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멕시코주에 이사온 지 8개월 만에 드디어 그 유명한 도시 산타페(Santa Fe)를 방문했다. 사막이 많은 뉴멕시코주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청량한 도시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알부커키에서 자동차로 40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곳인데도 불구하고 이제야 겨우 발길을 돌리게 되니 역시나 등잔 밑이 어두운가 보다.

이번 산타페 여행은 그림을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려간 갤러리 탐방이 목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산타페에 대해선 한번쯤 들은 적이 있어 어떤 도시인지는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다. 워낙 미국인들이 꿈의 도시로 생각하는 곳이라 도시 규모에 비해 대단한 명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미국인들이 ‘가장 여행하고 싶은 곳’의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가 겨우 6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시골 마을에 불과하지만 그곳이 지닌 오랜 역사와 문화의 깊이 때문에 뉴멕시코주의 주도로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서부나 동부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멕시코 문화의 색채가 강한 데다 스페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여기다 원주민이었던 인디언 문화가 묘하게 융합되어 있어 미국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도비(Adobe)’라는 특별한 형태의 건축물 양식, 인디언들의 금속 및 섬유공예, 멕시칸들의 칠리음식 레스토랑 등 산타페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구경거리가 가득한 흥미진진의 도시다. 이밖에 나는 이번 여행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산타페가 세계 4대 예술시장 중 하나이며 미국의 2대 예술시장이라는 것이다.

뉴욕 다음으로 예술품들의 거래가 왕성한 곳이다. 겉으로 보면 도시가 초라하고 오래된 작은 마을인데도 세계 예술시장의 ‘빅4’로 손꼽힌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완전히 다르다.

초라한 겉모습은 전통문화를 보전하려는 산타페시의 정책때문. 실은 조그맣고 오래된, 정말로 금세 쓰러질 것 같은 건물들이 온통 갤러리들이다. 한마디로 도시 전체가 갤러리로 뒤덮인 예술작품인 셈이다. 심지어 도시 조경까지 예술적 색채를 가미했다.

갤러리들은 각각 소속 작가들의 있는 개성 있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어서 저마다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늘어선 수많은 갤러리들을 구경하고 다녀도 전혀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번뜩이는 예술의 나라로 환상 여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된다.

전시된 예술품들이 대개 700달러에서 20만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가격표가 붙어 있어 세계 4대 예술시장이라는 명성이 헛말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인 산타페를 하루 동안 재미있게 여행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내내 왠지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동행한 친구들이 연신 다시 오고 싶다고 탄성을 질렀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신 씁쓸했다.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가던 원주민들이 사라진 예술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의 삶과 역사, 문화가 산타페 예술의 정신적 원천인데도 지금 주인들은 자신의 땅에서 쫓겨났다. 아니 철저히 유린당했고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집들은 전통보전이라는 이유로 허물지 않으면서도 집주인인 원주민들은 보호하지 않은 곳이 산타페다. 인디언들이 살았던 집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지 들으면 아마도 또 한번 놀랄 것이다. 강탈한 인디언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작품들의 가격은 높지만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고객들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생명력으로 넘쳤던 인디언 역사와 문화는 정복자들의 상업주의에 이용당해 근사한 허울만 뒤집어 쓰고 있다. 도시 땅값은 올라 서민들이 거주할 수 없고, 고가의 예술품들은 세계의 소수 부호들을 불러들여 산타페를 화려한 관광도시로 만들었지만, 사람들의 ‘진정한 삶’은 황폐화되어 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소중한 고갱이가 빠져버린 그런 느낌이다. 도시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슬픈 전설이 흐르는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화려함과 공허함을 함께 맛보고 싶다면 어쨌든 한번쯤은 가볼 만한 곳이 산타페다.

조선주 통신원(미국 텍사스대학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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