유명 양복 브랜드 ‘까날리(CANALI)’의 윤인태 대표가 패션 관계자들에게 건넨 얘기다.

리바이스, 캘빈 클라인(CK), 디젤, 폴로, 게스 등 한국 시장을 70% 이상 장악하고 있다는 외국산 청바지 브랜드들이다. ‘그럼 국산 청바지는?’ 이제는 그런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이는 ‘시장에서 청바지 독립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외국 유명 메이커들이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청바지 시장에서 최근 토종 브랜드들이 ‘청바지 독립’을 엿보고 있다.

디자인과 기술, 마케팅에서 우월한 이들 해외 브랜드에 맞서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 최근 해외 유명 브랜드에 견줄 정도로 주목을 끌고 있는 국산 청바지의 약진이 돋보이고 신규 토종 브랜드 청바지들의 런칭도 활발하다.

국내에서 토종 청바지들이 시장의 강자로 집중 떠올랐던 것은 1990년대 초반. 닉스 스톰 등의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인기를 독점할 때다. 하지만 국산 브랜드는 이 때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시장 주도권을 해외 유명 브랜드에 내주고 말았다.

리바이스 마케팅팀의 박준식 대리는 “환란을 거치면서 자금난에 처한 대부분의 국내 업체들이 위축된 사이 막강한 자금력과 마케팅력을 가진 해외 브랜드들이 큼지막한 자리를 잡아 버렸다”고 분석한다.

정통 진이라는 이미지를 고수하면서 진의 오리지낼리티와 트러디셔널한 패턴을 고수하는 리바이스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구축했고 캘빈 클라인 또한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한, 모던한 느낌의 진으로 국내 시장에서 자리를 굳혔다.

두산이 갖고 있는 게스 브랜드 또한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진으로, 또 폴로도 기존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를 파생브랜드라 할 수 있는 청바지에 그대로 투영해내고 있다.

이런 해외 브랜드 강자들 틈에서 최근 약진을 하고 있는 국산 브랜드로는 ‘버커루’가 대표주자로 꼽힌다. 국내 브랜드로는 가장 높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시장의 ‘주류’로까지 올라서고 있다.

윤성호 마케팅 과장은 “정통 진을 표방하면서도 시대적 패션성과 섹시함을 절묘히 가미한 이미지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며 “특히 제품을 시즌별로 특성화, 컨셉트를 가진 생산라인을 가동해 시장의 수요에 부응하기 때문에 반응이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신규 토종 브랜드들도 해외 메이커들의 아성에 과감히 도전하고 나섰다. 브리티시 나이츠, EXR, 터그 등은 최근 런칭한 토종 청바지 브랜드들. 또 제일모직의 빈폴도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기존의 캐포츠 영역을 넘어선 ‘트랜스 캐포츠’라는 새로운 컨셉트를 선보이는 EXR은 올 시즌 청바지 시장에 진출, ‘트랜스 진’라인을 선보였다.

트랜스 진은 캐주얼 레포츠 웨어와 함께 코디할 수 있는 개념으로 금속 등 다른 소재를 청바지에 부착시키고 과감한 워싱을 하는 등 기존 해외 유명브랜드와 디자인 면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앞뒤 포켓 부분에 280여 개의 금속 단추를 장식하며 이달 출시된 ‘트랜스 리미티드 진’은 기존의 청바지 이미지를 뛰어넘는 새 스타일로도 관심을 끈다.

브리티시 나이츠(BK)는 해외 라이선스 브랜드이지만 국내 기업이 오너십을 가진 토종 브랜드로 관심을 끈다.

올해 브랜드 런칭과 함께 과감히 청바지 시장에 뛰어 들었는데 베컴을 잇는 영국의 섹시 축구스타인 앨런 스미스를 고정 모델로 선택할 만큼 글로벌한 마케팅 이미지 구축을 전략으로 취하고 있다.

유행을 좇는 최신 정보통’이라는 뜻의 힙스터(Hipster) 생산라인에서 엉덩이에 완전히 걸쳐 입을 경우 슬림한 라인이 강조되는 청바지를 선보였다.

제일모직의 ‘빈폴’ 진도 올해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코크업진’ ‘스와로브스키 아이스진’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에도 적극나서고 있는 빈폴은 올해에만 매장을 12개나 늘릴 계획이다. 또 ‘좋은 사람들’이 새로 내놓은 브랜드 ‘터그’의 활약 여부도 관심거리.

