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언론을 연결하는 막후 해결사 "기사 한 줄에 죽고 살고… 매번 악몽을 꿔요"

며칠 전 밤이다. 윤성원(34) 씨는 다시 꾸고 싶지 않은 꿈을 꾸었다.

“그날 제가 맡은 고객사의 신상품 행사가 있었는데, 꿈에 그 행사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단 한 군데도 안 나간 거예요. 꿈인 줄을 몰라서 더 끔찍하고 괴로웠던 악몽이었죠.”

기업과 언론사를 연결하는 막후의 전사, PR(Public Relations) 전문가들. 기사에 웃고 기사에 무너진다. 고객사의 이름이 신문에서 보이지 않으면 힘이 쫙 풀린다. 이들에게 PR이란 ‘피나게 알린다’의 약자다.

윤 씨는 올해로 경력 7년째를 맞고 있는 PR 전문가다. PR 전문가는 주로 기업들의 의뢰를 받아 언론에 보도하고 이벤트, 인터넷 등을 활용해 기업을 널리 홍보하는 이들이다. 윤 씨는 대기업의 영화수입 관련 부서에서 홍보 업무를 맡던 중 PR의 매력에 빠져 길을 바꾼 열성파.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 2000년부터 본격적인 홍보전문가의 길로 뛰어들었다. 현재 그는 홍보대행사 J&A의 PR팀장을 맡고 있다.

윤 씨가 근무하는 회사의 경우, PR 전문가 1인당 2, 3개의 고객사를 담당한다. 홍보의뢰의 약 70%는 주로 소문을 듣고 기업측에서 스스로 일감을 맡겨오는 경우다. 해당 대행사에 단독으로 일을 맡기기도 하지만, 타 홍보대행사들과의 경쟁을 통해 최종 낙점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제안서 경쟁 때엔 대개 홍보대행사 3, 4개 업체가 맞붙는다. 준비를 위해 주어지는 시간은 공고 후 약 1주일. 팀 전원의 밤샘과 심야 퇴근은 숙명이다.

단독이든 경쟁이든, 일단 고객사의 의뢰가 들어오면 곧바로 해당 기업의 홍보 실태 조사에 들어간다. 통계청 자료에서부터 신문기사나 방송, 인터넷 게시판 등 해당 기업의 이름이 들어간 자료란 자료는 모두 모은다. 온라인 소비자를 둔 기업일 경우 네티즌들의 평가와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관련 동호회에 가입할 때도 있다.

현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나면 바로 처방에 들어간다. 기업의 생명 한 자락이 이들의 손에 쥐어지는 셈이다. 앞으로의 홍보 방향과 전략을 세우고, 이를 위한 실전 시나리오도 치밀하게 짠다. 주로 언론보도가 집중 공략할 목표 타깃이 된다.

구미 당길 주제 찾아 보도자료… 홍보기사 실리면 성취감
수백 명 기자 밀착관리 "자리 이동할까 수시로 체크하죠"

기자들에게 보낼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일은 기본 중 기본. 과거처럼 노골적으로 기업을 찬양하다가는 백발백중 휴지통으로 직행이다. 언론사의 구미를 당길 만한 주제를 잡아 세련되게 포장해야 한다. 한 기업당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을 최대한 많이 찾아낸 뒤 여러 번으로 나누어 쓴다. 경우에 따라선 큰 폭탄 한 발보다 수류탄 여러 발이 폭발 효과가 더 오래간다.

결국엔 아이디어 싸움이다. 기자들이 아이템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PR 전문가들도 책상 앞에서, 현장 속에서 머리를 싸맨다. 어느 신문, 무슨 요일, 몇 면에, 어떤 분야의 기사가 실렸는지 환하게 꿰고 있다. 보도자료는 과거처럼 직접 배달하지 않는다. 신문에 실리기를 원하는 희망 날짜 하루 전날에 기자들 앞으로 이메일을 보낸다.

