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없는 복통… 못 먹어 앙상형제가 함께 발병, 합병증까지 생겨 더 고통근본 치료법 없이 약값 엄청… 카드 긁어 버텨

“아~아~, 엄마, 엄마···”

울산시 중구 우정동의 한 아파트. 초등학교 3학년생인 종섭(9)이의 눈에 눈물이 그득하다.

엄마 백정화(36) 씨는 안타깝게 아이를 바라보다가 꼬옥 안고, 배를 두드려준다. 엄마의 눈에도 작은 이슬이 고인다.

용섭(10)ㆍ종섭이 형제는 ‘크론병’을 앓고 있다. 2000년도 이전에는 국내에 환자가 약 1,000명 수준에 머문 희귀병이었으나, 2005년에는 약 4,000~5000명으로 늘어나는 등 최근 환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주의를 요하는 병이 되고 있다. 입에서 항문까지 위장관 어디에나 염증이 생길 수 있는 병으로, 보통 복통을 가장 심하게 느낀다. 배가 아리고 내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끝도 없이 이어지지만 아직 원인을 모르고, 뚜렷한 치료법도 없다.

“안고, 업고 달래봐도 밤낮으로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 때는 속이 까맣게 타죠. 너무 속상해서 ‘우리 같이 죽자’고 부둥켜 안고 눈물을 쏟기도 했지요.”

게다가 용섭ㆍ종섭이 형제에게 찾아온 병마는 ‘크론병’만이 아니었다. ‘골수이형성증후군’(과거에는 전백혈병으로 불리었던, 백혈병의 일종. 혈구 감소로 인한 감염, 출혈, 빈혈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병)과 ‘심방중격결손증’(좌우의 심방 사이에 얇은 심근 조직에 결손구가 생겨 혈액이 그곳을 통과하는 병)이라는 선천성 심장질환의 고통이 이미 엄습한 상태였다.

‘심방중격결손증’이라는 병이 발견된 것은 용섭이가 막 두 돌을 넘겼을 무렵. 폐에 물이 찰 정도로 폐렴을 극심하게 앓더니 이듬해에는 반대편 폐에 염증이 나타났다. 이로 인한 초음파 검사에서 뜻밖에도 심장이 커져 있고, 구멍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병원에서는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그러나 이듬해 다른 대학병원에서 재검사한 결과 ‘심방중격결손증’이라는 확진이 떨어졌다. 혈액 질환도 발견됐다. 재생불량성 빈혈로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엄마아빠는 이러한 결과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아이들에게는 잘 안 오는 질환이라는데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몇 곳에서 거듭 검사를 받았다. 2002년 서울아산병원, 2003년 서울대병원에서 ‘골수이형성증후군’으로 밝혀졌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불행은 잠시도 숨쉴 틈도 없이 동생 종섭이에게도 밀려들었다. 감기가 심해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밀검사를 받았더니 역시 형과 같은 ‘심방중격결손증’이 발견되었다. 심장 수술을 서둘렀다. 하지만 종섭이 역시 이미 혈액 질환이 침범해 있어 달리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혈액 질환이 오기 전에 심장 수술이라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랬더라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는 있을 텐데···.”

부모는 뒤늦게 가슴을 친다. 처음에 심장 질환이 의심됐을 때 병원에서 정밀 검진 및 처치를 권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또 다른 불행이 용섭이 형제를 덮쳤다. 이번에는 크론병이었다. 밤낮으로 복통이 이어지며 아이들은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앙상하게 말라갔다. 구토와 설사도 이어졌다.

현재 크론병은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어도, 고통을 줄여주는 보조적 치료제는 다양하게 나와 있다. 그러나 용섭이 형제에게는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크론병 치료제의 부작용이 백혈구 수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해요. 우리 아이들은 원래 백혈구 수치가 낮으니, 크론 고치자고 골수에 위험을 더할 순 없잖아요.”

