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타인의 행동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대한 교과서, <고등학교 정치>

정치 권력이나 폭력은 모두 강제력을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나 분명하게 구별된다. 정치 권력은 정당성이 있는 강제력이지만 폭력은 정당성이 없는 힘이다.

정치 권력은 국민들이 그 권위를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복종하지만 폭력은 국민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성이 없다. 그러므로 정치 권력이라도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 경우에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 권력이라고 할 수 없고 폭력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천재 교육, <고등학교 정치>

정치와 권력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서 강의할 때, 나는 항상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한다.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학교 3학년 개학식 때 일이야. 나는 방학 동안 머리를 꽤 길렀는데, 지금처럼 그때도 두발검사가 있어서 개학을 하면 이발을 해야 했어. 하지만 나는 내가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꽤 길었던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머리 한가운데에 가르마를 내었지 당시에는 그런 헤어 스타일이 유행이었어.

개학식을 해도 일주일 정도는 잘 숨어 다니면 별 일 없으려니 했던 거지. 개학식을 위해 우리는 운동장에 군인들처럼 줄지어 섰어. 난 머리 때문에 불안해선 맨 뒷줄에 섰지.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한창일 무렵, 누군가 내 머리칼을 확 잡아챘는데, 순간 깨달았지. ‘생각보다 올 것이 빨리 왔구나.’ 키가 2m에 달했던 체육선생은 내 머리채를 잡고 운동장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어.

그 선생은 운동장 뒤편 철조망 근처로 나를 끌고 가서, 내 뺨을 장난스럽게 툭툭 치며, “요것 봐라, 요거. 완전 기합이 빠졌구먼” 하더니, 호주머니에서 불도저처럼 생긴 이발기를 꺼냈어.

나는 나도 모르게 “선생님, 내일까지 꼭 이발하고 오겠습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네?”라고 울먹이며 말했지. 다행히도, 그 선생은 “내일 아침까지 교무실로 와서 검사 받아. 알았어? 조회 끝날 때까지 여기 엎드려 있어”하고 윽박지른 후, 또 다른 학생을 사냥하러 떠났어. 나는 굴욕적인 자세로 엎드려 있어야만 했지.

얼마 후, 내 옆에는 점점 동료들이 늘어났어. 이윽고 조회가 끝나고 교실로 들어가던 학생들은 힐끗거리며 OTL 자세를 취하고 있는 우리를 쳐다 보며, 킥킥거렸어. 무지 후텁지근한 봄날이었지.’

이처럼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하는 이유는 다수의 정치 교과서가 권력에 대한 간단한 정의에서 곧바로 정치 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많은 학생들이 정치나 권력이라고 하면, 자신들과는 별 상관없는 따분한 이야기이거나, 어른들의 세계에서만 의미 있는 이야기쯤으로 생각한다. 하물며, 자신들이 다니는 학교가 권력기관 그 자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한다.

사람들은 학교를 교육기관이라고만 생각하지 권력기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들에게 학교가 원하는 행동들을 강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명명백백한 권력기관이다.

아니, 학교 자체가 권력기구의 완전한 모델이다. 학교는 지식을 배우는 곳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복종을 훈련하는 곳이기도 하다. 권력을 가진 쪽은 교사들이고,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 쪽은 학생들이다. 만약 학생들에게 일상적 권력에 대해서 가르치고자 한다면, 그 사례는 대부분 학교생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고등학생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의 핵심은 권력에 관한 교과서의 내용을 학교에 적용할 때, 학교권력이 부당한 권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는 정당한 권력과 폭력을 구분하면서,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 권력은 폭력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설명한다. 또한, ‘정당한 권력이란 구성원들이 그 권위를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권력’이라고 덧붙인다.

교과서는 분명히 자발적인 복종이 아닌,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지 못해서 하는 복종은 정당한 권력의 원천이 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위에서 서술한 개인적 경험담을 통해서 이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다음의 그림이 권력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머리를 기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 체육선생은 ‘학생의 머리를 몇 cm 이하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학교는 서로 상반되는 의지를 가진 학생과 교사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다투는 ‘투쟁의 장소’가 된다.