고객사의 홍보의뢰를 받고 맨 먼저 하는 일도 언론사별 담당 기자들의 명단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개 직원 1인당 수백 명의 기자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 와중에도 행여 자리가 바뀔 세라, 수시로 신문이나 기자협회 홈페이지를 드나들며 인물동정란을 확인해 기자들의 이동을 예의주시한다. 보도자료를 보낸 뒤엔 다시 일일이 전화를 걸어 수신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보도자료랑 기자 사이에도 궁합이 있는 것 같아요. 똑같은 보도자료라도 어떤 기자분은 흡족해 하고, 어떤 기자분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거든요. 이 때문에 기자들마다 각자 원하는 스타일이 어떤 건지, 담당 기자들이 쓴 기사들을 검색해서 취향을 파악해보기도 해요. ”

기자 손에 보도자료가 넘어가고 나면 그때부턴 기다림만 남는다. 최종판을 볼 때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신문사 편집국마다 가판을 점검하고 있을 시각, 인근에선 PR 전문가들도 어김없이 가판 신문을 뒤지고 있다. 1차 가판이 나오는 하오 6시, 이어 하오 7시에 나오는 2차 가판도 놓치지 않는다. 급할 땐 배달 전 가판신문들이 한데 모이는 장소에 직접 뛰어나가기도 한다. 자신이 애써 만든 보도자료의 생사가 판가름나는 찰나다.

언론사에 제공했던 내용의 기사를 신문에서 발견하면 황홀함마저 든다. 그러나 보이지 않으면? 생각하기조차 싫다. 기사화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PR 전문가의 능력이 저울질되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요구를 한발쯤은 앞질러야 살아남는다. 언론사가 움직이면 홍보대행사도 나란히 움직인다.

“신문사마다 6개월에 한 번씩 지면갈이를 하잖아요. 그때가 되면 저희도 싹 판갈이를 해요.(웃음) 그밖에도 아이템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자료 수집, 작성까지 거의 언론사와 비슷한 방법으로 돌아가죠. ”

방송사서 고객사에 방송 출연 섭외가 들어올 때는 일이 더 복잡해진다. CEO의 인터뷰가 있을 경우, 아예 하루쯤 통째로 시간을 비워 방송 예행연습을 시킨다. 답변할 내용과 말투, 말의 길이, 옷차림과 머리 모양 등에서부터 사소한 부분까지 세세히 준비하고 코치한다. 예상 인터뷰 대본을 준비하는 것도 PR 전문가들의 몫이다. 출연자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일부러 와이셔츠 소매를 반쯤 걷어 올리게 하기도 하고, 의상도 스트라이프 계열로 골라주기도 한다. 이미지 메이커가 따로 없다. 방송 당일에는 현장까지 동행해 내내 출연자의 곁을 지킨다.

매체를 불문하고 가장 무서운 것은 돌발상황이다. 아무리 준비가 철저해도 이것만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눈 깜짝할 사이 별별 변수가 다 생긴다. 언젠가 윤 씨가 제공한 보도자료가 이튿날 신문기사로 실리기로 돼 있던 날, 자고 일어나보니 화물연대 물류대란이 터져 관련 해설 기사가 예정된 홍보 지면을 다 먹어치워 버리기도 했다. 어느 사진 촬영 때에는 친구들까지 동원해 어렵사리 어린이들을 모아놨다가 정작 카메라 앞에 서자 아이들이 긴장해 얼어붙는 바람에 결국 지나가던 아이들로 황급히 대체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 때도 남모르는 냉가슴을 앓았다. 한국축구의 신화가 이어지면서 신문, 잡지, 방송 등 거의 모든 매체가 두 달간 월드컵 특집으로 뒤덮였다. 홍보대행사에게는 기나긴 휴업 선고나 다름없었다. 한국팀의 쾌거에 개인적으론 한없이 기쁘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PR 전문가들의 빛과 그림자였다.

더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신문에 실려서 오히려 괴로운 경우다. 차라리 기사화가 안 되느니만 못한, 부정적인 내용에 고객사의 이름이나 상품이 연루되어 있을 때다. 약간의 이상한 조짐이 감지되면 기업도, 홍보대행사에도 초비상이 걸린다. 곧바로 대책반이 소집돼 사태를 막거나 수습하는 임무가 떨어진다. 설령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더라도 그 피해나 타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PR 전문가들가 할 일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러 가야 한다.

