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고통… 봉사·투병하며 다시 사는 삶인대가 뼈로 변하며 척추 신경 압박… 심하면 팔다리 마비

<목이 뻣뻣하고 전기가 통하듯 찌릿한 통증이 온다. 손가락이 저리고 손놀림이 느려진다. 증상이 다리로 내려가면 무릎에 힘에 빠져 길을 가는 도중 걷다가 털썩 땅바닥에 주저 앉을 정도로 다리의 힘이 빠진다.>

초기 증상이 목 디스크 또는 중풍과 비슷한 ‘후종인대골화증(OPLL)’ 환자들은 정확한 병명을 찾지 못해 질환을 키우는 일이 흔하다. 처음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고 부황을 뜨며 헛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후종 인대란 척추 뼈 뒷부분의 위에서 아래로 붙어있는 인대로 척추뼈를 정렬하고 디스크를 보호하는 조직이다. 이 후종 인대가 딱딱하게 골화(뼈로 변함)되면서 두꺼워지고 굵어져 신경을 압박하거나 손상시키는 질환이 후종인대골화증이다.

초기에는 마치 목 디스크처럼 가벼운 증상만 나타나지만, 심하면 팔다리가 마비될 수도 있다. 1960년 일본에서 척수 신경의 압박으로 신경통과 마비 증세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발표한 이래 원인과 치료 방법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이어졌지만 지금까지 뚜렷한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난치 질환이다.

서양인에게는 드물고, 일본의 목 질환 환자 중 2~2.4%, 국내 목 질환 환자 가운데 1.7~2%에게서 후종인대골화증이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까지 국내에선 정확한 역학 조사나 질환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상태이다.

이에 2004년 발병 후 인터넷 다음 카페에 후종인대골화증(http://cafe.daum.net/happyazaaza)이라는 사이트를 열고 관련 정보와 회원 교류를 도모해온 한국후종인대골화증 환우회 김종오(65) 회장의 투병 기록은 후종인대골화증의 증상과 치료 예후 등을 파악하는 데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공무원 생활하면서 시민들에게 베푼 봉사가 부족했나 봐요. 그래서 ‘후종인대골화증’으로 저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고통을 겪어보고, 그 경험을 토대로 다른 환자들에게 봉사를 해주라는 (하나님의) 뜻이 전해진 게 아닌가 싶어요.”

서울시 공무원으로 30년 근무 후 1999년 정년 퇴임한 김 회장은 그의 투병 생활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환갑의 나이를 넘어섰지만 건강을 자신했던 김 회장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난 것은 2004년 봄께. 손이 저리는 통증이 와서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료진 상담 후 이내 ‘퇴행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러나 여름이 되도록 3개월 동안 물리치료와 주사, 약 복용을 병행했지만 어쩐 일인지 증상은 점점 더 심해지는 듯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병원에 다시 진료 상담을 청했더니 “큰 병원으로 가서 뇌를 찍어보라”는 소견이 떨어졌다. 중풍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해 6월 무렵. 한 대학병원의 정형외과에서는 ‘류머티스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러나 역시 3개월간의 치료 후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아니 증상은 자꾸 심해져 손이 덜덜 떨리는 단계가 됐다. 과를 옮겨 근전도 검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손목터널 증후군’이라고 했다.

사람의 손목 부위에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힘줄과 신경이 지나가고 이를 둘러싸고 보호하는 일종의 관(터널)이 존재하는데, 과도한 손목의 사용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 터널 속의 정증 신경이라고 하는 신경에 압박이 가해지면 손 저림, 감각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수술적 치료는 손목터널의 지붕에 해당하는 강한 인대를 절제하여 수근관의 크기를 늘려주고, 압박되는 신경을 풀어주는 것. 수술 받은 환자의 95% 이상이 만족을 나타낸다고 했다.

그러나 심각한 부작용은 수술 이튿날부터 나타났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려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나이가 있어 혹 마취가 덜 풀렸나 했지만 그도 아니었다. 혈액 검사 결과, 피 속에는 마취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김 회장과 가족들은 두려움에 빠졌다. “이 병의 속성을 의료진조차 너무 모른 겁니다. 처음부터 목 부분을 찍어봤으면 쉽게 이상을 발견했을 텐데요.”