트렌드 읽는 효과적 마케팅 필요

비록 토종 브랜드 청바지들이 뒤늦은 선전을 벌이고 있지만 해외 브랜드들의 강세는 예전보다 부쩍 빨라진 시장과 유행, 정보의 속도에 힘입어 여전하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소비자들은 국내 유명 연예인들의 패션을 보고 따라 입는 경우가 잦았지만 지금은 해외 유명 스타들의 동향을 인터넷이나 방송을 보고서 즉시 따라간다는 것이다. 또 국내 발간 패션잡지들도 해외 스타나 패션 동향을 중시, 재빨리 보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추세에 가속도를 더하고 있다.

EXR의 임주용씨는 “해외의 패션 트렌드 정보가 워낙 빨리 국내에 입수되니 스타 마케팅에서 앞서고 유행을 주도하는 해외 브랜드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국산 브랜드들이 힘을 못써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라고 평했다.

그렇다고 청바지의 품질이나 기술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워싱 기술이나 제품력에서는 많이 평준화됐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국산 브랜드가 뒤진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청바지 업계에서는 국산 브랜드가 관심을 얻고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선도적인 제품을 개발, 이를 재빨리 생산하고 효과적인 마케팅을 집중적으로 벌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지적한다.

인터뷰
브리티시 나이츠 윤은경 대표
"블루진 시장은 블루 오션"

“성공했으면 여유있게 편히 지내지, 뭣하러 힘들고 험난한 패션 시장에 뛰어 들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올 초 출범한 패션 브랜드 ‘브리티시 나이츠(BK)’의 윤은경(42) 대표.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치열한 전장이자인 패션 시장에서 그녀는 아직까지 ‘이방인’으로 통한다. 의류 시장에 새로 뛰어든 ‘신출내기’ 대표이사이자 좀체 찾아 보기 힘든 패션계의 여성 CEO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브리티시 나이츠는 흑인 힙합래퍼인 ‘MC해머’를 후원하며 유명세를 탄 스포츠 브랜드. 윤 대표는 브랜드 판권만 사오는 대신에 생산과 디자인, 기획, 마케팅은 순수 국내 자본으로 꾸려가는 ‘글로벌 토종 브랜드’를 꿈꾸고 있다.

토털 브랜드이면서도 BK가 먼저 진출한 시장은 데님(청바지)과 스니커즈 분야.

“남들이 하지 않는 청바지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어요. 외국 브랜드 일색인 청바지 시장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입니다.”

그녀는 이름처럼 영국적인 이미지가 강한 브랜드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베컴의 뒤를 잇는 영국의 미남 축구스타 앨런 스미스를 모델로 기용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제가 패션과는 다른 줄에 있다가 갑자기 뛰어든 것은 아니에요.”

윤 대표는 사실 중견 운동화 제조업체 임원 출신이다. 부산을 근거지로 한 해 250만 켤레의 운동화를 수출해 온 ㈜카포에서 그녀는 해외 마케팅 디렉터로 일했다. 남편이자 대표이사인 옥환씨를 도와 경험을 쌓아온 것.

때문에 자신의 패션 시장 도전이 “어느날 갑자기 돈을 벌어 전혀 상관없는 패션 브랜드 시장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오랫동안 준비해 오다 이제 시점이 돼 시작한 것뿐이에요.” 윤 대표는 “자기 브랜드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은 것이 궁극적인 도전이자 꿈”이라고 강조한다.

“당연히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알고 있죠. 이전 직장에서는 주문받은 대로 생산해 납품만 하면 됐는데 패션 비즈니스는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 간단하지가 않네요.” 하루에도 수많은 결정을 직접 내려야 하고 여러 전문가들이 각각의 영역에서 최선의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패션 비즈니스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느끼고 있다.

하지만 관련 분야에서 실무 경력을 쌓아 온 것이 도움이 많이 됐다는 윤 대표는 “바느질은 몰라도 비즈니스의 프로세스 원리를 알면 상당 부분 커버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또 “수업료를 낼 각오는 돼 있다”며 “패션 브랜드 비즈니스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힘들겠지만, 그러나 도전할 만한 아름다운 세계 ”라고 애정을 표시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