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 가을/겨울 서울컬렉션

연예인들이 자리를 메우고 열띤 취재 경쟁이 펼쳐지는 컬렉션.

특이한 옷, 인형 같은 모델, 눈부신 조명과 음악은 고급 쇼처럼 여겨져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매년 이런 컬렉션을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패션은 미래 지향적인 산업이다.

계절을 앞당겨 봄에 그해의 가을겨울 옷을, 가을에 다음해의 봄여름 상품을 내놓는 이유는 새로운 트렌드를 발표하는 동시에 미리 상품을 수주 받기 위해서다.

제대로 된 옷을 감상하려면 사람이 입고 움직이는 모습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상품가치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패션쇼를 여는 것이다. 또 디자이너의 앞선 창의력과 개성을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매년 2월과 9월경에 열리는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세계 4대 패션쇼는 초청장을 쉽게 손에 쥘 수 없다.

유명 디자이너 쇼라면 기자라도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해야 하고 바이어들도 미리 선주문 형식의 금액을 지불해야 초청장을 받을 수 있다. 또 패션쇼를 여는 동안 곳곳에서 소재 및 의류 박람회, ‘페어(fair)’를 개최해 비즈니스에도 열을 올린다.

그런데 서울컬렉션은 행사 관계자들과 관련 패션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대부분의 좌석을 메우고 있다. 서울컬렉션에만 있는 풍경이다. VIP와 언론인, 바이어들을 위해 쇼를 개최하는 해외 컬렉션과는 다르다. 서울컬렉션이 ‘그들만의 쇼’가 된 지는 오래다.

이웃나라 일본을 보자. 현재 일본 패션은 이세이 미야케, 가와쿠보 레이 등의 유명 디자이너들이 등장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1980년대에 비해 많이 쇠락해 있다.

도쿄컬렉션 참가 브랜드 수도 90년대 초 90개에서 최근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에 일본은 지난해부터 정부 주도로 패션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도쿄를 파리, 뉴욕, 밀라노와 같은 패션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도쿄컬렉션’이라는 이름을 ‘일본 패션 위크’로 바꾸고 도쿄를 중심으로 민관이 협력한 새로운 디자인을 세계 시장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겠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도쿄 패션 디자이너 협의회 주관으로 도쿄컬렉션이 열렸지만 파리나 밀라노가 1주일 정도 개최되는 것에 비해3주간 이상 계속됐고 행사장도 여러 곳에 분산돼 사실상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새롭게 열리는 ‘일본 패션 위크’는 일본 패션협회, 일본 복장 산업협회, 일본 백화점 협회, 도쿄 패션 디자이너협의회 등 패션, 의류 관련단체들이 대거 참가하고, 새로운 원사와 직물을 개발한 소재업체들도 가세해 박람회(fair)의 형태를 갖춰 관심을 집중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한국의 패션 업계는 값싼 제품의 중국과 한 단계 높은 기술을 보유한 일본 틈에 끼어 고전하고 있다.

1970~80년대 대한민국 수출의 주역이었던 섬유봉제 산업이 중국산으로 인해 시련을 겪기 시작한 것은 25년 전부터이다. 한국은 아직 세계 1위의 합성섬유 수출국이자 세계 4위의 화학섬유 수출국이다. 그러나 총 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다.

패션은 미래 지향 산업

섬유 패션계의 기반이 무너지는 동안 한국의 의류 유통산업도 큰 변화를 겪었다. 20년 전만 해도 약 200개 정도뿐이었던 의류 브랜드가 최근에는 3,000개로 늘었다.

한때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의류상들과 일본, 중국 관광객들로 동대문 의류도매시장은 북새통이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제 중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고 한국 시장은 값싼 중국산 제품으로 채워지고 있다.

중저가 시장에는 지난해 일본의 값싼 캐주얼 ‘유니클로’가 들어오더니, 올 하반기에는 스페인계 여성복 브랜드 ‘자라(ZARA)’가 한국시장을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자라는 200여 명의 디자이너가 전 세계 45개국 600여 개 매장에 한 해 2만 가지 이상의 남성복, 여성복, 아동복, 홈인테리어 아이템을 출시하며 유행을 선도한다. 고급 의류를 파는 백화점은 해외 유명상표를 유치하느라 정신없는데 이제는 저가 시장까지 로열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 패션산업은 일본에 비해 기술과 독창성은 떨어지고, 가격 측면에서는 중국에 뒤져 있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온갖 상품을 토해내는 중국으로 인해 한국 패션계는 국제경쟁력을 상실했으며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한국의 장점은 튼튼한 패션디자인 기초교육이다.

매년 5,000명의 패션 전공자들이 배출되며 현역 디자이너들은 5만여 명(기업 소속 디자이너가 약 1만여 명, 개인 디자이너가 약 4만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 인재들이 복제품 만들기에 열정을 쏟아야 하는가.

패션은 품질 외에도 독창성이 있어야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한국 섬유·의류 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상품을 생산해 가격을 낮추거나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디자이너들의 몫이다.

이번 서울컬렉션 중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의 경우 참가 디자이너 25명 중 정회원은 16명, 나머지는 신인 디자이너들로 채워 ‘새 피 수혈’에 대한 지원을 표명했다. 하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수준 미달이다. 창조성 또한 부족했다.

한국 패션디자이너들에게 절실한 것은 우물 안에서 서로를 견제할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독창성을 키우는 일이다.

서울컬렉션은 서울시가 2000년부터 연간 16억원, 산자부도 1억6,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연간 80억원 지원금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물론 한국패션의 발전을 위해선 정부의 지원 외에 디자이너들의 뼈깎는 자기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