그제서야 ‘후종인대골화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지만, 김 회장은 병원을 상대로 항의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고생은 차치하고, 이제라도 제대로 치료를 받고픈 심정이었다.

후종인대골화증에 대한 수술은 무척 까다롭고 어려워 자칫하면 팔다리의 마비가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대학병원에서 류머티스성 관절염이라고 진단한 의사를 찾아가 애원했어요. 잘못된 수술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을 테니, 병을 가장 잘 치료하는 전문의를 소개해 달라고.”

그렇게 해서 10월 김 회장은 휠체어에 의지하여 손목터널증후군 수술로 인한 손목의 실밥도 풀지 않은 채, 대전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마침내 후종인대골화증에 대한 수술을 받게 됐다. 부인 김금자(66) 씨는 “친척들은 (수술 후) 살아 있으면 그때 집으로 찾아갈게 하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며 악몽과 같았던 당시를 힘겹게 떠올렸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이후로 아가가 걸음마를 배우듯, 한 발 한 발 떼는 연습을 시작한 뒤로 2년 여가 흐른 지금은 계단도 잘 오르내리는 등 제법 거동이 자유로워졌다.

손의 떨림 증세 등 미미한 후유증이 남은 정도다. 그러나 완치가 없는 병. 진행성 질환이라 언젠가는 또다시 심해져 목뼈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 앞으로의 예후가 어떨지 몰라 걱정이 컸다.

수술 후 몸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으로 후유증은 없을지, 같은 수술을 받은 환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지만, 병원에서는 환자 소개는커녕 이렇다 할 정보도 주지 않았다.

“동병상련이라고 수술을 받고 후종인대골화증과 싸우고 있는 환자나 간호하고 있는 분들, 그리고 병명도 생소한 이 병으로 지금 막 진단 받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환자 분들과 많은 정보를 교환하고 공유하고 싶을 뿐 아니라, 먼저 수술 받은 환자 입장에서 조그마한 봉사라도 하고 싶어 이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김 회장이 2004년 겨울, 후종인대골화증 환우회 카페를 열며 밝힌 동기다. 이 카페를 매개로 하나둘 모여든 환우 70여 명과 지난해 6월 환우회를 발족, 질환을 알리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후종인대골화증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연구 단체를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 취지에서” 저명한 교수들을 환우회 고문으로 위촉했는가 하면, 환우회 회원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척수 사진을 찍어 스스로 임상 데이터도 만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삼육대 물리치료과 교수에게 의뢰, 후종인대골화증 환자를 위한 맞춤 운동법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또 관련 연구 논문이나 환우 설문조사를 통해 지역적ㆍ환경적 연관성에 대한 단서를 찾는 등 질환의 원인 규명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적극적인 김 회장과 환우회 회원들의 노력과는 달리 정부 당국의 관심과 지원은 현재로선 미약한 실정이다.

“국가에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지정해달라고 했더니 예산부족으로 난색을 표하더군요. 그래서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 등 공신력 있는 곳에 질환에 대한 자료라도 올려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김 회장은 “일본과 우리나라 등 제한된 지역에 주로 발병한 병이라 국내 의료진이 발벗고 나서지 않으면 원인과 근본적인 치료법 개발이 요원하다”며 범국가적인 관심과 지원을 거듭 강조했다.

▦ 원인 및 증상

후종인대골화증은 척수신경이 통과하는 척추강의 맨 앞쪽, 즉 척추체의 뒷면에서 척추 뼈를 정렬하고 척수를 보호하여야 할 후종인대가 딱딱하게 골화돼 두꺼워지고 굵어지면서 신경관을 지나가는 질환이다.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진 게 없으며, 목 뒤에 전기가 오는 듯한 짜릿한 통증과 팔다리의 떨림 및 힘이 약해지는 등의 미미한 증상으로 시작되며 심할 경우 사지 감각의 이상이 초래될 수 있다.

▦ 진단 및 치료

진단법으로는 단순 방사선 촬영과 컴퓨터 단층 촬영, 핵자기공명영상 활영 등을 통해 골화된 인대를 확인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진행성 질환이지만, 후종인대골화증이 있다고 항상 척수증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경우에는 대중적인 보전적 치료만을 시행하고, 증상이 심해지면 골화된 후종인대를 제거하거나 눌려 있는 신경을 풀어주는 감압수술을 받는 것이 효과적이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