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미와 편안함 동시에… 비즈니스웨어로 업그레이드

▲ 페리엘리스.
“어떻게 티셔츠를 출근복으로 입어?”

잘 늘어나서 착용감이 좋고, 땀을 흡수해 주는 기능이 있는 면 편물 소재 티셔츠.

하지만 이 T자 모양의 상의는 피부와 가장 가까이 닿아 있어 ‘속옷’이라는 의식과 스포츠웨어로 편하게 입는 캐주얼 아이템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직장에서는 금기시 되는 의상이었다. 제대로 갖춰 입은 정장에는 짧은 소매셔츠도 용납되지 않을 정도니 티셔츠가 감히 비즈니스웨어를 넘볼 수 있었으랴.

지난 2006 독일월드컵. 직업이 직업인지라 축구경기를 보면서도 각국의 색다른 축구복을 감상하는 재미를 빼 놓을 수 없었다.

그중 전차군단 독일을 이끄는 40대의 젊은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의 역동적이고 신선한 모습은 활기 넘치는 독일축구의 실력만큼이나 좋은 구경거리였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클린스만 감독은 금발의 단정한 헤어스타일과 깔끔한 패션, 탄탄한 몸매 덕분에 ‘미중년’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졌다.

그는 대표팀 문장이 찍힌 흰색 드레스셔츠 속에는 반드시 속옷으로 흰색티셔츠를 입는 패션 센스를 발휘했고 예선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는 흰색 피케셔츠를, 에콰도르의 경기에서는 검은색 피케셔츠를 입고 나와 색다른 리더의 이미지를 심었다. 예의 없는 옷이라는 티셔츠를 입고 말이다.

본래 티셔츠는 남성의 속옷으로 미국 육군의 군수품이었다. 이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거칠지만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한 영화배우 말론 브란도의 속옷 차림 장면 때문에 흰색의 티셔츠가 반짝 유행하기도 했다.

1930년대 이후 미국의 스포츠웨어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색상과 소재가 다양하게 개발되고 마케팅의 힘으로 젊음과 활력을 상징하는 옷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 현대의 남성들은 속옷으로, 또 스포츠웨어로 티셔츠를 사랑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 티셔츠를 출근복으로 입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보다 편안하고 관리가 용이하면서 디자인까지 멋진 남성들을 위한 티셔츠가 비즈니스웨어로 남성복 전문매장에 내걸리고 있다.

셔츠로 변신한 티셔츠, '오픈 티셔츠'

▲ 크리스찬라크르와 옴므, 제이폴락.

먼저 셔츠 디자인을 도입한 ‘오픈 티셔츠’가 추천목록 1호다.

오픈 티셔츠는 티셔츠 소재를 사용해 땀이 많이 나서 세탁이 잦을 수밖에 없는 여름철에 딱 맞는 편리함을 준다. 그리고 셔츠처럼 앞여밈 부분을 단추로 여닫을 수 있도록 디자인돼 남성적인 스타일과 편안한 착용감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이 같이 편의를 주는 것이 오픈 티셔츠의 장점이지만 캐주얼의 자유로움보다 긴장감을 주기 위해 ‘격식 있는 셔츠의 외관’을 강조한다. 몸 판은 티셔츠처럼 편물 소재를 이용해 편안함을 주고, 앞여밈 부분과 칼라는 셔츠의 빳빳한 천을 달아 셔츠의 격식을 차렸다.

티셔츠의 편물소재는 어깨 부분이 빈약해 보일 수 있는데 어깨에 셔츠 소재를 댄 ‘요크 티셔츠(Yoke T-shirts)’로도 나와 있다.

오픈 티셔츠는 속에 흰색 반팔 티셔츠를 함께 입고 기온이 올라가거나 캐주얼하게 보이고 싶을 때는 앞 단추를 풀어 자연스럽게 연출하면 된다. 오픈 티셔츠는 티셔츠의 소재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셔츠보다 구김이 적어 다림질의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실용적이다.