“한번은 우리나라에 투자한 외국기업을 맡고 있었는데, 그 무렵 행담도 개발사업 문제가 논란이 되더니 점점 언론보도가 ‘외국계 투자자본이 우리나라에 투기성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쪽으로 전개되는 거예요. 자칫하면 불똥이 우리에게도 튀겠더라구요. 바로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고, 혹시라도 나쁜 상황이 터질 경우를 대비해서 일련의 답변서까지 다 만들어놨어요. 기자들을 만나 ‘우리는 그런 게 아니다’라고 계속 강조를 해야 했고, 심지어 그것을 인정한다는 담당 기자의 대답을 들었으면서도 어쨌든 기사란 건 나와 봐야 아는 거니까,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죠. 그럴 때가 아주 엄청난 스트레스예요. ”

현재 국내의 홍보대행사 대부분이 신입 채용을 꺼리는 이유도 이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중압감,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 도중에 그만두는 새내기들이 전체의 약 30%에 이른다. 상당한 낙오율이다. 본인이 아닌 제3자의 손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결실이기에 일이 더욱더 쉽지 않다.

윤 씨의 신입시절엔 이런 기억도 있다. 처음으로 기자들과 만나러 가던 날, 선배 사수의 지시로 윤씨 혼자 모임에 나갔다.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려요. 다들 이야기를 나누는 2시간 동안 저는 말 한마디 못하고 설렁탕만 먹고 왔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선배가 저를 강하게 훈련시키려고 일부러 저만 내보낸 것 같아요. 그날 이후로 기자들과 만나러 갈 때는 아주 철저히 자료를 준비해서 나가는 게 몸에 배었어요. ”

성공하기만 하면, 성취의 희열은 중압감을 훨씬 넘어선다. 윤 씨는 한때 3년에 걸쳐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의 홍보를 맡은 적이 있었다. 홍보 전의 인지도 조사 때만 해도 관련 내용을 아는 사람이 채 10%도 안 되었다. 그 후 홍보 3개월 만에 다시 설문조사를 해보니 그 사이 85%까지 인지도가 치솟아 있었다. 이럴 때 느끼는 만족감이 중독을 부른다. 홍보의 위력이자 윤 씨가 이 일에 매료되는 이유다.

“전과 후의 결과물이 확실히 차이가 날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고객사도 아주 만족해 하고, 그럴 때마다 내가 이 일을 선택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곤 하지요. 힘든 것 없이는 성취감도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기 하나. 얼마 전 윤씨가 꿨다는 악몽은 개꿈이었다. 윤 씨가 맡은 고객사의 신상품 행사 기사가 이튿날 조간부터 시작해 단 며칠 사이에 60여 개나 실린 것이었다. 악몽은 그에게 직업병이었던 셈이다.

“생각해보니 3년 전 골프웨어 런칭 때도 똑같은 꿈을 꿨던 것 같아요. 그날도 행사를 마치고 와서 자정까지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단 한 건도 기사가 안 보여서 굉장히 불길해 하며 잠이 들었거든요. 실제 결과요? 거의 전 매체에 기사가 나갔어요. 괜히 혼자 마음만 졸였던 거죠. ”

● PR 전문가가 되려면

홍보대행사 대부분이 수시채용 방법을 택하고 있다. 신입사원보다는 채용 후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자를 선호한다. 무경험자의 경우, 인턴제도를 도입한 홍보대행사들이 많으므로 그곳을 지원하는 것이 유리하다.

PR 전문가가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 조건은 없다. 대학의 출신 학과나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경력자의 경우 서류전형 시 제안서 제출을 요구받을 수 있으며, 신입은 면접 당일 주제를 받아 이를 즉석에서 보도자료로 작성하는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신입사원은 주로 서류전형-면접을 거쳐 채용된다.

연봉은 개인의 경력과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홍보대행사마다 다르지만, 대략 5년차를 기준으로 많으면 연봉 3,000만~4,000만원 선이다.




글, 사진 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