물론 '학교=투쟁의 장소'라고 해석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를 제대로 읽는다면 이러한 해석이 과도하지 않다는 사실 (오히려 정확한 해석이다)은 금방 증명될 것이다.

일단 체육선생에게는 나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 있다. 그러한 자격을 누가 부여하는가를 따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므로 다음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정당한 권력에 대한 교과서의 정의에 충실하여, 내가 ‘자발적’으로 체육선생의 명령에 복종했는가, 아니면 처벌이 두려운 나머지 마지못해 그 명령에 복종했는가에만 집중하자.

나는 교무실에 걸려있는 다양한 체벌 도구 (밀걸레, 테니스 채, 당구 큐 등)들이 무서워서, 또 학생들에게 주먹이나 발길질을 서슴지 않는 교사들이 무서워서 이발을 했던 것이지, ‘그래, 학생이라면 당연히 3㎝의 머리칼을 유지해야지, 그렇고말고’라고 생각해서 이발을 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정해진 교칙에 따르지 않았을 때 겪게 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두려웠다. 결국 나는 체육선생의 명령에 비자발적이고 강제적으로 복종했던 것이다. 그런데 교과서에 따르면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권력은 폭력과 다를 바 없다.

처음에 인용한 두 번째 제시문에서 정치라는 단어를 빼고, 국민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바꾸어 다시 한번 읽어 보자. 이런 식의 독해를 한다면, 이해력 빠른 학생들은 대번에 교사들에게 이렇게 따져 물을 것이다. ‘지금 선생님들이 갖고 있는 권력은 폭력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요?’ 왜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되냐고? 바로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겪었던 공포와 폭력을 지금의 학생들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학생들과 ‘교내 체벌’에 대해서 토론한 적이 있었다. 내심, 시대가 시대니 만큼, 내 학창시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겠거니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직접 겪었거나, 목격했던 교사에 의한 폭력(가벼운 체벌이 아니다)에 대해서 증언했다.

어느 학교에나 골고루 한 명씩 포진해 있는 '크래이지 독(crazy dog)’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학생들과 나 사이에 묘한 동료의식까지 형성되었다. 그러나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십수 년 전에 경험했던 그 폭력과 공포에 대해서 설명할 때, 이해할 수 있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학생들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도 맞았구나. 우리도 맞고 살아.’

이쯤 되면, 권력에 대한 설명과 관련하여 교과서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의도적 공백’을 이해할 수 있다. 교과서는 권력을 설명하면서 학생들의 일상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절대로 학교를 권력기관이라고 설명하지 않으며 또한 절대로 학교를 교사와 학생 간의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장소로 묘사하지 않는다.

당연히 학교 권력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설명은 학생들이 학교권력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학생들의 복종심을 약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앎과 삶의 괴리란 정확히 이런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 적어도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생활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버린 채, 느닷없이 정치권력이라니, 그리고 민주주의라니. 지나가던 소가 웃는다. ‘음머흐흐흐’

정의와 정당한 권력에 대해서 가르치는 학교에서 교육수단이란 미명 하에 폭력을 정당화하는 짓거리는 이 순간 사라져야 한다. 애들은 맞아야 한다고? 그럼 때리지 않고도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아내라! 그것이 어른들의 의무가 아닌가? 학생들을 납득시키고 설득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무턱대고 규칙들을 들이밀며, '따르지 않으면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협박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한 손에는 교과서를, 한 손에는 몽둥이를'이라는 말에 공감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술 더 뜬다. '시몽쌤, 교과서 모서리로 이마 맞아 보셨어요?' 교사의 손에 들린 것이 교과서든 몽둥이든 간에 언제든지 폭력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 제발, 권위와 폭력을 혼동하지 말자.

심원() TOPIA논술아카데미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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