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까지 성관계를 가진 여자가 100명이 될 거야.”

“고작 100명이야? 난 말이야, 어렴풋이 세어보더라도 족히 200명은 넘을 거야.”

이렇게 그칠 줄 모르는 정력을 자랑하는 스타일의 바람둥이는 내실을 잘 살펴보면 오히려 그 반대다. 대개가 심한 조루 증세를 보인다. 그들은 짧은 사정의 쾌감만을 추구하기에 상대가 누구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의 존재 자체를 온몸으로 느끼며 하나가 되는 황홀한 합일감이나, 사랑과 영혼의 엑시터시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성관계를 가진 후에 심한 권태감과 허탈감을 느낀다.

그 빈 가슴을 채워주는 것은 촛불처럼 잠깐 나타났다 스러지는 새로운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다. 즉 끊임없이 새로운 느낌을 갈구하는 호기심은 성욕의 모티브이자 허탈감의 도피처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여자와 성교를 하든지 짧은 시간에 끝나버리는 사정의 느낌은 어차피 매번 똑 같기 때문에 둘 사이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이는 자위행위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다만 또 한 명의 여자를 정복했다는 얄팍한 감정의 흥분만 느낄 뿐이다. 이처럼 큰소리치는 바람둥이들의 실체를 들여다 보면 내면이 몹시 외로운, 불쌍한 사람들이다.

한의원을 내원한 30대 후반의 노총각이 진솔하게 털어놓은 고민은 그것보다는 조금 다르다. 여자 친구를 만나 사귀었는데, 정열적으로 다양한 환경 속에서 성관계를 해보았다고 한다. 한 명의 상대와 늘 새롭게 섹스를 즐긴 것이다.

카페 화장실에서 묘한 스릴을 느끼면서도 성관계를 했고, 대낮에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남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흥분이 교차하는 가운데 섹스를 하기도 했다.

주변 상황에 변화를 주면서 성관계를 즐기니까 매번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심지어 밤새 술을 마신 후, 새벽 어스름 날이 밝아올 즈음 동네 골목 어귀에서 짧은 시간 짜릿하게 ‘한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런데 1년쯤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내면에서 스며나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성관계 후 4일 동안 여자 친구에 대해 백지장처럼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성욕은커녕 차츰 사랑의 감정이 메말라 갔고 간간이 다투기도 했다.

여자 친구가 전화로 “그동안 왜 전화 한 통화 없었냐”고 투정하면 그때서야 “내가 그랬나, 바빠서 깜빡 잊었어” 라고 사과하기도 했지만 내심은 그녀에게 전화하는 것을 귀찮아한 것이었다.

성관계 후 그녀에 대한 망각증은 1주일 동안, 나중엔 10일까지 길게 지속됐다. 더 이상 새로운 자극이 없어지니까 묘하게도 사랑하는 마음마저 싸늘히 식어간 것이다. 결국 노총각은 교제 2년 만에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노총각의 이야기는 앞의 바람둥이들과는 겉으론 드러난 현상은 달라 보여도 마음 속에서 작동하는 근원의 문제는 비슷하다. 노총각은 억압 없는 자연스러운 성관계를 솔직하고 용감하게 즐겼고 그것에 몰두한 순간은 매우 아름다운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사정에만 목표를 둔 것이 그의 한계였다. 성에너지, 사랑에너지, 영성에너지는 하나의 에너지여서, 그 물질적 토대인 정액을 많이 배설하면, 사랑의 자원도 함께 메말라간다. 필자는 그것을 극복하는 답이 ‘탄트라 섹스’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쇼 라즈니쉬는 <남성>이라는 책에서 ‘일반적인 섹스와 탄트라 섹스는 어떻게 다른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의 성행위와 탄트라 섹스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대의 성행위는 무엇인가 내보내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시원하게 재채기를 하는 것과 같다. 에너지가 방출되고 그대는 짐을 던다. 그것은 창조적인 행위가 아니라 파괴적인 행위이다. 물론 배설 뒤에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탄트라 섹스는 이런 성행위와 기본부터 다르다. 탄트라 섹스는 에너지를 내보내고 방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정하지 않고 행위의 중심에 머무는 것이다. 어떤 에너지도 내보내지 않고 행위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 탄트라 섹스이다. 오히려 더 충만한 에너지로 싱싱하게 살아나는 느낌이다.

이런 엑시터시는 몇 시간뿐만 아니라 며칠 동안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폭력성과 분노가 사라지고, 기분이 침울해지지 않는다. 마음이 평화롭고 편안하다. 이제 그대는 타인에게 위험한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기회만 있으면 남을 도우려고 할 것이다.”


이재형 미트라한의원 원장 www.mitr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