부득이하게 병원에서는 크론병 치료제로 ‘레미케이드’라는 치료약물을 써야 한다고 했다. 1병당 80만원에 이르는 고가 약물인데, 이것을 6~8주마다 투여해야 한다. 그것도 형과 동생이 같이 맞아야 하니 부담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료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희귀병 환자들이 가장 애태우는 부분이다. “한 번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갔다 오면 200만원 가까운 돈이 나가요. 현금으로 그 많은 돈이 없으니 카드로 긁죠. 그리고 그 카드 값을 채 내기도 전에 또 긁고···”

11월부터 정부에서 ‘레미케이드’에 대해 1년간 보험 혜택을 주기로 했지만, 엄마아빠는 이 혜택이 평생이 아니고, 단 1년이라면 지원받는 것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이 약은 몸무게에 따라 투약량이 달라지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어리고 작아서 약을 각각 1병씩만 투여하면 되지만 앞으로는 한 사람당 2~3병씩 투여해야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 자동차 부품회사에 다니는 아빠는 이 약값을 벌기 위해 야근에, 특근을 밥 먹듯 한다. 그래도 아빠 김영목(41) 씨는 “직장에 가면 잠시라도 아이들 문제를 잊을 수 있는데, 아픈 애들 곁을 24시간 내내 지켜야 하는 애들 엄마가 너무 안쓰럽다”고 걱정이다.

“혹여 아내가 너무 힘들어 가족을 떠나면 다 포기하게 될 것 같다”고 넋두리다.

아닌 게 아니라 그야말로 온가족이 희귀병과 사투를 벌이는 형국이다. 엄마 백 씨는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킨 후에도 잠시도 홀로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아침 수업 시작 후 1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학교에서 전화가 올 때가 종종 있어요. 아프니까 데려가라고요.” 그래서 엄마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에도 늘 전화기 앞에서 좌불안석이다.

이토록 아이들의 복통은 집요할 정도로 쉴 새 없이 찾아오고, 한번 찾아오면 며칠씩 이어지기 일쑤다. 또 조금 가라앉았다 다시 심해지기를 반복한다. 값비싼 ‘레미케이드’를 꼬박꼬박 맞아도 고통을 줄일 순 있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고 한다.

엄마 백 씨는 “염증 부위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으면 아프진 않다는데, 이는 최후의 방법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용섭이 형제 같이 여러 병이 겹쳐 있는 상황에서 부담을 감수하고 수술을 받는다 해도, 재발의 위험이 여전이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해를 맞는 용섭ㆍ종섭이 부모의 마음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투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의 건강은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다. 얼마 전부터 종섭이는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잘 걷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자꾸 집에만 있으려고 해 또 엄마의 속을 태운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용섭이에 비해 종섭이의 몸은 더 빨리 악화되고 있다.

새해 우리나이로 11세가 되는 종섭이의 몸무게는 이제 겨우 14kg을 웃도는 정도. “갓난 아기처럼 손목이 앙상하다”며 잠옷 사이로 드러난 팔을 보며 안쓰러워 한다. 엄마아빠는 “아이들의 병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사는 날까지 고통이라도 적었으면 좋겠다”고 고개를 떨궜다.

◆ 원인 및 주요 증상

1932년 크론이라는 의사가 발견하면서 알려진 병이다. 특히 북미와 북유럽 백인에게 많이 발병하여 ‘선진국 병’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국내 환자가 급증하고 있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 의하면, 86년 인구 10만 명당 0.1명에 불과하던 크론병 환자가 2004년에는 10만명당 1.15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흡연자에게 많이 발병하며 15~25세 젊은 층에서 많이 발생한다. 원인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세균 또는 바이러스 등의 감염과 연관성이 깊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위장관의 어디에나 침범할 수 있는 궤양성 질환이다. 주로 소장과 인접한 대장에 많이 생긴다.

주요 증상으로는 복통과 묽은 변, 체중 감소 등이 나타난다. 심한 궤양이 생긴 후에는 치료를 통해 일시적으로 나아졌다가 10년 이내에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심한 염증으로 배 안에 농양이 생기기도 한다.

◆ 진단 및 치료

크론병은 흔히 볼 수 없는 병이라 정확한 진단을 받기가 쉽지 않다. 환자들은 주로 복통을 호소하여 과민성 장증후군, 장결핵, 충수염, 거식증 등으로 잘못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 발병하면 완전한 치유가 불가능해 평생 발병과 치유를 반복해야 하는 만성 재발성 질환이다. 지금까지는 꾸준한 약 복용으로 건강한 상태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에 사용하는 약은 급성기에는 스테로이드제제와 5-아미노살리실 산, 메트로니다졸 같은 항생제를 사용하며, 항생제 효과가 없으면 면역억제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협착, 천공, 누공 등의 합병증이 매우 잘 생기며 그럴 경우 침범된 부위를 포함해 넓게 잘라내야 한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