신사의 스포츠웨어, '피케셔츠'

또 하나 비즈니스웨어로 변신 가능한 티셔츠는 폴로셔츠로도 불리는 ‘피케(Pique)셔츠’. 폴로셔츠를 특정 의류회사명으로 알고 있겠지만, 폴로셔츠는 폴로 경기에 입는 셔츠이며 같은 디자인의 테니스셔츠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 시작은 19세기 말. 당시 테니스 경기 복장은 정장의 상의만 벗은 긴소매의 드레스셔츠를 입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런데 ‘악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프랑스출신 유명 테니스선수 르네 라코스테(Rene Lacoste)가 이 규칙을 깨고 스스로 고안한 짧은 소매의 셔츠를 입었다.

그래서 피케셔츠는 스포츠룩이면서도 ‘신사의 스포츠’로 불리는 테니스 복장 특유의 귀족적이면서도 활동적인 느낌을 살려, 단순하면서도 멋스럽다는 이미지를 준다.

다양한 색과 줄무늬 프린트 디자인으로 피케셔츠는 누구나 한 벌 이상 가지고 있음직한 기본 아이템이다. 셔츠와 같은 칼라가 있고 앞트임 단추가 두세 개 달린 이 단순한 셔츠는 패션계에서 몇 년에 한 번씩은 반드시 유행의 선두에 오르는 베스트셀러다.

피케셔츠의 소재는 주로 면과 같은 천연 소재를 사용한다. 여름철에는 통기성과 흡수성을 높이기 위해 기능성 소재가 사용되기도 한다. 올해는 기본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짧은 단추 선이 가슴 아래까지 길어지거나 칼라와 소매에 다양한 무늬를 넣고 과감한 변형을 준 것들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유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피케셔츠는 캐주얼하지만 가장 무난한 셔츠로 어떤 하의와도 잘 어울리며 외출복이든 레저용이든 다양한 착장이 가능하다. 점잖은 색이라면 정장바지에도 어울리고 면바지 또는 반바지에 로퍼 하나만 받쳐 신어도 편안하고 세련되게 보일 수 있다.

남성 티셔츠의 화려한 반란. 비즈, 스팽글 티셔츠

기본을 중시하는 남성 티셔츠의 확 달라진 모습도 있다. 여성복에 사용되던 비즈와 스팽글이 남성 티셔츠의 디테일로 등장한 것. 프린트 일색이던 남성 티셔츠가 비즈, 스팽글, 자수 등의 섬세한 기법을 포인트 장식으로 사용했는데 단벌의 멋을 살려야 하는 여름철에 수공예적이며 독특한 감각의 티셔츠들이 남성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여성복의 섬세한 장식이 보다 날렵하게 조이고 싶어하는 남성복에 사용되면서 프린트 티셔츠의 평면적인 느낌을 자수, 비즈, 리본 테이프 등으로 입체감을 살려내고 있다. 또 색다른 감각을 원하는 남성 고객들이 늘었기 때문에 한정품의 느낌을 주는 디자이너의 예술적인 손맛이 표현된 이 티셔츠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진행진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 헨리코튼.

유행 아이템이면서 기본 아이템인 티셔츠는 다양한 색과 디자인이 선택의 즐거움을 준다. 그중에서 민무늬에 무채색이나 연한 파스텔컬러 티셔츠는 세미정장에 응용하고, 밝고 화사한 색이나 줄무늬 등의 무늬가 있는 티셔츠는 면바지나 청바지와 함께 입으면 멋지고 자유로운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캐주얼데이’가 있는 회사나 캐주얼 세미정장이 허용되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행운아라면 티셔츠를 스포츠 캐주얼룩으로 출근할 때도 가볍게 입을 수 있다. 단 주의할 점은 티셔츠가 편하게 입는 옷이라고 지나치게 편하게, 헐렁하게 입으면 멋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이즈는 되도록 딱 맞게 입는 것이 좋다. 더불어 독일 클린스만 감독처럼 멋진 중년의 복근을 지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