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주위에 이유없이 커지는 부종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말아 주세요"치료위해 서울 올라 와 사글세 생활… "당당히 취업하는 게 꿈"

“언젠가 좋아지겠죠. 혈기왕성하니까.”

이름도 낯선 질병 ‘기무라병’을 앓고 있는 김충희(18) 군. 목 주위에 커다란 부종으로 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리지만,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자 커다란 거울 앞에서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씩씩한 젊은이다. 공업계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공부에는 별 소질이 없지만, 손재주는 있는 것 같다”며 웃는다.

기무라병은 사지, 얼굴의 특정부위, 뺨, 귀, 눈 등 전신에 걸쳐서 발생하는 만성 염증 질환. 특별한 원인도 없어 특정 부위가 가렵고 부어 오른다. 다행히 약물이나 외과적 수술 등 치료법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이러한 치료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찮다.

충희 군의 온 몸에는 얼룩얼룩한 반점 형태의 상흔이 남아 있다. “약을 먹으면 온몸이 너무 가려워요. 저도 모르게 피가 나서 살이 뜯어지도록 긁게 돼요. 어쩔 수 없이 가려움을 억제하는 약도 함께 복용해서 가려움 증세가 많이 감소되긴 했는데 약에도 내성이 생기는 게 문제죠.” 가슴도 무언가 옥죄는 것처럼 답답하다.

친구 놀림에 한때 학교가기 기피

살이 자꾸 찌는 것도 충희 군에게는 또 다른 고민. 중학교 입학 때에는 체중이 40kg을 크게 밑도는 빼빼 마른 체형이었건만, 지금은 90kg에 이를 정도로 몸이 무거워졌다. 충희 군은 “의사 선생님께서 약이 독하다고 식사와 영양제를 꼬박꼬박 복용하라고 해서 잘 먹다보니 한 달에 무려 5kg나 체중이 늘기도 했다”고 푸념이다.

체력이 전반적으로 크게 떨어지다 보니 감기만 걸려도 40도가 훌쩍 넘는 고열이 며칠씩 지속되는 심각한 상황도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저녁 늦게 열이 나기 시작해 평소 진료 받는 종합병원 대신 동네병원을 찾을 때는 곧잘 실랑이가 벌어진다. 그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 동네 병원에서는 해열제조차 주려 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어머니가 사정사정해서 ‘잘못 돼도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까지 쓰곤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그래도 충희 군은 “희귀병인 데도 커다란 통증이 없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질환은 그 외형만으로도 당사자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한창 외모에 민감한 나이에 신기한 동물을 쳐다보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의 가슴에는 비수처럼 꽂힌다. 그래서 충희 군의 소망은 소박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고 친구들과 자유롭게 거리를 걸어봤으면···’ 하는 것이다. 충희 군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사람들 시선들 때문에, 친구들이 대신 나서 싸울 때면 그의 마음도 아팠다고 한다.

전남 진도에서 3녀 1남의 막내로 귀하디 귀하게 자란 그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 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 그때만 해도 눈에 잘 띄지도 않을 정도로 조그만 몽우리 정도였지만 엄마는 그의 손을 이끌고 전남 지역의 크다는 병원들을 전전했다. 혹시 아버지처럼 암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병원들의 결과는 일치했다.

“어떤 병원을 가도 ‘크면(어른이 되면) 없어진다’고 했어요. 병명은 몰랐지만, 다 똑같이 이야기하니까 믿었죠.”

하지만 “자라면 없어진다”는 종양은 어찌된 일인지 충희 군이 성장함에 따라 같이 자라났다. “약물 치료를 했지만 진전이 없었다”고 했다.

급기야 정든 고향인 전남 진도를 떠나 연고지도 없는 서울로 이사를 해야 했다. 진도에서 매주 한 차례 치료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가 충희 군이 막 중학생 교복을 입었을 무렵이었다.

하지만 이후로 충희 군은 본의 아니게 엄마 마음을 많이도 아프게 했다. 학교 수업을 빼먹는 버릇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 올라 와 채 정이 들기도 전에 친구들이 많이 놀려 학교에 가기 싫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못난 행동이 후회스럽다. 학교 수업 일수가 모자라 중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유급 되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 없이 4남매를 홀로 키우느라 고생하는 엄마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사글세 생활에 수술비 엄두도 못내

누나들에게도 미안하고 또 고맙다. 어려서부터 외동 아들로 집안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누나들은 그를 살뜰히 챙겨줬다. 지금도 농사를 짓느라 서울과 전남을 오가는 어머니를 대신해 큰 누나가 아픈 그의 뒤치닥거리를 도맡는다. “그런 착한 누나가 그로 인해 연인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고 고개를 힘없이 떨군다.

“결별 후 누나의 남자 친구가 나중에 엄마를 찾아왔었대요. 잘못했다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누나가 저를 떠맡아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됐다고···” 누나 앞길을 가로막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속울음을 몇 번씩이나 삼켰다고 한다.

그렇게 소중한 가족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픈 데다 앞으로 늘어나는 치료비는 그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내리 누른다. 현재 충희 군의 가족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 30만원짜리 사글세 집에 산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빚만 남겼다. 때문에 농사와 채소 장사로 벌이를 하는 엄마의 수입만으로 4남매를 키워낸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제 누나들이 성장해 벌이를 한다 해도 빚을 갚고 근근히 생활하기에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서 충희 군의 기무라병은 수술을 하면 상당히 좋아질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쉽게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수술 전 검사 비용만도 그의 가정엔 상당한 부담이다. “조직 검사만 해도 100만원이 넘게 들어요. 귀 뒤로 신경이 복잡하게 얽힌 부위다 보니 매우 다루기 힘들다고 해요. 전신마취를 하고 무려 8시간에 걸쳐 검사를 받았죠. 그러니 진짜 수술은 어떻겠어요?”

하지만 누나들의 벌이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 혜택도 기대할 수 없어 충희 군은 답답하기만 하다. “어서 건강해지고, 당당히 취업해서 엄마와 누나들의 든든한 막내가 되고 싶어요.” 충희 군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듯 작지만 다부진 목소리로 다짐했다.

◆ 주요 증상 및 원인

기무라병(Kimura’s disease)은 피하조직, 타액선, 임프결절에 발생하는 만성 염증 질환이다.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론적으로는 곤충이나 기생충에 의한 감염, 자가면역반응, 알레르기성 원인, 종양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지, 얼굴의 특정부위, 뺨, 귀, 눈 등 전신에 걸쳐서 부종으로 나타나며, 임파선비대가 동반되는 것으로 보고된다. 주로 특별한 이유가 없이 특정 부위가 가렵고 부어 오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술을 마시거나 감기에 걸리면 증상이 심해진다.

◆ 치료 및 예후

치료 방법으로는 외과적 절제, 방사선 요법, 스테로이드 요법, 전기 건조법, 냉동요법 및 광선요법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스테로이드 약물에는 잘 반응하나 투여를 중지하면 재발할 수 있다. 방사선 치료는 스테로이드에 반응하지 않거나 재발한 경우에 시행한다.

최선의 치료는 외과적 절제 수술을 하는 것이나, 수술이 불가능할 때는 방사선 치료나 약물 치료를 한다. 치료 후에도 병변은 재발할 수 있으나 (생명과 직결되는) 악성화는 보고되고 있지 않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